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주년,“한국교회 신사참배 진정한 참회 없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우상청산과 참회가 진정한 개혁의 시작
[ 한국장로교 신사참배 경의 성명서]
我等(아등)은 紳士(신사)는 宗敎(종교)가 아니요 基督敎(기독교) 敎理(교리)에 違反(위반)하지 않은 本意(본의)를 理解(이해)하시고 紳士參拜(신사참배)가 愛國的(애국적) 國家儀式(국가의식)임을 自覺(자각)하며 또 이에 率先(솔선) 勵行(여행)하고追(추)히 國民精神(국민정신) 總動員(총동원)에 參加(참가)하여 非常時局(비상시국) 下(하)에서 銃後(총후) 皇國臣民(황국신민)으로서 赤誠(적성)을 다하기로 期(기)함.

▲1938년 한국장로교 제 27회 총회 신사참배 결의문
광복 70년을 기념하는 한국교회 행사들이 다채롭게 열렸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과거 친일 행각과 신사참배 등에 대한 통렬한 회개는 볼 수 없었다. 과거 없는 오늘이 없다. 한국교회의 친일행각과 신사참배의 죄악상을 되돌아보고 오늘날 한국교회의 개혁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수치스런 한국교회의 신사참배의 역사
1876년 개항과 더불어 일본의 정치·군사·경제·문화적 침략이 시작되면서 신도(神道)도 함께 한반도에 상륙했다. 한일병탄 이전에는 주로 조선에 거류 중인 일본인들에게 국한됐으나 이후 총독부가 신사(神社)를 세워 보급에 박차를 가하면서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1925년 총독부는 남산 중턱에 조선신궁을 건립하면서 사립학교 학생들을 시작으로 신사참배를 강요하였으나 기독교계의 반발로 일단 물러섰다.
그 때까지만 해도 기독교계는 신앙상의 이유로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총독부의 양해를 구하였다. 그러나 1935년 11월 평양 기독교계 사립학교장들의 신사참배 거부사건을 계기로 총독부가 강경책으로 나오자 기독교계는 용인파와 반대파로 분열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 무렵 신사참배를 거부한 일부 학교는 총독부에 의해 폐교되었으며 학교 문을 닫지 않은 학교들은 신사참배를 실시해야만 했다. 총독부는 어용 기독교 지도자들을 앞 세워서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민의례이며 조상숭배의 미덕’이라고 강변하면서 반대자들을 핍박하였다.
이런 강압 분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기독교계는 결국 총독부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1935년 12월 안식교단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였고 뒤이어 성결교단도 이 대열에 합류하였다. 또 천주교는 1936년 5월 교황청의 훈령을 받고 신사참배를 시행하였다. 참고로 교황청 포교성은 1936년 5월 25일“신사는 황실 존경과 애국용사 존경을 나타내는 애국심의 발로이며 자발저인 것”이라는 성명을 통해 신사참배를 용인했다.

한국교회의 장자 교단임을 자처해온 장로교는 1938년 9월 10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제27회 총회를 열어 신사참배를 공식 결의했다. 이날 총회장 홍택기는 신사참배 반대자들을 감옥에 가두어 총회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며, 또 반대는 묻지도 않고 만장일치로 신사참배를 결의한 후 아래와 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채택했다.
“우리들은 신사가 기독교시에 위반되지 않는 본지(本旨)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대국적으로 보아 국가의 의식인 것을 자각하고 이에 신사참배를 선서함. 신사참배를 솔선하여 이행하며 더 나아가 국민정신총동원운동에 참가하여 시국 하의 총후 황국신민으로서의 적성(赤誠)을 다하기를 기함.”
이날 부총회장 김길창(金吉昌) 목사는 23명의 노회장들을 데리고 평양신사에 가서 시범적으로 신사참배를 하였다. 또 같은 달 감리교도 총리사 양주삼(梁柱三)의 명의로 신사참배를 결의하였다. 이로써 조선내 모든 기독교 교단과 교파가 신사참배에 동참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신사참배 인식 운동‘과 ‘신사참배 권유운동‘을 적극 전개하였다.

▲한국장로교 자도자들이 자의로 일본 이세신궁을 참배하고 기념하여 찍은 사진
1938년 12월 12일 감리교의 양주삼·김종우, 성결교의 이명식, 장로교의 홍택기·김길창 등 지도급 교역자 5명으로 구성된 ‘신궁참배단’은 일본으로 건너가 이세(伊勢)신궁 등을 참배하였으며, 일부 목사들은 부산 송도 앞바다에서 일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기도 했다. 또 장로교는 이듬해 1939년 제28회 총회에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예수교장로회연맹을 결성하였으며, 일본의 침략전쟁 승리를 위해 1937년부터 3년간 국방헌금 158만원, 휼병금 17만2천원을 걷었고, 무운장구기도회 8,953회, 시국강연회 1,355회, 전승축하회 604회, 위문 181회를 치렀다. 1942년에는 ‘조선장로호‘라는 이름이 붙은 해군함상전투기 1기와 기관총 7정 구입비 15만317원50전을 바치고, 미군과 싸워 이겨달라는 신도의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교회 종 1,540개, 유기 2,165점을 모아 12만여 원을 마련해 일제에 헌납하기도 했다.

