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 8월 넷째 주일 목양칼럼!

눈물에 젖어야 설교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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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난 주 대구에서 하나되게 하소서집회를 다녀왔습니다. 그 집회는 대구지역 초교파 여성 집회인데 매년 3천 명 이상이 모이는 대집회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도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는데, 이번 집회는 성경강해적 설교가 아니라 시대를 깨우며 미래 한국교회를 세우기 위한 영적 각성 설교를 하려고 했습니다. 울고 있는 여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우리 자녀들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울어야 한다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김부겸 전 행안부장관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 분이 과거 국회의원 시절과 장관시절에 종교인과세나 동성애 문제에 대해 도와준 것을 칭찬하고 앞으로도 한국교회 생태계를 잘 지켜줄 것을 공개적으로 부탁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집회가 끝나고 나니까 저에게 항의를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동성애를 찬성하는 분이었는데 왜 반대로 설명을 했냐고요. 그러나 이 분들이 잘 모르고 오해를 하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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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 전 장관은 2017년도에 보좌관의 실수로 혐오차별금지법을 발의한 부분이 있었는데 저 뿐만 아니라 대구지역 교계의 항의를 받고 바로 철회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 발의를 계속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들에게 철회한 기사까지 찾아서 잘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저녁집회에 올라가려고 하니까 주최측에서 오늘 저녁에는 그 말씀을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단에 올라가니까 또 제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와서 더 적극적으로 시대 각성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중국의 온주가 어떻게 다음 세대를 지켰는가를 이야기하고 영국과 미국교회가 어떻게 반기독교 세력의 사상전, 문화전의 공격에 넘어갔는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국교회 생태계를 잘 지켜내기 위해서 기독교 정치인들을 키울 뿐만 아니라 때로는 설득을 하고 격려를 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김 전 장관에 대한 언급을 다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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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우리가 너무 편협한 생각이나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한국교회의 미래와 건강한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부터 울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실제로 뜨거운 눈물이 제 가슴과 눈동자를 촉촉이 적시며 저의 에토스(진정성)를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항의를 했던 분들도 감동을 받고 저에게 목사님, 정말 잘 하셨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었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젊은 시절 저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불신 가정에서 쫓겨나 겨울 눈보라 속을 걸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습니다. 가난한 신학생이라 양복이 없어 설교를 할 수 없을 때도 예배실 바닥에 엎드려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가락동에서 개척을 한 후에도 토요일이면 설교연습을 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억센 전라도 사투리가 고쳐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 원고를 교정하고 네다섯 번 이상 강단에 서서 음독으로 연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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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누가 올지도 모르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눈물을 흘리며 설교연습을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도지를 들고 동네를 누비며 눈물로 전도하고 다녔습니다. 그때는 사람이 너무나 그리웠습니다. 오죽하면 토요일 저녁에 빈 의자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면서 기도를 하였겠습니까? “주님, 이 빈 의자에 내일 사람을 앉혀 주세요. 지나가는 거지가 되었든, 넝마주이가 되었든 사람을 앉혀 주세요.” 그 눈물은 결코 비관과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눈물은 도전과 희망의 눈물이었으며 제 영혼을 살리는 꽃씨가 되고, 영혼을 사르는 불덩이가 되었습니다. 아니, 이 땅의 불덩이를 넘어 절망과 어둠의 밤을 밝히는 꿈의 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을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그 못지않게 마음 아픈 것이 있습니다. 너무나 편협한 사고에 갇혀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편협한 사람들을 보면 또 눈물이 나지요.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아프고 편협한 시대를 위해 울고, 미래의 역사를 바라보며 울고 또 운다면 한국교회와 건강한 사회를 지키는 한 줄기 희망의 등불을 밝힐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 역시 매주 눈물을 담아 설교를 준비하고 눈물의 에토스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