時論 / 무엇으로 다스려야 하나?

논설위원 최순길 목사01.jpg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는 지식과 지혜라고 하지만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 또한 지식과 지혜인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에 대한 특별한 지식과 지혜는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였다. 사람들이 아무리 인의를 부르짖는다 해도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에게 이용물이 되곤 하였다. 도둑을 막으려고 세워 놓은 기구가 오히려 그 도둑의 도구가 되고, 도둑을 감지하려던 cctv 카메라는 오히려 도둑을 민첩하게 만들고 있다.

착한 사람일지라도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면 도를 행할 수 없는 것이요, 인의를 베풀어 도둑을 없애려 한다고 하면 도리어 도둑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진실로 도둑을 없애고 싶으면 지혜를 버리고 인의를 없애지 않으면 안된다.

옥을 버리고 구슬을 깨뜨리면 작은 도둑이 없어진다 했으니, 가정에 남이 갖고 싶어하는 보물이 없으면 탐내는 이가 없다는 것 아닌가? 부적을 태우고 인장을 부수면 백성이 순박해 진다했다. 옛날 지극히 어진 다스림을 이룬 세상에서는 백성들이 노끈을 맺어 기억하면서도 서로의 약속을 잊지 않았으며 음식은 어떤 것이라도 맛있게 먹고, 의복도 어떤 종류라도 귀히 여겼으며, 풍속을 즐기며 거처는 편안하면 만족하였다. 그런데 현인이 나타나고부터는 백성이 지혜를 즐기고 남의 이목이 따르지 못함을 자랑스럽게 여겨 서로 거짓을 꾸며 댐으로 오히려 세상은 어지러워 졌다.

(지혜를 찾는 까닭에 자기가 모르는 바깥 것만 찾고 있다.)
그래서 새는 나무 위에서 어지럽고 짐승은 숲에서 어지러워 졌으며 고기는 물에서 어지러워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로써 어지러워졌다. 사람들의 지혜는 자연을 그슬리고 각종 동식물을 어지럽게 하였다. 지혜를 찾는 까닭에 자기가 모르는 바깥 것만 찾았지 자기가 지니고 있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잊고 말았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을 보면 받는 자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받았다지만 나중에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구속되고, 그럼에도 지혜로운 국민은 그들을 또 정치인으로 세운다. 그리고 그들은 또 기회가 있으면 그러한 돈을 또 받아 먹는다, 주는 자는 자기 것을 주면서도 결국에는 무엇 때문에 주었는지를 밝혀도 자기 인생을 어렵게 하고 만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정치인인가보다 고 생각해 본다. 뿐만아니라 판사도 이념에 얽매이거나 유혹에 빠지니 올바른 판결을 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지혜를 어쩌지 못하고 허우적 거린다. 어찌 이를 정치만을, 세상만을 탓하랴?

오늘 날 우리 교계에는 놀랍게 가라앉아 있는 것을 본다. 한창 때에는 참으로 신실했던 한 노 목사님은 자신에게 평생 가장 후회스러운 일을 아들을 후계자로 한 것이었다 고 술회했다. 여하간에 큰 교회 작은 교회 할 것 없이 오히려 교인들에 의해 판단되어지는 목회자가 어디 하나 둘인가? 이 시간에도 베드로 사도는 전한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 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세상을 무엇으로 다스려야하나? 세상적 지혜나 지식을 추구하는 것보다 진리안에서 순수함과 진실함과 욕심도 없이 오직 처음 인간의 모습대로 자족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가장 행복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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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 최순길 목사 /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