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으로 죽은 기독교를 살리자!

종말 속의 구원의 소망 -

 

현 본방송 칼럼리스트 송택규 박사.jpg

그러므로 인간의 구성요소는 영과 혼과 육신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혼과 영은 둘이 아니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혼과 영을 따로 넣어주신 것이 아니라 생령을 하나로 묶어 동시에 넣어주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혼과 영이 하나로 될 때 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영혼과 육신의 이분법적 요소는 서로 떨어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본적 구성 요소였다.

 

그런데 이 구조가 깨어지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이 깨어졌다는 증거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령 네가 죽으리라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마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따먹고 말았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들은 에덴에서 마귀의 세상으로 쫓겨나고 하나님과 헤어지게 됐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의 영의 죽음이다.

 

타락 이후 하나님의 영이 떠난 인간에게는 혼과 육신만 남게 되었다. 이것은 짐승과 같은 것으로 성경은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이 떠난 인간을 가리켜 짐승의 숫자인 666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다행하게도 성령 하나님이 떠나신 자리에 그 흔적이 남게 되었는데 그것을 우리는 양심이라고 부른다. 이 성령님의 흔적인 양심 때문에 우리는 어렴풋이라도 선()을 알게 되었고 신()에게로 돌아가고자 하는 종교적 마음을 갖게 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지키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간의 사망을 혼과 영이 분리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분리될 때 마귀가 끼어들어 병들게 하고 타락하게 하여 결국 인간을 파멸시켜 지옥으로 가게 만드는 것이다.

 

2. 양심은 성령의 그림자일 뿐이다.

타락한 인간의 양심은 태초에 성령 하나님께서 오셔서 계셨던 흔적이다. 이 흔적을 예를 들어 말하면 그을음이라 할 수 있는데, 그을음이란 불을 때다 보면 불길이 닿은 주변에 꺼멓게 불길의 흔적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그 그을음은 여간해서는 지워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인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성령의 흔적인 양심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바로 이 양심의 실체는 성령님이시고 그 주인도 성령님이시다. 기독교는 양심의 실체인 주인을 다시 모셔 들이는 양심 회복운동이며 그로 인해서 구원에 이르는 종교이다.

 

이 양심의 실체가 회복되지 않는 한 인간들은 양심대로 살 수가 없다. 이 해답을 얻기 위하여 인간들은 각양각색의 해답을 내어놓으나 어느 것도 이것에 도달할 수 있는 명확한 해답을 발견치 못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미 하나님의 영이 떠난 이후 우리의 혼을 마귀가 점령하여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세상 방법으로도 그것을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마귀는 타락한 사람에게 먼저 마귀의 속성인 아집(자존심)과 독선(잘난체, 교만)과 이기심(탐욕)을 심어주었다. 타락한 인간들의 속성 자체가 마귀의 속성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인간들이 아무리 제도를 바꾸고 노력한다 해도 뿌리에서 나오는 자양분이 나쁘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나쁜 뿌리에서 잘려 나와 본래 인간의 뿌리였던 하나님께로 돌아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 되라고 말하는 것이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11:16-19).

 

예를 들어 내가 악에서 떠나야지’, ‘고쳐야지’, ‘잘못되었으니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아무리 결심을 해도 내 뿌리 속에 있는 악의 실체(마귀의 속성)가 이를 내버려두지 않으므로 결심에 결심을 해도 작심삼일이요, 어떤 때는 악을 즐기게 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마귀는 악령의 실체요, 또한 실제 힘을 가지고 역사하는 실존의 영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영물인 마귀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내 양심이 잘해 보고자 해도 결국은 실패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죄의 법과 양심의 두 법이 늘 싸우나 결국은 죄의 법 아래 양심의 법이 무릎을 꿇고 만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7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한탄하였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없는 인류의 역사는 악의 역사가 지배하게 되었고 인간들은 곤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심은 선의 모양일 뿐, 선을 이룰 수 있는 생명력이나 원동력이 없다. 그것은 생명력 있는 실체가 빠져있는 허상이요,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3. 양심의 주인을 모셔들이라.

악에서 떠나려면 양심의 자리에 본래 있었던 양심의 주인이요, 선의 실체이신 성령님을 모셔들이면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요, 구원의 시작이다. 마귀가 살아있는 악령의 실체이듯 성령님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성령님이 들어오시면 마귀의 실체를 이길 수 있다고 보는가? 그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영들의 주인이시요, 왕이시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이 본래 계시던 양심의 자리에 돌아오시면 마귀가 지배하던 혼이 성령님의 강력한 간섭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악한 마귀의 계교와 생각들을 물리치고 마귀로부터 승리할 수 있게 된다. 고로 성도들은 반드시 거듭남(3:3)을 통하여 성령 하나님을 만나야 되고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함께 사는 삶을 살 때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