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닥친 아이슬란드가 꽁꽁 얼었다 
 
 흥청망청 써버린 바이킹 후예… 너무 추운 겨울

국가부도 닥친 '빙하의 땅'을 가다

흥청망청 써버린 바이킹 후예… 너무 추운 겨울

미국發 글로벌 위기 첫 희생국은 지금 '검은 크리스마스'를 맞고 있다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편집장으로부터 아이슬란드 출장 제안을 받고 속으로 '잘됐다' 싶었다. 외신을 봐도 자세한 속사정을 알기 어려워 한번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국가 부도 후 바이킹의 후예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지난 1일 오후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항공권을 예약할 때 파리-레이캬비크 직항편은 있는데, 오는 편은 직항편이 없어 암스테르담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예약해야 했다. "왜 오는 편은 직항이 없느냐"고 묻자, "나오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10년 전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해외 나들이객이 급감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레이캬비크행 보잉 757-200 항공기는 썰렁했다. 20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항공기에 승객은 80명 정도에 불과했다.

3시간 30분 뒤 아이슬란드 유일의 국제공항인 케플라비크 공항에 내리자 오후 4시밖에 안 됐는데도 밖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요즘 이곳은 낮 시간이 6시간밖에 안 된다.

공항 세관 검색대를 빠져 나오자 긴 행렬이 보였다. 은행 환전(換錢) 창구 앞에 선 줄이었다. 환전 창구엔 '노 피(No Fee·수수료 공짜)'라고 안내 문구를 붙여놨는데, 막상 돈을 바꾸고 보니 100유로당 2유로의 수수료를 떼고 주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인이 외화를 환전하는 것은 이보다 훨씬 힘들다. 은행에서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제시해야 1인당 월 50만 크로나(약 500만원) 한도 내에서 외화를 환전할 수 있다. 지난달 28일 중앙은행이 외환 거래를 제한하는 법이 통과돼 수출업자들은 수출 대금으로 받은 외화를 모두 국내로 가져와야 한다.

공항 청사를 빠져 나와 택시를 탔다. 운전석에서 튀어나와 짐을 받아 든 50대 후반의 택시기사는 반색을 하며 "점심 먹고 2시간 넘게 기다리다 첫 손님을 맞았다"고 기뻐했다.

"금융위기로 생활이 많이 어려워졌느냐"고 묻자,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했다. "크로나화가 싸진 덕에 외국 관광객이 많이 오지 않느냐"고 하자, "노르웨이 관광객이 좀 늘긴 했는데 다들 전세버스를 타고 다니지 택시는 거의 안 탄다. 반면 기름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죽을 지경"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는 "1L에 100크로나 정도 했던 경유값이 9월 외환위기 이후 불과 두 달 사이에 2배 가까운 180크로나로 치솟았고, 술값과 담뱃값도 20~30%나 올랐다"고 하소연했다. 이 나라엔 소비재 공장이 없어 기본적인 생활용품도 수입에 의존한다. 그런데 환율 폭등으로 수입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달러 대비 크로나 환율은 약 2배로 치솟았고, 11월 물가는 18년 만에 최고치인 17.1% 급등했다.

한참 푸념을 늘어놓던 그는 기자에게 떠나는 날짜를 묻더니 그날 새벽 5시에 호텔 앞에 차를 대기시켜 놓겠다고 했다. 하도 매달리기에 약속은 했지만, 기자는 다음날 약속을 취소했다. 렌터카 비용이 훨씬 싸다는 걸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관광지 중 하나'로 소문난 아이슬란드의 렌터카 회사들이 요즘 손님이 줄자 평소의 50% 이상 할인을 해주고 있었다. 호텔도 마찬가지였다. 기자가 인터넷을 통해 예약한 레이캬비크 시내 중심가의 별 4개짜리 호텔은 '3박 하면 1박은 공짜'로 손님을 받고 있었다. 덕분에 1박당 100달러도 안 되는 요금으로 묵을 수 있었다. 호텔 직원은 "우리 같은 비즈니스 호텔은 금융위기 이후 손님이 뚝 끊겼다. 스페셜 프로모션 가격"이라고 했다.

