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할아버지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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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틈틈이 외손녀를 보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손녀가 이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과거에는 손자, 손녀에 푹 빠진 사람을 보면 어쩌면 저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내가 막상 손녀를 보니까 '손녀 바보'가 된 것이다. 작년에 태어난 손녀를 처음 보았을 때 내 핏줄이 딸을 통해 손녀로 이어지는 생명의 순환을 신비롭게 느낀 이후로 난 손녀를 무척 어여삐 여기게 되었다.

 

나는 고학으로 신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 23평 지하상가에서 개척 멤버 한 명이 없이 교회를 시작했다. 교회 부흥과 성장의 노예가 되다시피 했을 정도로 오로지 교회밖에 몰랐다. 나의 딸은 그런 때에 태어났다. 나는 딸이 어떻게 큰지도 몰랐고 오로지 교회 부흥을 위해서 목회에 전념했다. 딸이 장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한번 가보지 못했을 만큼 목회에만 전념하며 살았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렀고 어느덧 나는 수만 명이 넘는 신도시 대형교회 목사가 되었다. 요즘 와서는 새삼스럽게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딸에게 못다 준 사랑을 손녀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틈만 나면 딸의 집에 가서 손녀를 품에 안는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폈던 어느 날엔가는 밖으로 손녀를 데리고 나가 개나리, 진달래, 목련꽃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해주었다.“현주야, 이게 목련이야, 진달래야, 개나리야. , 너무 아름답다. 아니, 너의 이름이 꽃이고 너는 꽃보다 더 아름다워. 야아~ 와우~” 어떤 날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벚꽃나무 아래서 흩날리는 꽃잎들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아이가 꽃꽃, 와우, 와우~” 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손녀에게 와우 할아버지가 되었다. 나만 보면 와우, 와우하며 반가워한다. 울다가도 꽃만 보면 , , 하고 나만 보면 그저 와우, 와우를 외치는 것이다. 손녀의 머릿속에 나에 대한 기억은 꽃과 와우로 꽂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집이 가난해서 수학여행, 졸업여행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신학교 다닐 때도 남들은 수학여행과 졸업여행을 갈 때 나는 홀로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던 서글프고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그런 때일수록 나는 스스로 와우~”를 외쳤다. “와우 행복하다. 와우 감사하다. 와우 기쁘다.”

 

그래서 나 스스로 서글픈 기억들을 감탄 가득했던 기억으로 바꾼 것 같다. 이런 나로 인해서 내가 섬기는 교회는 항상 감탄의 언어문화가 있고 30년 동안 한 번도 싸우거나 다퉈 본 적이 없다. 나의 손녀 역시 돌도 안 지난 아이가 꽃을 보고, 할아버지를 보고 와우, 와우~”를 외치는 것을 보면 생명의 능력과 신비로움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는 손녀가 나로부터 감탄의 감성을 일구고 그 언어를 배워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요즘 이 세상 최고의 행복자가 된다. 아니, 어린 손녀의 내면세계가 감탄으로 가득하고 밝게 자란다면 내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손녀 역시 얼마나 아름다운 감탄의 세상을 만들어가겠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 고집과 논리에만 사로잡혀서 막말을 쓰기도 한다. 그러면 상대방이 또 그 막말을 트집 잡아서 또 다른 막말을 하고 싸운다. 그러나 사람들은 논리의 소리, 이성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머리로는 이해가 될지 몰라도 정서적으로는 공감을 하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감탄과 칭찬의 언어를 듣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감탄의 감성과 언어를 선물하려고 노력한다. 그럴 때 사람들의 마음 밭에 감탄의 향기로운 꽃이 피고 푸른 열매가 맺는 것을 본다. 어린 손녀가 나에게 가르쳐준 또 하나의 인생의 지혜요 선물이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도 손녀에게 와우 할아버지로 다가간다. 그리고 와우의 감성과 언어를 선물로 줄 것이다. 아니, 어디를 가든 누구에게든 와우의 감탄사를 선물로 줄 것이다. 내 삶이 끝나는 그 날까지 와우 할아버지로 늙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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