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준곤 목사 제4주기 추모예배 열려

9 27일 오전 10 CCC 본부 대강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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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이자 성시화운동을 창시하시고 초대총재를 역임한 유성 김준곤 목사(1925~2009) 4주기 추모예배가 9 27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부암동 한국CCC 본부 브라잇채플에서 열린다. 서일영 장로(나사렛형제들 중앙회장 역임)의 사회로 진행되는 추모예배는 전용태 장로(세계성시화운동본부 공동총재) CCC 전국부총순장 한담비(연세대 3학년), 성경봉독에는 김경란 간사(CCC ELTS 책임)가 담당한다.

 

 듀엣보배담은 질그릇특송에 이어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 강변교회 원로)가 사도행전20 24절을 본문으로십자가 복음에 미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전한다. 고인의 영상메시지는 현재 6.25 때 공산 좌익에 의해 부친과 부인이 학살을 당했고, 자신도 죽음의 위협 가운데 국군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구출 된 아픔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굶주린 어린이들을 위해 젖염소보내기운동을 전개했고,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 전하는 쌍손선교를 모토로 한 대학생통일봉사단창단하여 북한선교에 헌신하게 했던 고인의 생전 메시지를 듣는다.

 

 이어 민산웅 장로(극동방송 사장, 나사렛형제들)가 약력소개, 정인수 목사( CCC 국제부총재)와 김정우 박사(총신대 신대원 교수)가 추모사를 전하고, 김성영 목사(시인, 백석대 석좌교수)는 추모시를 담당한다. 유족인사는 김윤희 박사, 광고는 주수일 장로(나사렛형제들), 고인이 민족복음화운동을 전개하면서 내걸었던 격문을 CCC 전국총순장 강태화((서울대 4학년)군이 구호제창을 하며, 조기철 목사(풍성한교회 담임목사)가 축도를 담당한다. 예배 후에는 유성장학금 전달식이 있다.

 

 다음은 강변교회 김명혁 목사의 추모글이다.

십자가 복음에 미친 사람 김준곤 목사님을 기리며”(20:24) 이 세상에는 돈에 미친 사람들이 많고 명예에 미친 사람들이 많고 쾌락에 미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사이는 스마트 폰과 카 톡에 미쳐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김준곤 목사님께서는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의 뒤를 이어 그리고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의 뒤를 이어 예수님에게 미치고 십자가 복음에 미치고 긍휼과 용서와 사랑에 미쳐서 한 평생을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예수님과 십자가 복음과 긍휼과 용서와 사랑에 미친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서 세상의 멸시와 조롱을 받으면서 가난하게 청빈하게 약하게 바보처럼 살다가 죽었는데 김준곤 목사님도 그런 삶을 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김준곤 목사님을 더욱 더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리워하게 됩니다.

 

 김준곤 목사님께서는 어느 날 환상 중에 십자가가 보이면서 그 십자가에서 붉은 피가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그 후부터 김준곤 목사님께서는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만을 알고 십자가만을 사랑하고 십자가만을 전파하는 십자가 복음에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6:14).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의 고백과 결단이 바로 김준곤 목사님의 고백과 결단이 되었습니다. 결국 김준곤 목사님께서는 피 묻은 십자가 복음에 붙잡혀서 피 묻은 십자가 복음 전파에 전 생애를 바친 십자가 복음에 미친 사람이 되셨습니다.

 

 김준곤 목사님께서 이루신 민족 복음화 운동은 아마 길선주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께서 이루신 민족 복음화 운동과 비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김준곤 목사님께서는 민족 복음화를 이루시기 위해서 전 생애를 불 살았습니다.“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면서 달려갔던 것처럼, 김준곤 목사님께서도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면서 달려가셨습니다.

 

 김준곤 목사님께서는 십자가의 복음을 설교로만 신학으로만 가르침으로만 전파하시지 않고 친히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골짜기를 걸으면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가슴으로 눈물로 삶으로 전파하셨습니다. 1950 10 3일 전남 신안군에서 사랑하던 아버지와 사랑하던 아내가 공산폭도들에 의해서 총살을 당하는 슬픔과 아픔과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김준곤 목사님은 그런 고통과 슬픔과 아픔의 골짜기를 걸어가면서 원망과 불평이나 분노와 증오의 사람이 되는 대신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사람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버지와 아내를 총살한 사람들을 잡아서 죽이려고 했을 때 김준곤 목사님께서는 앞장서서 그들을 죽이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 결과 신안군의 주민들이 김준곤 목사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긍휼과 용서와 사랑에 감동하며 대부분 예수님에게로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북한 동포들에게 젖 염소를 보내는 사랑운동을 펴 나아가게 되었고 기도와 사랑으로 보낸 젖 염소들이 북한 땅 곳곳에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분열과 갈등과 분노와 증오로 치닫고 있는 불행하고 어두운 이 땅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십자가 복음과 사랑의 증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부족하고 부족한 죄인인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준곤 목사님과 함께 했던 일들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1980년도 합동교단이 두 개 세 개로 갈라질 때 김준곤 목사님께서 앞장을 서서합동추진위원회를 만들어 합동을 추진하는 일을 했는데, 박윤선 목사님과 제가 함께 한 일이 있었습니다.

 

 1980 9 12일부터 15일까지 여의도광장 등에서나는 찾았네라는 주제로 「80 세계복음화 대성회」가 개최되었을 때 김준곤 목사님께서 준비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준비하고 진행했는데, 저는 그 때 주강사로 와서 메시지를 전한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님의 통역을 맡은 일이 있었습니다. 1981년부터 김준곤 목사님께서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저를 격려해 주시고 도와주셨는데, 1981년부터 85년까지 부회장으로, 1988년부터 89년까지 회장으로, 1990년부터 자문위원으로 계시면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도해 주셨습니다.

 

 1984 6 6일부터 9일까지는세계교회기도성회가 영락교회와 뚝섬에서 개최되어 70여 개국에서 제임스 오르 박사님 등 저명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그때 김준곤 목사님께서 준비위원장을 맡아 기도성회를 준비하고 진행했으며 저는 진행의 실무를 맡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합동신학교의 책임을 맡고 있을 때 김준곤 목사님을 학교의 이사님으로 모시고 신학교의 행정과 발전에 대해 지도와 격려를 받은 일도 있었는데, 그 일을 전후하여 한국대학생선교회 출신들이 다수 합동신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고 목회 및 선교사역에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35년간 부족하고 부족한 사람이 한국교회를 섬겨오는 동안 김준곤 목사님께서 많이 격려해주시고 지도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도와주신 일들을 뒤돌아보면서 김 목사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다시 또 다시 지니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세상의 것들에 미쳐가는 불행한 이 시대에 무엇보다 먼저 십자가 복음에 미쳐서 한 평생을 불사르신 김준곤 목사님을 그리워하며 보고 싶어하게 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준곤 목사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목사님을 따라서 예수님에게 미친 십자가 복음에 미친 그리고 긍휼과 용서와 사랑에 미친 사람으로 살다가 죽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조만간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자비와 은혜로 천국에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준곤 목사님과 신앙의 선배님들을 반갑고 기쁘게 만나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 목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