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명을 취하소서. 죽는 것이 더 나음이라

주사랑교회 장한국 목사(진리총회장/CJTN TV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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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4:6)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말씀을 전하게 하자 니느웨의 모든 사람들이 청천벽력 같은 그 말씀을 믿고 심히 두려워 떨며 회개하고 금식하며 악을 버리고 그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이를 보신 하나님이 재앙을 돌이키시고 그 일을 행치 아니하신 것을 말씀합니다(3:10). 이런 엄숙하고 경건한 속에서 진정한 회개가 국가적으로 행해진 것을 보건데 오늘날 우리 자신들, 또 우리 가정에서, 또 우리 교회에서, 더 나아가 이 나라 국가 전체적으로 니느웨처럼 온전히 회개 역사가 일어나고 악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기를 사모해야 하지 않는가요?

 

그러나 이 일이 요나를 심히 불쾌하게 했고 크게 성내게 했다고 말씀합니다. 왜요? 요나는 40일이 지나면 니느웨 나라와 그 백성들이 다 멸망당한다고 전했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하나님은 기쁘시겠지만 나 요나는 어찌 된 건가요? 자신의 체면, 자존심은 망가진 것이요. 선지자의 권위는 다 떨어졌고 앞으로 자신이 아무리 힘써 외쳐도 사람들이 믿어줄 것인가? 이것이 요나를 불쾌하게 했고 또 성내는 이유인 것입니다.

 

결국은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내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나음이니이다.” 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요나가 됐습니다. 선지자로서의 자신은 이젠 죽은 자같이 됐으니 나는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나이다.’ 라고 합니다. 큰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했고 서원까지 했던 요나는 분명히 변했고 두 번째 말씀이 임했을 때 즉각 순종했지요.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지요.

 

아직도 요나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으로 기뻐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이 시퍼렇게 살아 있지요. 자기 체면과 자신의 이름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바라는 것이 있지요. 아직도 100% 요나가 죽지 않은 것이지요. 우리 자신도 이를 잘 살펴보라는 하나님 뜻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하셨고 사도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고백했지요. 우리 옛사람, 육적인 것, 자신의 욕심ㆍ정욕ㆍ세상 영광을 추구하는 것 등이 완전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지요. 그것이 다 죽어지기까지 날마다 주 안에서 죽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같이 말이지요.

 

주께서 이런 요나에게 박 넝쿨을 예비하시어 그의 슬픔에서 구해 내시려 합니다. 박 넝쿨로 단지 시원케 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요나가 하나님의 박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시려는 계시이지요. 박 넝쿨이 열매 맺으면 박이 나오고 이 박은 수박과 달리 그 속을 못 쓰지요. 속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 박이 썩고 말지요. 박의 역할을 못하지요. 요나의 속의 것, 우리의 속의 것이 박 속과 같이 완전히 없어져야 물을 담으면 물바가지같이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가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