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주사랑교회 장한국 목사(예장진리 총회장/CPJBS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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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8) 주님은 늘 기도하고 낙심치 말아야 될 것을 하나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 비유는 일반적 예화가 아닌 비유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요, 살리는 영이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비유 내용은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이요. 이는 우리 영혼과 육신의 구원에 관한 진리인 것입니다.

 

즉 과부는 일단 결혼했었는데 남편을 잃은 것처럼 주님을 잃은 성도의 영혼을 가리키며 또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한다고 했으니 곧 육신을 가리킵니다. 육은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존재이니 영생이나 하나님의 심판 등을 두려워 할 것이 없고 또 사람들조차 의식하지도 않고 무시하는, 단지 없어지고 말 존재가 육이지요. 또 왜 재판관이 되는가? 최종 결정자요, 결정한 것을 집행하는 자가 재판관ㆍ판사이듯이 영혼이 원하는 것을 육신이 최종적으로 결정, 실천에 옮기는 것이 육이기 때문입니다.

 

과부가 재판관에게 ‘내 원한을 갚아주소서!’라고 간청합니다. 처음에 예수 믿은 성도들은 과부가 아니지요. 그러나 도시의 한 과부라 하신 것 같이 도시에서의 세상적ㆍ육적 유혹역사로 영향 받은 나머지 신앙이 병들고 마침내 타락,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것이 과부인 것이지요. 그러나 주님은 한 번 택하시고 부르심과 은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하신 대로 이 과부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역사로 다시 살아납니다.

 

즉 주 재림에 관한 예언의 말씀과 첫째 부활의 영광의 복음을 듣고 깨닫고 믿게 되니 영이 살아났고 그 영이 혼을 이끌어 다스리게 되니 영과 혼이 일치된 살아있는 영혼이 됐습니다. 그러니 이젠 오직 원한 같은 소원이 신랑 예수님의 신부 되는 것이요. 이는 육이 영혼이 원하는 대로 주를 위해 바쳐질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간절히 청하는 것이 곧 과부의 원한을 육인 재판관에게 청하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 즉 육신은 그녀가 너무 귀찮게 하므로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즉 영혼에 일치된 육이 되어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 말씀 때문에 순교의 죽임 당함을 하는 육신이 된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만일 육이 듣지 아니하면 영혼이 육의 주인이니 금식하고 잠 못 자게 철야하는 등으로 계속 괴롭힐 것이 가장 육이 무서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즉 세상(γη = 인격체)인 성도들 중에서 그리스도의 신부의 신앙에 있는 자를 찾기 어렵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니 이 비유의 과부같이 늘 기도하며 낙심치 말고 주님의 신부의 자리에 오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