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례가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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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개척하고 십 년 정도 지났을 때다. 시찰회 선배 목사님이 시찰회 임원을 맡아 섬기라는 권면이 있었다. “목사님! 이번 회기부터 회개를 맡아주세요. 교회도 부흥되었고 임원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전중하게 거절했다. 목사님! 나는 아직 부족해서 감당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다른 목사님 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목사님! 임원하실 분이 없어서 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보고 특별히 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한 주간 기도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목회도 바쁜데 시찰 일까지 해야 하나? 시찰회비 내고 참석하는 것도 어쩔 수 없이 의무로 하는 것인데!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맡을 생각이 없었다. 집에 와서 이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데 마음속으로 이런 음성이 들렸다. 이 목사야! 너만 목회하냐? 너만 바쁘냐? 임원 목사님들 다 목회하고 바쁜데도 시찰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이 음성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듣고 이런 결정을 했다.

 

앞으로 시찰회든 노회든 내가 봉사할 차례가 돌아오면 성실하게 봉사한다. 그러나 선배들보다 앞서 나가지는 않는ㄷ. 양보할 수 있는 경우는 무조건 양보하고 특히 경선할 경우에는 무조건 양보한다.” 그리고 그 규정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당연히 내가 할 차례가 되어도 될 수 있으면 양보하기 위해 힘썼다. 내가 직책을 맡을 때 한 사람이라도 서운한 마음을 가진다면 맡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이다. 한번은 시찰회에서 나를 노회 임원으로 추천하려고 했다.

 

문제는 나보다 선배 목사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임원이 되면 그 목사님 얼마나 서운하실까? 교회가 부흥되고 규모가 있다고 노회 임원 빨리 시키려고 했지만 끝까지 거부했고 결국 선배 목사님 먼저 시키고 이년 후 노회 임원을 맡게 되었다. 그렇게 양보를 하다 보니 교회 규모가 큰데도 육십삼 게가 되어서야 노회장이 되었다.

 

내가 양보하고 희생해서 다른 목사님들 기뻐하시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내가 이렇게 하니까 목사님들이 자꾸 높여주려고 한다. 나는 안 올라가려고 하고 다른 분들은 올리려 하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런데 다른 사람은 상처받던 말던 스스로 올라가려 하는 것은 덕이 되지 않는다.

 

노회장이 된 후 은퇴할 때까지 약 십 동안은 노회 총회 서북지역 노회협의회 GMS 총신대와 신학대학원 등 여러 곳에서 섬겼는데 많은 분들의 추천으로 생각지도 못한 중요한 일을 맡아 섬겼다. 충청협의회 대표회장, 서북지역노회협의회 대표회장, 이만교회운동본부 본부장, 총신대 신학대학원 총동창회 회장, 총신대 평의회 의장을 하면서 한 번도 내가 먼저 하겠다고 나서지 않고 모두가 강력한 추천에 의해 맡게 되었다. 임원부터 시작해서 단계를 밟아 올라가면 불가능한데 임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올라간 것은 내가 양보할 수 있는 것은 다 양보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속전속결로 이루어주신 것이라 믿고 있다.

 

내가 왜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예수님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니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다. 그것도 말구유까지 낮아지셨다. 그런데 내가 높아지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려고 심자가까지 기꺼이 지셨는데 내가 용서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고 양보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을 생각하면 낮아지고 양보하고 손해를 보며 평안한 목회 쉬운 목회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