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열두 아들에 대한 祝福 豫言 -8-


언론인 정기남 목사(국장).jpg

 창 49:13~22 “¶ 스불론은 바다의 항구에 거하리니 그는 배들을 대는 항구가 될 것이요, 그의 지경은 시돈에까지 미치리로다. 14) ¶ 잇사갈은 두 짐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15) 안식하는 것이 좋으며 또 그 땅이 아름다운 것을 그가 보고 어깨를 낮추어 짐을 메고 종이 되어 공세를 바쳤도다. 16) ¶ 단은 이스라엘의 지파들 중의 하나로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17) 단은 길가의 뱀이요, 행로의 독사로서 말발굽을 물어 말 탄 자가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18) {}, 내가 주의 구원을 기다렸나이다. 19) ¶ 갓은 군대가 그를 이길 것이나 끝에는 그가 이기리로다. 20) ¶ 아셀에게서 나는 그의 빵은 기름지리니 그가 왕의 진미를 내리로다. 21) ¶ 납달리는 풀어 놓은 암사슴이니 그가 좋은 말들을 내는도다. 22) ¶ 요셉은 열매가 많은 가지 곧 샘 옆의 열매가 많은 가지인데 그것의 작은 가지들이 담을 넘는도다”. 아멘.

 

4. 항구에 거하는 스불론

49:13 “¶ 스불론은 바다의 항구에 거하리니 그는 배들을 대는 항구가 될 것이요, 그의 지경은 시돈에까지 미치리로다”. 고 했는데, 이는 스불론 지파의 企業이 배 매는 海邊이 될 것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스불론 지파는 港口都市開拓(개척)하면서 海外(해외)貿易(무역)하는 일을 擔當(담당)하게 될 것이고, 또한 漁業(어업)從事(종사)하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水産市場席卷(석권)하게 될 것을 암시한다. 실로 이스라엘 支派중에서 없어서는 안 될 支派.

 

5. 건장(健壯)한 나귀같은 잇사갈

49:14~15‘¶ 잇사갈은 두 짐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15) 안식하는 것이 좋으며 또 그 땅이 아름다운 것을 그가 보고 어깨를 낮추어 짐을 메고 종이 되어 공세를 바쳤도다’. 아멘.

 

여기서 . 잇사갈은 두 짐 사이에 꿇어앉은 건전한 나귀라고 했다(14). “잇사갈은 두 짐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했는데 이는 강한 힘을 가졌으면서도 겸손한 잇사갈을 묘사하고 있는 말이다. 실로 나약한 양에 비하면, 건전한 나귀는 대단히 힘이 강한 짐승이다. 하지만 나귀는 강한 힘을 가졌으면서도 나약한 양떼들의 두 짐 사이에서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앉은 건전한 나귀이다. (이 광경을 한번 상상해 보라). 실로 이 모습은 성도의 姿勢(자세)가 되어야 한다. 15:1에서 이 말은 강한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약한 자의 약점을 대신해야 할 나의 짐이라는 뜻이다.

 

. 잇사갈은 大地를 자랑하는 농경사회(農耕社會)平和主義者이다(15). “안식하는 것이 좋으며 또 그 땅이 아름다운 것을 그가 보고 어깨를 낮추어 짐을 메고 종이 되어 공세를 바쳤도다”. 아멘. 여기서 잇사갈은 안식하는 좋게 여긴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말은 농경(農耕) 생활의 힘든 勞動 가운데서도 잠시 쉴 곳을 찾아 休息(휴식)하는 기쁨을 누리는 잇사갈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묘사한 말이다. 이는 농경사회(農耕社會)만이 갖는 平和祝福이다. 쉴 곳을 잃어버린 弱肉强食의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실제(實際)로 더 큰 問題平和使徒敎會마저도 처절한 弱肉强食 속에서 쉴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성도들의 社會에서도 平和롭게 쉬는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土地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이는 농경인(農耕人)으로서 대지(大地)토지(土地)를 사랑하는 잇사갈의 精神을 묘사한 말이다. 농경사회(農耕社會) 사람들은 모두 土地를 사랑한다. 聖徒自己職分을 보고 즐거워하며 사랑해야 한다.

 

. 잇사갈은 압제 아래서도 섬기는 일을 다하는 자다(15). ‘어깨를 낮추어 짐을 메고 종이 되어 공세를 바쳤도다’. . 잇사갈은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가 메어야 할 점이 있으면 어깨를 낮추고 짐을 매었으며, . 잇사갈은 어떠한 압제 핍박(逼迫), 고난(苦難), 試驗) 밑에서도 自己가 맡은 섬기는 봉사(奉仕)라고 다 해낸다. 실로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일꾼이다. 敎會에는 이러한 성도가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성도를 쓰신다. 강한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모든 성도들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성도! 주께서 맡겨 주신 일거리를 보고 기뻐하며 아무리 힘이 들어도 어깨를 낮추어서 짐을 메는 성도! 어떠한 핍박과 압제가 와도 자기의 섬길 봉사의 일을 다 해내는 성도!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나귀 새끼를 타신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21:1~11, 19:28~40). 성도 여러분! 잇사갈처럼 힘이 있으나 겸손하고, 주님이 맡겨주신 직분을 보고 기뻐하며, 어떠한 환란이 오더라도 맡은 사명을 다 감당하라는 말씀이다! 아멘

 

6. 길의 뱀 같은 단

49:16~18‘¶ 단은 이스라엘의 지파들 중의 하나로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17) 단은 길가의 뱀이요, 행로의 독사로서 말발굽을 물어 말 탄 자가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18) {}, 내가 주의 구원을 기다렸나이다’. 라고 했다.

