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서로 다른 것 받아들여야” 
 


 오재식 아시아교육원 원장과 파울 슈나이스 독일동아시아선교회(DOAM)회장이 31일 최근 냉각되고 있는 남북관계와 인간안보를 주제로 서울 내수동 아시아교육연구원에서 대담을 가졌다. 이 두 사람은 DOAM과 남북평화재단 공동 주최로 31일부터 오는 4일까지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같은 주제로 열리는 한·독·일 국제 심포지엄에 참가하고 있다. 슈나이스 목사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응급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1970~80년 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 데 긴밀히 협력했던 사이다.
파울 슈나이스 DOAM 회장

▲하일델베르크대학 신학과 졸업 후 목사 안수. 독일동아시아선교회 간사로 일본에서 장기간 체류. 1980년 광주민주항쟁 당시 응급위원회에서 활동. 1970~1980년대 NCCK 인권위원회 자료를 일본에 가져가 세계 언론에 한국 정세를 알리는데 기여

‘한반도 평화와 인간안보’ 韓·獨 신학자 대담

슈나이스=1992년 유엔에서 인간안보문제를 논의한 기억이 난다. 이때부터 국가안보와 인간안보의 개념이 분리된 것 같다. 국가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들의 안보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국가간에는 평화로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 민중의 삶은 무너져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인권은 전혀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

오재식=인간안보라는 주제는 1983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WCC총회에서 처음 나왔다. 자본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간 이념전쟁인 냉전이 거의 끝나는 분위기였다. 나는 당시 NCCK 간사로 참여했는데 그때 주제도 평화 문제였다. 나는 ‘냉전이 끝나면 국가간 전쟁이 끝날 것인가. 국가간 전쟁이 끝나면 인간 개개인의 안보도 보장 될 것인가’라고 참석자들에게 질문했다. 그 때 분위기에서는 이 질문이 많은 사람들에게 심각한 주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슈나이스=냉전은 오래전 끝났지만 전쟁은 여전하다. 나라마다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독일만 해도 도시 골목마다 집도 일자리도 없는 노숙인이 넘친다. 그들의 안보는 어디에 있는가. 예를 들어 다국적 기업 노키아는 노동력이 값싼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으로 공장을 옮겨다니며 이윤을 끌어내지만 공장이 떠난 나라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나. 교회는 인간 하나하나의 실질적 안보와 영적인 안보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목사 급여 10%를 줄여 목사를 더 늘리자는 논의가 결국 목사들의 반발로 무산되는 게 현실이다.

『냉전 끝났지만 전쟁 여전... 인권유린 피해자 넘쳐

교회는 실질적 안보와 영적인 안보 모두 고민해야

평화위해선 식량 등‘인도적 차원’거래해선 안돼』

오재식=자본주의자들의 낭만적인 이상이지만 그들은 국가의 부가 커지면 자연적으로 인간안보의 수준도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사회주의자가 분배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부탄을 보라. 국민총생산은 낮지만 그들의 행복지수는 매우 놓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부는 상대적이다. 공동체가 부를 나누는 방법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교회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함께 잘살 수 있을까에 대해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빈곤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다.

슈나이스=독일에서 이주노동자가 시위를 하면 평화 상태는 깨진다. 하지만 이들의 인권이 유린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 요즘 젊은이들이 교회 안과 밖에서 이들과 연대해 운동하는 움직임이 있다. WCC도 이를 위해 폭력 극복 10년 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오재식=평화는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등 여러 가지 소수집단 모두가 인권을 보장받고 공존하는 상황이어야 한다. 이 상황을 위해 계속 운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화는 그 자체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은 인종적 문화적 배타성이 매우 큰 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교회가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

슈나이스=독일의 노동문제를 보면 통독이후 동·서독간 차이가 큰 문제다. 통독이 된지 20년이 다 돼 가지만 동독 출신 중에는 아직 일과 집이 없는 사람이 많다. 통일의 준비와 과정에 잘못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우리를 타산지석 삼아 잘 하길 바란다.

오재식=올해 정권 교체 후 남북관계가 경색 조짐이 뚜렷하다. 분단 후 통일한 국가로서 한국에 대해 줄 교훈이 있다면.

슈나이스=답변이 어려운 질문이다. 그들이 다른 삶을 살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에게 우리의 문화적 사회적 양식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통일 후에야 교훈을 얻었다. 한국은 통일 전에 교훈을 얻기 바란다.

오재식=최근 남북 고위 관계자간에 핵무기에 대한 논쟁이 있다. 북한은 남한을 불바다,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월드비전에서 오랫동안 대북지원한 경험을 돌이켜보면 그런 발언은 외교적 수사라는 느낌이다. 거기에 맞대응해 더 공격적 발언을 하거나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북한의 남한 공격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국제 관계에서 북한이 살아남을 수가 없다. 부시 정부는 과거 클린턴 정부가 북한과 쌓은 신뢰관계를 다 무너뜨렸다. 그래서 부시에게 남은 것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현 정권이 그동안 남북 정상간 합의문을 인정하지 않고 30여년 전 합의서 기분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태도다. 거기에는 양측의 신뢰가 쌓여있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정말 스스로 ‘읽어버린 10년’을 초래하는 것이다.

슈나이스=최근 독일 교회들이 평화에 대한 콘퍼런스를 열었다. 그동안 우리는 정의로운 전쟁이 있다고 이야기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폐기했다. 전쟁이라는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해선 안 된다고 결론짓고 정의로운 평화에 대한 선언을 했다.

『오재식 아시아교육연구원 원장

▲서울대 종교학과·미국 예일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도시산업선교부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선교훈련원장, 선교훈련원장, 세계교회협의회(WCC)개발국장, 월드비전 회장 지냄, 1999년 예일대 신학대가 수여하는 ‘모교를 빛낸 동문상’ 수상』

정의로운 평화를 이루려면 식량과 같은 인도적 차원의 지원은 거래 가능한 것이 되어선 안 된다.

오재식=북한은 지난해도 농사가 잘 안 됐다고 한다. 곧 보릿고개다. 얼마 전 국내 비료 공장들이 북한으로 가야 하 비료를 쌓아놓고 애를 태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료는 농사 짓는데 쓰인다. 북한에 사는 동포들을 굶주리게 해서야 되는가.‘당신들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식량 지원은 없다. 그러니 핵 포기해라’는 식은 곤란하다. 식량은 인도적 차원에서 줘야 할 것이다. 정치적 문제 해결을 위한 미끼로 사용한다면 야만으로 평가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