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페르소나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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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는 무척이나 바빴습니다. 광주에서 있었던 전국장로회 모임에서 설교를 하고 대구에 가서 영남협의회에서 설교를 하고 또 대전에서는 전국호남협의회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금요일은 글로벌 에듀 신년하례회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각기 다른 곳이지만 같은 설교를 하면 안 됩니다. 왜냐면 중복해서 참석한 분도 계시고 또 기자들이 오기 때문에 재탕 설교를 한다고 할까 봐서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목요일에 대전 유성에서 설교를 했는데 많은 분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축사나 격려사를 하러 오신 분들이 대놓고 저의 설교를 막 극찬해주셨습니다. 특히 강태구 목사님은 매주 저의 설교를 듣는데 소 목사님이 논리적이고 법리적 설교를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눈물 흐르는 모습을 보면 자기도 가슴에서 눈물이 젖어온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봤더니, “소 목사님의 설교에 진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심과 진심이 통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지요.

 

순간 저는 성령의 페르소나로서의 설교자상이 생각났습니다. 이것은 얼마 전에 칼빈대학교 설교학 교수인 김덕현 목사님이 발표한 논문이기도 한데요, 그는 설교자의 상을 세 가지로 나눴습니다. 첫 번째는 명제적 설교자상입니다. 이 설교 형식은 본문에서 추출한 신학적 명제 혹은 중심 사상을 기반으로 작성된 설교입니다. 이 설교는 전통적일 뿐 아니라, 굉장히 논리적이고 권위주의적입니다. 거의 전통적인 설교가 이렇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교의 단점은 성경의 의도보다는 설교자의 의지와 사상이 앞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자의 권위에 무게를 실을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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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는 서사 중심적 설교자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야기설교를 말하는 것인데요. 이 설교는 신학적 명제나 교리적 내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지 본문의 의도를 이야기나 스토리 중심으로 전달하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이야기꾼 설교자죠. 성경은 원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압축된 문장으로 기록된 것이죠. 그러므로 오늘날 설교자는 성경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서 회중에게 스토리텔링을 잘해야 합니다. 이것은 명제적 설교보다는 진일보하고 청중과 더 소통이 되는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은 이야기 설교에 심취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설교에 대한 강의도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세 번째로 김덕현 교수님은 성령의 페르소나의 설교자상을 논했습니다. 제가 쓰는 용어에 의하면 극화적 설교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트리니티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벤후저 교수는 설교를 거룩한 극장에서의 거룩한 공연’, 혹은 교리의 드라마로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설교도 거룩한 공연의 차원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설교자는 하나님, 곧 성령의 페르소나가 돼야 됩니다. 영화에서 작가나 감독은 영화에 등장인물로 출연하지는 않지만, 청중에게 표현하고 싶은 감독의 의도를 주연 배우를 통해서 드러나도록 하지 않습니까? 예컨대 봉준호 감독의 의도를 송강호라고 하는 배우가 잘 연기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연기는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그 작가와 감독이 의도하는 바에 진실한 감정과 전심을 담아야 제대로 연기가 가능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달하고 표현하는 성령의 페르소나가 되기를 원합니다. 한때는 이러한 설교를 제가 광대설교라고 표현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광대라는 말이 별로 그렇게 좋은 어감이 되지 않아서 극화적설교라고 표현한 거죠. 그러니까 성령의 페르소나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설교자가 성경 말씀을 전심으로 연구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성경에 나타난 이야기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전달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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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성언운반 일념의 사상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만 전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려면 성경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감정도 함께 수반이 돼야 됩니다. 아마 강태구 목사님이 제 설교에 진심이 있다.”는 말은 전문적인 용어로 제가 성령의 페르소나로서의 설교자의 모습을 보였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필요에 따라 명제적 설교도 하고, 때로는 이야기 설교도 하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페르소나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인격적으로 전하는 설교자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