 

. 단은 이스라엘 지파 중에 하나로서 그 백성을 심판할 地位에 있다(16). ‘¶ 단은 이스라엘의 지파들 중의 하나로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고 했다. 여기서 단지파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에 있어서 때로는 그 백성을 심판하는 지위를 소유했었음을 묘사한 말이다. 야곱의 예언대로 단 지파는 士師時代에 사사인 삼손을 내어 이스라엘을 통치하기도 했다(13:1, 16:31). 하지만 이렇게 축복받은 지파가 어찌하여 몰락했는가?

 

. 단은 길의 뱀이며, 행로의 毒蛇(17). ‘단은 길가의 뱀이요, 행로의 독사로서 말발굽을 물어 말 탄 자가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단은 길가의 뱀이요, 행로의 독사이며, 지나가는 자를 물어서 떨어지게 하는 뱀이다. 단 지파는 이스라엘의 12 지파에서 이단의 모형이다. 7:5~7절을 보면 단 지파는 救援의 인침을 받은 이스라엘의 지파에서 除外(제외)되어 있다. 결국 단 지파의 天國門(救援) 하늘 문은 굳게 닫혀있다.

 

오늘 이 시대를 보면 교회에서도 단과 같은 성도가 의외로 많다. 신앙의 행로에서 숨어 있는 독사처럼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의 발목을 물어서 신앙생활을 떨어뜨리고 중단시키는 독사요 뱀과 같고 독사와 같은 성도! 신앙의 행로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성도들의 발목을 물어서 신앙을 상하게 하는 뱀과 같고, 독사와 같은 성도! 실로 험악한 신앙의 길목에는 뱀과 독사가 항상 대기하고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 뱀과 독사를 어떻게 이기고 통과하느냐가 문제다. 신앙의 광야에서 독사에게 물렸을 경우 급히 높이 매달린 구리 뱀처럼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한다. 그런 지경에 급히 높이 달리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본인의 영혼을 죽이고, 영원히 죽어서 다시는 살아날 수 없는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떨어지고야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신 차리고 깨어있어 기도드려야 한다.

 

. 야곱은 여기서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18). “오 주여, 내가 주의 구원을 기다렸나이다라고 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뱀과 독사의 공격으로부터 구원을 요청하는 야곱의 기도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독사와 같은 성도에게 물렸을 때는 지체하지 말고 야곱과 같이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가 급하다. 반드시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를 게을리 드려서는 자신이 죽는다. 죽지 않으려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보장받으려면 기도하라는 것이다. 할렐루야!

 

7. 軍隊追擊을 이기는 갓

49:19 ‘¶ 갓은 군대가 그를 이길 것이나 끝에는 그가 이기리로다’. 하였다.

.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았다. . 이는 군대같이 강한 試鍊과 강한 환란과, 강한 誘感(유감)과 강한 挑戰(도전)을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 이는 軍隊(군대)()처럼 많은 試鍊과 환란, 많은 유감과, 도전을 받았다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어떤 성도는 이 같은 일을 체험했다고 한다. . 하지만 갓은 군대처럼 강하고 숱한 추격을 받으면서 오히려 뒤쫓아 추경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갓의 能力이며 體力이다. 우리 성도들의 영적 능력과 영적 체력이 이와 같아야 한다. 수많은 시련들을 오히려 추격하는 강력한 영적 체력을 소유해야 한다. 교회는 이러한 성도들이 있어야 한다. 시련들의 추격을 이겨낼 수 있다.

 

8. 기름진 식물을 내는 아셀

49:20 ‘¶ 아셀에게서 나는 그의 빵은 기름지리니 그가 왕의 진미를 내리로다’.

아멘. 본문은 기름진 식물이 아셀의 소산이 될 것을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아셀지파는 지중해의 해변을 끼고 있는 좋은 땅을 기업으로 받아서 놀랍도록 기름진 식물을 풍성하게 수확하는 지파가 되었다. . 아셀은 기름진 진미로 왕을 공궤했다. ‘나는 그의 빵은 기름지리니 그가 왕의 진미를 내리로다고 했는데 아셀은 기름진 식물로 진미를 내린다는 것은 좋은 음식으로 왕을 공궤하고 축복받은 것을 가리키고 있다. 실로 귀한 사명을 타고난 자다. 교회마다 아셀과 같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다. 수고하여 얻은 식물로 하나님을 공궤하고 하나님의 사자를 공궤하는 아셀같은 성도들이 많다.

