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라(18:1~8)


총회장 장한국 목사 새로운 사진 pc용.jpg주사랑교회 장한국 목사(예장진리 총회장/cjtntv명예이사장)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는 특권이요, 모든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그런데 종말에 사는 우리들이 어찌 기도해야 되는가를 주님은 비유로써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려운 때와 절망적인 위경을 맞을 때가 있습니다. 사면초가요, 캄캄절벽으로 막힌 때에도 주님은 기도하라. 낙심치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캄캄절벽 아래 있어도 믿는 자들에게는 하늘이 뻥 뚤려 있고 그 하늘나라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이 계시고 예수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계십니다. 이것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위경이라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주님이 행하리라. 기도하고 믿음으로 주님께 의지하면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아끼는 독생자까지 우리에게 주셨는데 어찌 이 아들과 함께 무엇인들 아끼시겠는가?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시길 하나님께 밤낮 부르짖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갚아주시지 아니하고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속히 갚아주시리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왜 비유로 하시나요? 이는 오직 제자들만이 천국의 신비를 알도록 허락되었기 때문입니다(13:10-11). 다른 사람들은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이 오직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따르는 자가 된다면 눅14:26이하에서 말씀하시는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셨으니 재림하실 주님을 맞이할 신부의 믿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위하여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어떤 성읍에 재판관과 과부가 있다고 했지요. 성읍은 교회요, 교회 안의 성도들의 영적 진리를 가리킵니다. 재판관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한 자라 했음은 육을 가리키지요. 한번 살다 죽으면 끝이라고 보는 육은 하나님도 사람도 개의치 않습니다. 또 육이 결정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 재판관 이라고 했습니다. 과부는 육에 대조되는, 즉 영을 가리킵니다.

 

성령이 우리 영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도 하시고 우리 영으로 하늘나라를 보게도 하시고 예비 된 영광을 깨닫고 믿게도 하십니다. 따라서 영은 자기에게 예비 된 영광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자 혼을 주장하고 혼은 육을 주장하여 순교할 수 있는 몸이 되게 합니다. 그러나 이 혼이 육이 원하는 대로 함으로써 성령이 영과 더불어 원하는 성령의 소욕을 거스릅니다. 이것이 과부의 한입니다.

 

이를 풀어 달라고 강청하는 과부의 원한은 절박한 그리스도인의 기도를 가리킵니다. 신랑 예수를 맞이할 수 있기를 위한 간절한 기도지요. 결국 재판관을 귀찮게하고 괴롭히므로 그 원한을 들어 준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재판관, 즉 육이 괴로워하며 무서운 것은 바로 잠 안자고 새벽, 철야 등으로 기도하는 것이요. 더 나아가 금식하는 것이지요. , 오늘날 우리들이 재림 주님을 남편으로 맞이하기 위해서 이같은 한 맺힌 자 같은 절박한 기도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