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인생의 양념


2 사랑의 클리닉 황성주 박사.jpg 독신으로 사시는 한 대학총장이 가정을 갖고 싶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답변을 하신 것을 본 적이 있다. 특히 요즈음 같은 대학입시철이 되면 부모는 3의 절정기에 달해 애간장을 다 녹인다.


유괴와 납치, 성폭행, 탈선 등 자녀에 대해 한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것도 다 부모된 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세 자녀를 둔 필자로서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무자식이 상팔자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이다.

그러나 자식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엄밀히 말해 스트레스가 아니다. 부모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불가피하게 겪는 대가라고 생각한다면 훨씬 마음이 가벼워진다. 회사에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 겪는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다. 회사에 대한 적응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그뿐이다.

누구나가 겪는 자연스런 과정임을 인식한다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승진 우울증의 경우도 자신의 직위가 높아짐에 따라 일시적으로 겪는 당연한 변화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이 경우 스트레스 자체보다 스트레스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훨씬 중요하다.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스트레스는 인생의 양념과 같은 것이다. 너무 많으면 곤란하지만 적당하게 쓰면 오히려 음식 맛을 배가시킨다. 사람에게는 적절한 책임이 주어져야 생기가 난다.

최적의 스트레스가 최고의 능률을 보장한다. 시험보기 전날 공부가 잘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고를 쓸 때에도 마감시간이 임박해서야 열심히 하게 된다. 새 사업을 시작한 비즈니스맨에게는 당분간 즐거운 흥분상태가 지속된다.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당한 긴장이 필요하다. 태엽이 풀린 시계처럼 맥 빠진 삶을 살아가는 여인에게 아름다음을 기대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싱싱한 삶을 살려면 즐거운 스트레스를 만들어야 한다. 지적수준이 높을수록 변화에 대한 욕구가 강한 법이다. 새로움과 변화의 추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신선한 자극과 도전이 없는 삶은 결국 무기력과 낭패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결단은 조용한 상황에서 내려지지 않는다. 어려움에 직면해서 위기의식을 느껴야 잠재해 있던 강력한 에너지가 분출되게 된다. 극한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엄청난 잠재력이 빛을 발하고 인생최대의 결단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신앙생활에서 시련이 없을 수 없다. 크리스천이 받는 모든 시련은 내가 앞으로 받을 은혜를 감당할 만 한가를 테스트하시는 주님의 손길이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처럼, 주님이 허락하신 스트레스는 우리의 영성을 새롭게 하고 항상 기도에 깨어있게 하려는 깊은 배려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다보면 핍박이라고까지 할 수 없지만 유형 무형의 다양한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된다. 그러나 주님의 시각으로 볼 때 이러한 스트레스는 영적 순례의 길에서 인생의 깊이와 맛을 더해주는 최고의 양념과 같은 것이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절대명령은 절대불변의 확고부동한 사랑으로 우리를 붙드시는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