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n-001.jpg감나무는 한국, 중국, 일본 밖에서는 아무리 옮겨 심어도 살지 않는, 고집 있고 주체성이 강한 동양(東洋)의 나무다. 그래선지 감나무를 칭송하는 예찬도 있다. 이를테면 감나무에도 사람이 따를 수 없는 오절(五絶), 오상(五常)이 있다 했다.

(1) 수(壽)-몇백 년을 사니 목숨이 길고, (2) 무조소(無鳥巢)-새가 깃을 들이지 않으며, (3) 무충(無蟲)-벌레가 꾀질 않고, (4) 가실(嘉實)-열매 달기가 그보다 더한 것이 없으며, (5) 목견(木堅)-나무가 단단하길 역시 비길 나무가 없다는 것이 감나무의 오절이다.

또 단풍진 감나무 잎이 시엽지(枾葉紙) 또는 자연전(自然箋)으로서 글을 쓰는 종이가 된다 하여 '문(文)'이 있고, 또 나무가 단단해 화살촉으로 쓰인다 하여 '무(武)'가 있으며, 만천하의 과실 가운데 속과 겉이 다르지 않고 똑같이 붉은 것은 감 밖에 없다 하여 표리부동의 '충(忠)'이 있고, 이 빠진 노인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과실이라 하여 '효(孝)'가 있으며, 또 서리를 이기고 만추(晩秋)까지 유일하게 버티니 '절(節)'이 있다 했다. 문, 무, 충, 효, 절..... 이것이 감나무의 오상이다, 또한 나무가 검고(黑), 잎이 푸르며(靑), 꽃이 노랗고(黃), 열매가 붉으며(赤), 곶감에서 흰 가루(白)가 난다 하여 오색(五色), 오행(五行), 오덕(五德), 오방(五方)을 고루 갖춘 유일한 나무라 하여 우러러보기도 했다,

  감나무에 따른 우리 민속도 다양했다. 백년 된 감나무에는 1천 개의 감이 연다하여 감나무 고목(古木)은 자손의 번창과 아들 낳길 비는 신앙의 대상, 곧 기자목(祈子木)이 되고 있다. 오뉴월에 노오란 감꽃이 떨어지면 처녀나 부녀자 할 것 없이 감꽃 주워다 실에 꿰어 목걸이를 하는 습속이 있는데, 감꽃목걸이 역시 아들 잘 낳길 비는 주술(呪術)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또한 한량들이 붉게 물든 감나무잎을 말려두었다가 그 시엽지에다 시(詩)나 연문(戀文)을 써서 보내는 낭만도 있었다.

 감나무를 베면 목리(木理), 곧 나무무늬가 다양하여 혹은 그림도 되고 글자도 되곤 하는데, 이로써 세상의 앞날이나 풍흉(豊凶)이나 가운(家運)의 앞날을 점치기도 했다. 그래서 세상이 흉흉하거나 수상하면 감나무를 베어보고 앞날을 점치는 습속도 있었다. 감나무에 대한 가장 오래된 중국기록은 한나라 때 사전인 '설문해자(設文解字)' 에 나오고 또 일본에서는 6세기 후반에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부터 감나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문헌상으로는 고려 숙종(肅宗) 때(1103) 송(宋)나라에서 편찬된 고려말 사전인 '계림유사(鷄林類事)',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의서(醫書)인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고려 고종)에 감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허균(許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넓적 감은 온양 홍시(溫陽紅枾)가, 뾰족 감은 남양각시(南陽角枾)가 그리고 검은 감은 지리산의오시(烏枾)가 유명하다 했다. 

 감나무의 실용적 가치로서 앞서 오절, 오상에서도 나왔듯이 단단하다는 특성을 들 수 있다. 그래서 망치의 머리 부분으로 감나무를 제일로 쳤다. 단단한 뿐만 아니라 탄력(彈力)까지 있어 사람이 들이는 힘보다 강한 타력을 내기에 십상이다. 들은 바로 골프채의 우드헤드로 묵은 한국 감나무 이상 좋은 것이 없다하여 많은 고목들이 베임을 당하고 있다니 감나무 무상(無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