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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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은 복음의 핵심이다. 그래서 고난주간에는 세속적인 것을 멀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한다.*고난주간이다. 고난주간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절기라고 할 수 있다. 즉 주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의 구속의 역사를 선포하고, 주님의 고통을 통해서 소망이 없던 죄인들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면서, 경건의 훈련을 쌓는 주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종려주일에서부터 부활절 전일까지 한 주간을 경건히 지내는 주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난주간을 수난주간이라고도 한다. 이 고난주간이 처음 소개된 것은, 에게리아(Egeria)의 순례집과 안디옥 출신의 콘스탄틴의 주교였던 존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의 증언에서다. 크리소스톰은 교회사의 가장 위대한 대설교자로 황금 입이라는 별명을 가졌다.중세 가톨릭은 수많은 절기를 만들어 1년 내내 절기가 있었다. 그중에 고난주간과 맞물리는 것을 사순절이라고 한다. 하기는 그럴듯하다. 광야 40, 예수 광야 40일 금식기도 등을 떠올리며 사순절(四旬節)을 만들었다. 이 기간을 금육(禁肉) 기간으로 제정하고, 나중에는 이 제도가 사육제(謝肉祭)가 되었고, 끝내 풍요의 신에 감사하는 카니발(Carnival)이 되었다.

 

카니발은 바알의 제사장이란 뜻이다. 사실 로마 가톨릭은 유사기독교로서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니고, 희랍과 로마의 여신 사상과 혼합되어진 가톨릭의 르네상스에서 시작됐다. 예수회(Jesuit)의 반동 종교개혁은 인간이 만물의 중심이 되는 인본주의 사상에 기초한다. 16세기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이 철저히 가톨릭의 절기들을 버린 것을, 한국교회가 에큐메니컬 운동에 발맞춰 W.C.C.와 연합하더니 500년 전에 폐기된 사순절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개편 찬송가 뒤에 사순절주현절을 교독문으로 번듯하게 기록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이 W.C.C.를 통해서 기독교회를 통합하려는 시도는 범세계적이다. 한국교회가 가톨릭이 쓰는 사순절이란 명칭을 쓰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로마 가톨릭은 기독교를 자기들 하수에 두려고 W.C.C.를 장악하고, 직제를 비롯해서 가톨릭 의식으로 되돌리려 했다. 거기서부터 종교통합 또는 종교다원주의가 나왔다.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이 기독교의 본질이며 교리의 기초이다. 때문에 오늘의 교회가 고난주간에 절제와 금욕을 주장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많은 교회 목회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성도들의 열심을 북돋으려고 하고 있다.

 

고난주간에 잠깐 영적으로 깨어 있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는 것은 옳게 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은 성경 전체의 하나님의 구속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잘 가르쳤으면 한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나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했다. 세례 요한이 예수를 가리켜 어린양이라고 말한 것은, 출애굽 전 유월절에 희생된 어린양, 곧 속죄 주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곧 하나님의 주권 운동의 매뉴얼대로 오셔서 구속을 완성하신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으로 말씀하고 있다. 성경은 어린양에서 시작해 어린양으로 끝나고 있다. 그 어린양은 바로 우리의 속죄 주, 곧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역사적 사건이고, 인간의 구속 완성을 위한 연장선에 있다.고난주간에 사순절이란 용어를 쓰지 말기를 바란다. 종교개혁자들이 폐기 처분한 로마 가톨릭의 희한한 절기를 오늘에 되살리려 하지 말자. ‘고난주간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