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으로 죽은 기독교를 살리자!

종말 속의 구언의 소망 -


칼럼리스트 송택규 박사.jpg

지난호에 이어서...

2) 왜 교파마다 구원의 교리가 다른가?

기독교에는 수많은 교파들이 있다. 정확한 숫자인지는 모르나 추산으로 300여 종파가 있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기독교 이름만 빌렸을 뿐 보수나 진보적 기독교단과는 전혀 다른 이단종파들도 있다. 그러나 이단 종파들을 제외하고도 종파 나름대로 다 교리들을 가지고 있다. 이 교리 중에서 가장 핵심적 교리가 바로 구원관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믿음의 기둥이 되는 구원에 이르는 순서들이 서로 다르다.

 

한 하나님, 한 예수 그리스도, 한 성령님인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왜 구원(천국)으로 가는 길이 다른 것일까? 길이 다르면 서로 다른 길로 가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어디 있는 것일까? 이것이 옳은 것인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럼 보수적 대표 교파 몇 개만 살펴보자, 대표 교파 중에는 장로교파와 감리교파, 침례교파가 있다. 이 교파들 속에 두 개의 큰 사상이 흐르고 있는데 하나는 칼빈주의 사상이요, 또 하나는 알미니안 사상이다. 칼빈 사상은 16세기경 장로 제도를 확립한 칼빈이 주장한 것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예정론을 강조하고 있는데, 장로교 측에서 이를 따르고 있다.

 

알미니안 주의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중시하고 인간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상으로 웨슬리의 감리교 쪽에서 따르고 있다. 이 두 사상은 서로 상관없는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성경에 다 있는 사상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분리시켜 서로 다른 사상처럼 주장하는 데 있다. 이것은 서로 분리 되어 대립될 사상이 아니라 둘이 하나로 수용되어야 합당한 사상들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인간이 스스로 자유의지를 펴나가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사상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도록 주어진 것들이다.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보면 태초에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처럼 기계적인 인간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형상 즉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만드셨다. 그래서 모든 것들을 자기 의지대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하게끔 하셨다. 그러나 단 하나 조건을 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즉 말씀 안에서의 자유인 것이다. ‘에덴동산 안에서 자유를 주셨으나 중앙에 있는 실과(선악과)만은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 인간은 자유의지를 부여받았으나 그러나 그것은 조건부였다.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만 행하면 행복하고 주권을 침해하고 밖으로 나가면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사상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자유의지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일부분인데, 이것을 이분법으로 갈라놓다보니 교파가 생기고 서로 대립적 구도로 나가서 파가 갈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장로교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주장하다 보니 한 번 구원받은 자는 결코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고 가르쳐, 교인들을 오만하게 만들었고, 하나님의 주권을 제한하였으며(요즘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절대로 징계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상도 생겨났다.), 또한 감리교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보다는인간의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너무 상반된 교리가 됨으로써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같은 알미니안 주의를 따른다 하더라도 침례교는 이 두 가지 사상을 동시에 수용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2. 구원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각 교파들이 모두 구원의 순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각 단계별로 서서히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견해와 그와는 반대로 구원의 순서는 하나의 논리적인 순서일 뿐, 그와 상관없이 믿습니다!’ 고백하는 순간에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순간 구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구원은 개인적인 영적 문제로 우리가 그 사람이 구원 받았는지, 아닌지 구별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문제는 시간적 구원이나 순간 구원을 주장하는 쪽이나 믿음의 순서(구원의 서정)는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보자. 주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느니라’ ‘네 믿음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주님의 말씀을 분석해보면 진실한 믿음이 없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뜻이다. 믿음이 들어갈 때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보아 그 믿음이 들어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덮어놓고 믿습니다!’ 말 한 마디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사람이 듣고, 보고, 느끼고, 배우고, 깨달아져 자기 영혼이 움직여질 때 성령이 동시에 역사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우리의 의지를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다.

 

그러나 사람의 지적 능력과 영적 능력에 따라 평소 준비가 되었던 사람에게는 듣는 순간 모든 순서의 조건들이 충족 되어 순간 구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믿음이 바로 생기지 않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믿음이 자라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와 더불어 합력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우리의 동반자요, 구원자이시다.

 

1)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원인

구원에 이르는 방법인 구원의 단계가 제각각 달라 불분명하다: 정확한 디렉션(Direction)인 안내지도(map)가 없었다. 불분명한 디렉션으로 불신을 키워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구원의 단계적 목적의식의 상실로 비전(vision)이 없어져 기독교에 대한 불신과 허무감을 맛보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