최근 몇 달간 아이슬란드의 운명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1인당 국민소득 세계 5위의 강소국에서 순식간에 글로벌 금융위기 최초의 희생국으로 전락했다. 지난 10월 3대 민간 은행이 붕괴되면서 국유화됐고, 11월 19일 IMF로부터 21억 달러의 긴급 구제금융 지원을 받으면서 IMF 관리 경제 체제에 들어갔다. 중앙은행은 사실상 파산 상태이고, IMF 관계자는 이 나라 경제가 내년에 10%까지 마이너스 성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겉만 봐선 평화롭고 고요한 북유럽의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호텔 주변의 대로변 상가는 문을 닫은 시간인데도 크리스마스 장식을 화려하게 켜놓고 쇼윈도의 불도 환하게 밝혀두고 있었다. 주택가에서도 집집마다 소박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창가에 해놓은 게 눈에 띄었다.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은 아이슬란드의 현주소를 무엇으로 보여주나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날 현장 취재를 시작하면서, 그런 걱정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겉모습과 달리 속으로 골병이 들고 있는 징후를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텔 직원 소개로 만난 자동차 딜러 지구르손씨. 그는 올 초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연이율 4%짜리 외화(外貨) 대출을 받았다. 일본 엔화와 유로화를 섞어 총 2100만 크로나를 빌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슬란드에는 주택 붐이 일어 새집을 사는 게 유행이었고, 집값의 10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출 하면 곧 외화 대출을 의미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잇따라 올리자 아이슬란드인들은 저리(低利)로 외화 대출을 받는 길을 택했다. 은행들은 외국 자본을 끌어와서 이를 부추겼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닥치자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재앙이 시작됐다.

■물가 급등, 금리 급등, 집값 급락의 삼중고(三重苦)

금융위기 여파로 자동차 딜러 지구르손씨가 갚아야 할 원금은 3500만 크로나로 불었다. 환율이 급등한데다 은행 대출이 물가 연동형이기 때문이다. 1000 크로나의 대출을 받았는데 물가가 5% 오르면 원금이 1050 크로나로 불어난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황당한' 구조인데, 아이슬란드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보편화돼 있다. 게다가 물가를 잡기 위해 중앙은행이 기준 금리를 연 18%로 올리는 바람에 내년부터 적용되는 새 대출 금리는 연 20%대로 치솟을 전망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값은 원래 매수 가격에서 30% 이상 떨어진 상태다.

"정부 긴급조치 덕에 매달 갚는 원리금이 10% 정도 깎이긴 했지만, 현재 상태로는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습니다. 요즘 차도 너무 안 팔려 회사에서 감원(減員) 대상자 선별에 나섰다는 소문도 있는데, 실직이라도 하게 되면 정말 큰일입니다. 제가 팔았던 포르셰, BMW, 볼보 등 최고급 SUV 차량들이 컨테이너에 가득 실려 노르웨이, 덴마크 등에 중고차로 헐값에 수출되는 걸 보고 있노라면 마치 제 신세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울적해집니다."

국립 아이슬란드 대학 교정에서 만난 약대 대학원생 미스트양은 "2~3년 전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은행 대출을 받아 자기 차를 사는 것이 유행했었다"고 전했다. "저한테도 은행에서 '새 신용카드를 만들면 300만 크로나(3000만원)를 대출해 준다고 유혹했었는데, 그때 대출을 받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은행들의 대학생 대출 경쟁이 극에 달했을 땐, PC 구입자금 대출까지 등장했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아이슬란드 개인의 외화대출액만 3500억 크로나(약 3조5000억원)에 이른다. 1인당 평균 100만 크로나(1000만원) 이상의 외국 빚을 갚아야 하는 셈이다.

■금융위기로 연금 수령액이 40% 줄어

샴히아울프(아이슬란드어로 '단결'이란 뜻)라는 간판을 단, 레이캬비크 항구 주변 무료급식소. 10여 명이 공짜 빵과 커피를 먹고 있는 이곳에서 1인당 국민소득 세계 5위 부국(富國)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자원봉사자 구드몬타씨는 "작년 10월에 문을 연 이후 평소 하루 40명 정도가 이곳을 찾았는데, 11월 이후 하루 이용자가 100명 이상으로 늘었다"고 했다.

그는 "전에는 거리의 부랑아와 알코올 중독자들이 주 이용자였는데, 최근엔 실업자뿐 아니라 연금생활자나 자녀를 데리고 오는 싱글맘들도 간혹 있다"면서 "저쪽 구석 한 테이블에 모여 있는 이들은 건설회사에서 해고된 폴란드 노동자들"이라고 귀띔했다.

한쪽 구석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는 이에게 다가가 "왜 이곳에 왔느냐"고 묻자, 자신을 구드몬드라고 소개한, 전기공 출신의 60대 노인은 "금융위기로 연금이 줄어 생활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행에 맡긴 연금이 금융위기로 거의 대부분 날아가버려 매달 받는 연금이 40% 이상 줄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는 "이번 사태를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질문에, 한참을 생각하더니 "정부 당국자도 아니고, 은행도 아니고, 아이슬란드 국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땀 흘려 번 돈이 아니고 빚을 내 살림을 늘리고, 새 물건을 마구잡이로 사들였으니 국민 모두가 잘못한 거지요.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다.

