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유족 사죄 다음은 박정희 유족?
                       역사적 평가와 정치사회적 사안, 유족에 사죄강요는 연좌제 발상

백승목 칼럼리스트 hugepine@hanmail.net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이사가 4.19 혁명이 있은 지 51년 만인 19일 오전 서울 수유리 4.19 묘역을 참배, 헌화하고 4.19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과하는 성명서를 발표키로 했다고 한다.

4.19 희생자 유족 측에서 어떤 요구가 있었고 이승만대통령기념사업회 측에서 어떤 판단과 결정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딘가 아귀가 안 맞는다는 느낌이다.

51년 전인 19604183.15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거리로 뛰쳐 나온 고려대 학생데모대를 정치깡패들이 기습 폭행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419일 전국규모의 저항이 일어나고 당시 대통령관저인 경무대(현 청와대)로 진출하려던 데모대를 경찰이 발포를 하여,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여 끝내는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하고 민주당정권이 들어서게 함으로서 역사를 바꾼 사건이 4.19 혁명이다.

4.19 혁명에 대하여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규정됨으로서 최고의 역사적 평가를 받은 사안이며, 희생자와 유가족은 물론 유관단체에게도 최소한의 보상과 예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당시 희생자들은 수유리에 별도의 국립묘지까지 조성되어 영령들의 명복을 기리고 있다.

유족 측이나 유관단체 입장에서는 만족하거나 완벽(?)하지는 못 하겠지만, 헌법전문에 저항권이 명시 될 만큼 역사적 평가를 받고, 나름의 보훈혜택도 받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과 만족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가해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받아 들여 1960426일 하야성명을 발표하고 이틀 후인 428일 대통령공관인 경무대를 떠나 사저인 이화장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529일 고국을 떠나 하와이로 망명, 1965719일 망명지에서 90세를 일기로 서거하는 자책과 징벌을 감내하였다.

3.15 부정선거의 원흉이라고 지목 된 부통령후보 이기붕 일가는 혼란이 확산되고 있던 1960428일 새벽 545분 이승만 대통령 아들로 입양된 장남 이강석 소위가 쏜 총탄을 맞고 일가족자살로 영욕의 생을 마감하였다.

부정선거 총책으로서 최인규 내무장관과 경무대 앞 발포 책임자, 정치깡패 이정재 등은 19612‘4.19 혁명재판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등 범법자들에 대한 응분의 문책과 징벌도 이뤄졌다.

그런데, 4.19 유족과 유관단체에서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승만 건국대통령 양자 이인수 박사가 51년 만에 사죄성명을 발표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새삼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민법에도 상속 자는 재산과 부채를 함께 상속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어떤 부모에게 태어난 , 입양된 로 반세기가 지나고, 역사적 평가와 정치사회적으로 매듭이 지어진 사건에 대하여 사죄를 강요한다는 것은 대를 이은 연좌제요, 삼족을 멸하는 전근대적 문벌 죄(門閥 罪)와 다를 게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14566월에 발생한 단종복위 사건으로 인해 도륙을 당한 사육신(死六臣) 중 혈족을 남긴 것은 박팽년과 하위지밖에 없었으며, 부친인 성승(成勝)과 함께 능지처참을 당한 성삼문(成三問)235년 뒤인 1691(숙종17)에서야 비로소 신원(伸寃)이 되고 박팽년(朴彭年)302년 만인 1758(영조 34)에서야 신원이 됐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이 경우 왕에 의해 신원이 되고 벼슬이 추증됐다는 것은 세조의 후손이 단종복위 사건으로 희생 된 사육신에게 사죄 한 것으로 해석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후세에 억울한 희생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이지 피해자 유족에 대한 가해자 유족(입양자)이 사죄를 한 것과는 차원도 다르고 의미도 기도(企圖)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번 이승만 전 대통령 유족(양자)의 사죄는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이 폴란드 유태인 학살현장에서 참회를 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며, 그 동안 건국대통령 이승만과 근대화 대통령 박정희의 업적을 부정 폄하하기에 혈안이 됐던 세력들이 화해라는 명목으로 일방적인 굴욕을 강요하는 것이며, 다음 차례는 박정희 대통령 유족에게 유신사과를 강요하기 위한 수순 밟기가 아닌지 모르겠다.

건국대통령 이승만이나 근대화대통령 박정희라는 특정인에게 태어난 와 입양 된 로 선대의 공과에 대한 책임을 유족에게 묻고 사죄를 하라는 것은 연좌제와 소급처벌을 금하고 있는 법치에 반함은 물론, 관용과 인의를 숭상 해 온 우리사회 고유의 공서양속(公序良俗)과도 거리가 먼 복수주의로 비치는 게 사실이다. 우리사회의 진정한 화해와 화합은 사죄가 아니라 용서와 관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