▲ ‘조선장로호‘ 한국장로교 헌금으로 만든 일본 전투기 관련 기사
감리교 역시 1944년 교단 상임위원회의 결의로 ‘감리교단호‘라는 이름을 붙인 애국기 세 대 값인 21만 원을 헌납하기도 했다.
▪ 신사참배 거부자에 한국교회 앞장서 징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해 모든 교역자들이 순응한 것은 아니었다. 더러는 총독부 당국자를 찾아가 청원운동’을 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굴복한 교회를 비판하면서 순교를 각오하고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펴기도 했다. 주요인물로는 평남의 주기철, 평북의 이기선, 경남의 한상동· 주남선, 전남의 손양원, 함남의 이계실 등이며, 만주 지역에서는 박의흠· 김형락 · 김윤섭 등이 활약하였다.

일제는 이들을 치안유지법·보안법·불경죄 등을 적용하여 중죄인으로 다뤘는데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투옥된 이는 대략 2천여 명에 달했고, 주기철 목사 등 순교자만도 50여 명에 달했다. 이밖에 교회 2백여 곳이 폐쇄되기도 했다.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기독교 신앙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일제의 황민화정책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는 점에서 민족사적으로도 큰 의의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해당 교단이나 교회에서 제명되거나 면직시키기도 했다.
1938년 장로회 제27회 총회가 신사참배 결의 당시 “회장, 항의합니다.” 하고 외치다가 일경에 끌려간 한국 출생의 미국선교사 ‘한부선’ 그는 만주지역을 돌보고 복음을 전한 선교사이다. 그가 속한 봉천노회는 총회가 결정한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그를 제명해 버렸다. 한부선은 투옥되어 고생하다가 포로교환 일원으로 아프리카를 거쳐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순천중앙교회는 신사참배거부로 옥살이를 하고 있던 황두연 장로를 장기결석이유로 시무장로에서 제명했다.
1939년 12월 19일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는 신사참배 결의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기철 목사를 목사직에서 파면했다. 주기철 목사는 1944년 복역중 고문으로 인한 건강악화로 옥사했다.
▲주기철 목사 목사 복권 선포예배 장면, 그러나 당시 신사참배에 대한 진정한 참회는 없었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많은 목사들과 장로, 평신도들이 교회에서 축출 당하고 제명을 당한 사건이 비일비재 했다. 해방이후 이들은 복권이 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행정적 조치에 불과했고, 한국교회는 신사참배에 대한 통렬한 회개나 반성은 없었다.
▪ 한국교회, 진정한 참배 참회 있었나?
한국교회의 과거사에 대한 회개는 한경직 목사로 부터 비롯되었다. 영락교회 한경직(1902~2000) 목사는 1992년 6월 18일 템플턴상 수상 축하행사 때 인사말을 통해 “반세기 전에 지은 신사참배의 죄를 참회한다.”고 회개한 바 있다. 또 2006년에는 소장파 목회자들이 결성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한 일과 독재정권 시절에 권력층과 야합해 정의를 뒤엎기도 한 죄악에 대해 마음을 찢으며 참회한다” 내용의 반성문을 발표한 바 있다.
교단 차원에서는 2006년 1월 기독교대한복음교회가 교단 중 처음으로 교단의 친일 행적을 사죄했다. 이어 2007년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가 3·1절을 기념해 신사참배 행위에 대한 죄책고백 선언문을 발표했으며, 한국기독교장로회는 같은 해 9월 총회 때 신사참배 행위를 사과했다. 또 2009년 예장 합동과 통합, 기장, 합신 등 4개 장로교단은 교단 분열 60년 만에 처음 제주 연합예배로 모여 신사참배 참회기도를 드린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소수 지도자들이 모여 생색내기 행사를 한 것에 불과하다. 진정한 참회와 회개를 하려면 모든 장로교단이 총회에서 신사참배 회개 결의문을 채택하고 참회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감리교 서울연회가 신사참배 회개 결의문을 채택했다.
개신교단 중 가장 먼저신사참배를 한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시 교단차원의 참 회개는 아직도 없다. 다만 서울연회(감독 김영현)가 2013년 4월 5일 은평교회에서 열린 ‘제33회 연회’ 둘째날 회무에서 역사적인 ‘신사참배 회개 결의 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이 고작이다.
▪결언, 오늘날 신사참배 행위와 같은 한국교회 우상 청산 있어야 미래 있다.
진정한 참회와 반성 없이 한국교회의 미래는 없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는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은 과거 신사참배와 같은 행위를 지금도 반복하고 있기 때문 아닌가? 교권을 위해서라면 신앙양심도 팔아 버리는 교권우상주의, 절과 점집이 들어서는 것은 눈감고 교인 이동하니 전도하지 말라며 동료 목사를 누명 씌워 목사 면직시키는 내교회우상주의, 무조건 대형화 하고보자는 교회외형제일주의, 혼합종교 다원주의에 물든 에큐메니컬운동 오늘날의 우상 신사참배 아닌가?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사 1:4]
윤광식 기자(kidokilbo@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