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엔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경안천에서 사진가 클레오 김수옥 작품
내게 있어 교도소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시련’이었다. 내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뒤흔들만큼의 조그만 충격이자 고통이었다. 난 예전에 조그만 사업을 운영하던 사업가였다. 나름대로 잘나가는 사람이었고, 주위의 부러움과 존경받기를 바랬던 사람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랬듯‘감옥’이라는 곳에 대해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교도소의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특히 교도소 특성상 모든 것이 제한되어 있고 제한된 공간 속에서 제한된 행동만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까지도 제한되게 만들어 버리는 곳이다. 그런 교도소를 사람들은 ‘교정교화시설’이라 부른다. 난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부르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교도소는 감옥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냥 오로지 내가 저지른 죗값으로 일정기간 갇혀 지내는 곳, 이곳에서의 꿈이자 목표는 단하나! 가석방을 받아 집으로 가는 것!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것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는 황무지와 같은 곳이다.
그래서였을까? 1년 6개월이라는 긴 재판기간동안 나는 너무나 지쳤었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이곳 소망교도소에 지원하여 오게 되었다. 소망에서 생활한지 3주가 ㅈ났다. 난 솔직히 이곳을 교도소라 부르지 않았으면 한다. 다른 수용자들도 나와 같은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소망’이러고 줄여서 부른다. ‘소망’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 참 잘지었다는 생각을 한다. 난 더 이상 교도소의 생활을 ‘시련’이라 하지 않고 ‘도전’이라 생각한다.
내 생활과 생각은 더 이상 같혀 있지 않다. 물론 현실의 몸은 갇혀있고 제한적인 삶을 살고 있다. 또 어떤 부분에서는 국영교도소보다 더 엄격하기도 하다. 하지만 소망 이곳은 뭔가 다른 것이 있다. 다른 시설에서의 내 생활과 생각은 획일화되었고 수동적인 생활의 연속일 뿐이었지만 소망에는 엄격한 제한과 규정 속에서도 내 의지가 존중되는‘선택’이 있다.
여기는 죽어있는 공간이 아니다. 무언가 역동적이고 알 수 없는 그 무언가 있다. 그렇기에 나에게 이곳의 삶은‘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난 지난 10여년간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듯, 말씀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은 것 같다. 더불어 무언가를 하고 싶고, 해야겠다는 ‘의지’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꿈틀대고 있다. 난 여기 와서 5일만에 성경필사에 도전했다. 성경을 내 글씨로 하나하나 옮기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수용자들끼리 구역예배와 성경공부에 힘을 쏟고 있다. 맞다! 이곳 소망은 교정교화시설이 맞다고 백퍼센트 자부할 수 있다. 커피 바리스타, 악기반, 합창단, 기초인성교육, 기타 등등 교육과정과 취미활동과정은 감탄을 금할 rfl이 없다. 교육과정을 거치며 지난 시간에 대한 미안함으로 얼굴을 들 수가 없을 때가 많다. 전국 교도소에 이런 동일한 교육이 실행된다면 큰 변화가 생길 것임을 확신한다. 물론 절대 소망과 같진 않을 것이다. 소망엔 하나님이란 든든한 밑거름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화요문화행사는 그 어떤 교도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례없는 소망의 최고의 무기이자 강점이다. 사회에 있을 때도 누리기 힘들었던 여유와 감동을 안겨준다. 말이 필요없다. 감동 그 자체다. 정말 이곳 소망에는 무엇인가 있다. 정확하게 이것이다! 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느끼는 그 무언가! 각각의 사람마다 느끼는 바는 다를지 몰라도 공통된 한가지! 크진 않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는 것, 난 오늘도 이곳에서 ‘도전’을 한다. 앞으로 출소 후에도 자신감을 가지고 무슨 일이든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소망의 형제들이라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소망 공동체’라는 드든한 응원군을 얻었고 가장 든든한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 싹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