실업률은 지난 10월 1.9%를 기록했는데, 내년 1월에는 7%로 급등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한 지역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18~24세 청년의 절반 정도가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나가는 것을 검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시내 대형 약국 한 곳을 찾았다. 노인 몇몇이 의사 처방전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국 지배인 막그누스씨는 "평소 우울증 치료제를 사러 오는 손님이 하루 400명 정도였는데, 9월 금융위기 이후 600명 이상으로 50%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오후 피크 타임 때는 줄을 서서 30분 이상 기다려야 약을 받아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외국 투기자본에 기댄 성장

지난 몇 년간 아이슬란드 경제는 세계의 부러움과 찬탄의 대상이었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5%를 웃돌아 유럽 국가들을 크게 앞질렀다. 주력 산업인 어업은 고속 성장했고, 지열(地熱) 에너지라는 신산업을 개척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중요한 성장 엔진은 바로 금융과 레버리지(leverage·차입)였다.

국립 아이슬란드 대학 부설 경제연구소의 군나르 하랄드손 교수는 "이번 아이슬란드가 맞이한 경제위기의 원인은 1999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서 금융과 서비스 시장을 개방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그 뒤 무역이 활성화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자 중앙은행은 금리 인상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크로나화가 평가절상됐고, 이는 외화의 유입을 촉진했다. 국제 투기 자본들은 저금리의 달러 자금을 빌려 고금리의 아이슬란드에서 굴리는, 이른바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라는 돈놀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에 유입된 막대한 외화자금으로 개인은 외화대출을 받아 주택과 고급 승용차, 주식을 사들였고, 그 결과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치솟았다. 또한 기업은 해외로 나가 외국 금융회사, 호텔, 항공사 등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어업에 의존하던 조용한 섬나라는 어느 날 갑자기 '금융 허브'라는 멋있는 별칭을 얻었다.

그러나 2005년 이후 미국의 지속적 금리 인상으로 투기 자본들이 빠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2006년 상반기에 이미 크로나화 가치가 17%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어렵게 버텨오던 아이슬란드 경제는 올 들어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급격한 디레버리징(deleveraging·차입 축소 및 대출 회수)이 일어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아이슬란드의 유명 작가인 아이나르 구드먼슨은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룰렛 도박을 벌였고, 온 국민이 돈을 잃었다"고 말했다.

■"3대 은행이 위기 주범"

이번 위기의 주범(主犯)으로는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이 지목받는다. 2003년 은행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하에 진행된 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은행 재벌'이 탄생했다.

민간 은행의 대주주는 자신의 다른 계열사에 은행 자금을 집중적으로 빌려주는 수법으로 한국의 재벌처럼 '대기업 집단'으로 변모했다. 이들 기업 집단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엄청난 외화 자금을 빌려 은행 창구에 돈을 푸는 한편, 해외로 나가 외국 기업들을 사들였다.

인수 대상에는 영국의 소매은행과 대형 유통업체, 미국 항공사, 동유럽 통신회사, 심지어 영국 프리미어리그 프로축구단까지 포함됐다. 해외 기업 M&A 알선을 주도했던 카우프싱(Kaupthing) 은행은 한때 '북극의 골드만삭스'를 자처했다.

물론 오늘의 위기에는 정부의 대응 실패도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금융감독 기능이 전혀 작동을 하지 않았다.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몸집이 비대해져 정부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이미 몇 년 전부터 위기 신호가 왔지만 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다.

미국이 금융시스템을 구제하기 위해 내놓은 7000억 달러의 긴급구제금융은 미국 GDP의 5% 수준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대외 부채는 GDP의 10배를 넘는다.

■후손에게 남겨진 무거운 짐

이에 따라 최근 아이슬란드 국민들 사이에서는 은행 대주주에게 사재(私財)를 국가에 기부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정치권에는 책임을 묻는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자가 레이캬비크에 도착한 지난 1일은 아이슬란드가 덴마크로부터 자치를 선언한 90회 기념일이었다. 하지만 이날 기념식에 참여한 인파 중 수천 명이 총리와 중앙은행 총재의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수백 명이 중앙은행으로 몰려갔다. 데이비드 오드손(Oddsson) 중앙은행 총재는 1991년부터 2004년까지 총리를 역임하면서 경제 개방 정책을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아이슬란드 국민들 사이에선 차제에 크로나화를 폐지하고 유로화를 채택하자는 의견도 많다. 길피 아른비요른손 아이슬란드 노조연맹(ASI) 의장(국가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은 "아이슬란드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별도의 통화를 관리하기란 힘들며 이번에 그 위험성이 드러난 셈"이라면서 "유로화 편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위기 극복에는 노사정이 따로 없다"면서 "기업은 해고를 회피하는 노력을 하고, 노조는 양보 의식을 발휘해 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 국민이 한 푼도 안 쓰고 10년치 소득(GDP)을 꼬박 모아야 빚을 갚을 수 있는 현실 앞에 그의 말은 공허하게 들렸다. 아이슬란드인들은 '바이킹 선조의 영광을 재현하자'면서 천년 만에 잠을 깨 눈을 해외로 돌렸다. 하지만 대외 개방과 글로벌 금융시장을 너무 만만한 상대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남의 돈을 쓰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착각과 과신의 대가치고는 후손들에게 남겨질 짐이 너무도 무거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