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럭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 그는 누구인가 


 
 "이제 미국에 변화가 찾아왔다" 오바마는 당선 연설을 통해 정치, 외교, 환경 등 모든 방면에서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선언했다.


버럭 오바마는 대선을 통해 이런 믿음이 새로운 21세기의 약속으로 계속 지켜질 수 있어야 한다며 “지금 이 순간이 그리고 이번 대선이 21세기에도 미국의 약속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는 우리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또 그들의 선조부터 후손들까지 수백 년 넘게 가슴 속에 담아온 응어리를 녹게 만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미국 전역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기 위해 몰려든 오바마 후보와 비슷한 피부색을 가진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일부는 살아서 이런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혼 잣 말처럼 하기도 했다.


흑인이 대선후보가 된 것은 미국이 독립선언을 통해 건국한 1776년 이후 232년 만이고 아프리카에서 미국에 끌려왔던 흑인들이 1863년 1월1일 노예에서 해방된 지 145년 만의 일이다. 그리고 흑인 남성이 투표권을 부여받은 1869년으로 따지면 139년 만이다.

이런 후보 수락 연설 장면 하나 하나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45년 전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서 “나에게 꿈이 있어요”라고 한 연설에 대한 기억을 안고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흑인들에게 흥분이자 감동이었다.

 

버럭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는 1961년 8월 4일, 하와이 주. 호놀룰루에서 출생. 케냐 출신 미국 유학생이었던 흑인 아버지와 미국 캔자스 주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으로 한때 마약에 손을 대는 등, 불행한 청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991년, 하버드 대학교 법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이후 시카고시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기독교계 자선봉사단체 활동을 하면서 지역기반을 다졌고, 1990년대에 지역 인권 변호사로 명성을 드높였다.1996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이 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으며, 활발한 입법 활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2004년 11월, 미국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70%의 기록적인 득표로 당선,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국 중앙 정치무대에서 사실상 유일무이한 개혁적 아프리카계 정치인이라는 프리미엄과 더불어,2004년 민주당 보스턴 전당대회 등에서 보여준 천재적인 대중연설 능력과 열성 지지자들의 성원에 힘입어,2007년 2월, 제44대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경선에 출마를 선언하였다.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시절부터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에 거듭 반대해온 그는, 집권시 2008년 3월까지 이라크에 파병된 자국 군인들의 완전한 철수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전 국민 건강보험 혜택과 대학 교육 비용 절감 및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세금 제도 개편 등 더욱 적극적인 사회복지 정책들을 추진하고, 또한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한 교토 의정서의 조속한 비준과 더불어 에탄올 등의 대체 에너지 개발을 촉진하며, 초고속 통신망의 조기 구축을 통한 지식정보화강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또 워싱턴 기성 정치권의 신뢰 회복 및 공정하고 투명한 정치제도 개혁을 약속했다. 젊은 층과 여성 및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인기가 더 높으며, 흑인들의 지지세가 높아진 최근에는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는데 성공했다.

버럭 오바마는“케냐와 캔자스 출신의 저의 부모는 유복하거나 유명하진 않았지만 미국에서 그들의 아들이 가슴 속에 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라며 수락 연설을 시작했다. 버럭 오바마 당선자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 시카고에 운집한 12만 5천여 명의 청중을 향해 부시 정권의 종식을 선포했다. 변화, 이 단어는 오바마의 선거운동 21개월을 상징하는 핵심 키워드였습니다. 양극화, 사회적 관용의 상실, 의료보험 등 복지 시스템의 붕괴, 에너지 위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부시 정권 8년의 잘못된 것들을 고쳐나가자는 것이다. 오바마는 그 일이 자신의 임기 내에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는 난제라며 국민의 봉사와 희생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