 

9. 암사슴 같은 납달리.

49:21 ‘¶ 납달리는 풀어 놓은 암사슴이니 그가 좋은 말들을 내는도다’. 아멘.

납달리는 풀어 놓은 암사슴이니라고 했다. 이는 흑암에서 풀려나와서 영적 자유를 얻고, 푸른 초장에 놓인 암사슴처럼 기뻐서 뛰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말씀이다. 흑암의 세력에서 풀려나온 성도는 암사슴처럼 기뻐서 뛴다는 것이다. 예컨대 행 3:1~10까지 읽어보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베드로와 요한의 기도로 고침을 받고 그는 기뻐서 암사슴처럼 뛰면서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다고 했다. 이것은 靈的自由를 체험하지 못한 신앙인은 암사슴처럼 기뻐서 뛸 수 없다. 신앙은 체험자만이 그 진가를 알고 기뻐하게 된다.

 

오늘 현대 교회를 출입하는 성도 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암사슴처럼 기뻐서 사뿐사뿐 뛰면서 교회에 오는 성도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도일수록 긴장감을 풀어서는 안 된다. 어느 순간 사단 마귀가 파고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에 무르익은 것 같은데 언제 靈的自由를 잃어버릴지 모른다. 天國 가는 길목에는 굶주린 사자들이 떼를 지어 잠복하고 있다.

 

애청자 여러분 주일 성수 하려고 마음먹었으면 놀러 가자는 유혹에 밤새껏 가슴 설레는 마음에 잠을 잘 수 없었지만, 교회 목사가 나를 위하여 기도하신 것을 생각하면 정신이 바짝 들어 교회를 향해 오는데 암사슴처럼 사뿐사뿐 뛰면서 주일 아침 교회에까지 오는 성도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 영적 자유를 얻어서 암사슴처럼 사뿐사뿐 뛰면서 신앙생활을 하시길 바란다. 그러나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방심하면 끝장이다. 할렐루야!

 

. 다시 21절을 보면 그가 좋은 말들을 내는도다’. 고 했다. 이는 靈的自由所有한대서 흘러나오는 영의 소리이다. 靈的自由를 소유하지 못한 자의 입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소리이다. 感謝하는 소리, 사랑하는 소리, 용서해주는 소리, 허물을 덮어주는 소리, 기도하는 소리, 전도하는 소리, 봉사하는 소리, 등등 계속해서 입에서는 꿀 같이 단 소리, 얼굴에 기쁨이 넘쳐난다. 여러분! 우리는 이 시간부터 남을 한 없이 용서하되 남을 죽이는 비난과 음해성 언어와 행동은 하지 말고 납달리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란다. 할렐루야!

 

10. 샘 곁에 무성한 가지인 요셉

49:22 ‘¶ 요셉은 열매가 많은 가지 곧 샘 옆의 열매가 많은 가지인데 그것의 작은 가지들이 담을 넘는도다’. 아멘.

. 요셉은 열매가 많은 가지! 라고 했다. 이는 요셉이 하나님께 받은 엄청난 복을 묘사한 말인데, 야곱은 여기서 요셉이 하나님께 받은 복을 두 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요셉이 받은 복은 무궁무진한 축복이었음을 묘사하고 있다. “요셉은 열매가 많은 가지 곧 샘 옆의 열매가 많은 가지라고 했다. 요셉이 받은 복은 샘 곁에서 즉 샘은 교회요, 물은 말씀인데, 복은 교회에서 말씀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셉의 축복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무성한 샘 곁의 축복인 것이다. 말씀을 찾아보면 축복이 소낙비처럼 내리게 된다.

 

17:8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 곧 뿌리를 강가로 뻗은 나무 같아서 더위가 오는 때를 보지 아니하며 잎이 푸르고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으며 열매 맺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리라’. 아멘.

 

22:1~2 ‘또 그가 [하나님][어린양]의 왕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정결한 강을 내게 보여 주니라. 2) 그 도시의 거리 한가운데와 강의 양쪽에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그것이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고 달마다 자기 열매를 냈으며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그 민족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있더라’. 아멘.

 

23:1~3 ‘(다윗의 시) {}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분께서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3) 내 혼을 회복시키시며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행로들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아멘.

 

요셉이 하나님께 받은 복은 차고 넘치는 복이다. “그것의 작은 가지들이 담을 넘는도다하였다. 이 말씀의 의미는 놀라운 복이요 담을 넘는 번영의 복이다. 요셉이 받은 복은 차고 넘쳐서 이웃에게까지 넘어간 것을 묘사한 말이다. 실로 우리도 이러한 축복을 받아 넘치시기를 축원함. 내가 받은 축복이 차고 넘쳐서 이웃에게까지 도움이 되는 축복을 받기를 기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