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응모 수상작품
                                   신인 당선 작품(시 부문 장원)

                                                                                                이 재 형

어두운,

바다를 짚고 일어선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라

 

사랑도, 미움도

설움도, 아픔도

닳아지고 엷어져

퇴색해 버린 희망까지도

 

나의 팍팍한 하루를 밝혀주었던 그대

돌아가는가

 

바닥에 남은 찌꺼기

사소한 진개까지도 가슴에 쓸어안아

생각의 두께를 더하여

노을로 드리우더니

 

그대, 말이 없구나

오늘 하루의 소멸한 희망만큼

내일을 꿈꾸리라

밤 어두워,

보이지 않는 만큼의 크기로

꿈 품으리라

 

억겁을 돌고 도는

물레방아의 역사

비우고 채우는 물길 따라

오르고 내리며

영원을 살아가리라

그대와,



연을 날리며

                                                                                                                                                     이 재형

  나의 유년은
속된 세상 등지고
깊이 숨어든 속리산 자락
깎아지른 절벽아래서
푸른 하늘 향해 높이 높이
날아오르던 이카로스의 날개였다

여기, 오늘, 나는
한 날의 무게에 치우쳐
한쪽으로 기우뚱대다
곤두박질 천길 아래 낭떠러지
내리꽂히거나
약삭빠르게 흔들리며
간신히 버티는 나날이다

바람을 잘 타야 살아남는다고들 한다
잡은 끈이 든든해야 오래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연줄을 풀고 감는 얼레처럼
팽팽히 밀고 당기며
바람에 맞설 수 있어야 산다고들 한다

미로를 뚫고 수직의 하늘을
높이높이 오르는 것도 좋지만
추락하지 않고 안전하게 내려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나의 유년은,
절벽아래서 연을 날며
바람타고 높은 하늘을 비상하는
이카로스의 꿈이었다.

<당선소감>

시인 이재형.jpg
      이 재형 시인

* 1957
725
* 충북 보은 출생
* 부천시청 팀장
* 허균문학상 시 부문 대상수상
* , 일 국제 예술문학상 시 부문 대상수상
* 연락처: 010-9808-1478

 ‘바람 앞에 마주서서
 정신을 놓지 않으려 입술 깨문다. 칼바람에 눕지 않으려 휘청대며 서 있다. 누군가의 아늑한 품에 안기고 싶은 때, 흔들리다 야윈 등 기대고 싶을 때, 언제나 혼자인 나, 차라리 바람에 온 몸 맡기고 칼바람 끌어안고 언 가슴 부비며, 겨울 삼동 긴긴 밤을 바람과 살 섞으며 한 몸이 된다. 바람 앞에 꺾이지 않는 늘 푸른 소나무처럼, 오래 오래 살아남으려 흔들린다.

 새가 바람이 무서워 바람을 피한다면, 그 새는 하늘을 날 수 없다. 연이, 바람이 무서우면 하늘을 날아오를 수 없다. 비행기가 바람이 두려워 바람을 피한다면 땅을 기어가는 자동차이지 비행기가 아니다. 새와 연과 비행기의 공통점은 바람에 맞서야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점이다. 산과 들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피어나는 들꽃과 아늑한 비닐하우스 속에서 피어난 꽃이 무엇이 다른가? 양계장 속에서 사람의 손길에 보호받으며, 먹을 것 잠잘 것을 걱정 없이 살고 있는 닭과, 낭떠러지 벼랑 끝에 가시를 물어다가 집짓고,
 
 
비바람 눈비 맞으며 살아가는 독수리와 무엇이 다른가? 살아있는야성과 생명력의 있고 없음의 차이다. 삶의 의미와 가치의 있고 없음의 차이다. 비바람 안 맞는 비닐하우스 속의 화초나 닭은 살아있으나 산 생명이 아니다. 그 속에는 본질적인 삶의 의미나 가치, 생명력이 이미 사라지고, 박제된 거짓 신기루 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10
여년을 내가바람 앞에 마주서서견딜힘을 주신 박영남 교수님과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주신 지저스타임 사장님께 충심으로 감사드리오며,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20118월 성주산 아래서
                                                  이 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