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The Jesus Times 논설고문)
“죽을 때까지 산다” ‘영원한 자유인’ 가수 조영남(1945년生)“의 팔순잔치 플래카드에 적힌 글귀다. 물론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살지만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이에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는지’를 짚어가며 살아야 한다. 조영남은 1968년 서울대 성악과를 중퇴하고, 쎄시봉(C’est si bon) 등에서 가수로 활동했다.
지난주 TV조선은 평생을 연기에 바치며, 한국 영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故 강수연 배우의 ‘삶과 죽음’을 조명했다. 아역 배우로 데뷔한 강수연은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채운 주역으로 베니스와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강수연은 2022년 뇌졸중(지주막하출혈, Subarachnoid hemorrhage)으로 55세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큰 슬픔을 안겼다.
우리나라보다 초고령사회를 앞서 경험한 일본은 매년 도쿄 한복판에서 죽음을 주제로 한 축제 ‘데스페스’가 열린다. 자신의 임종(臨終)과 장례식(葬禮式)을 미리 체험하는 VR(가상현실) 영상부터, 죽음을 유쾌하게 풀어낸 코너까지 마련되어 있다. 일본 사회는 이를 통해 죽음을 금기시하는 대신 터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죽음 인식 주간(Dying Matters Awareness Week)’는 매년 5월에 열리는 행사로, 영국 전역에서 죽음을 주제로 한 대화와 준비를 장려하는 캠페인이다. 전국에서 수백 개의 행사가 열리며, 주제는 죽음을 알고, 말하고, 준비하는 힘을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가 5년마다 발표하는 세계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 Index)에서 한국이 80개국 중 18위라는 언급처럼, 죽음에 대한 인식과 준비가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죽음의 질, 좋은 죽음(good death)이란 ‘익숙한 환경에서’,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가족·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죽는 것이다.
웰다잉(Well-dying)은 임종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를 미리 문서로 남기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같은 준비가 중요하다는 맥락에서 자주 함께 언급되고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의 성인이 향후 임종 상황에 대비하여 연명의료 및 호스피스에 대한 자신의 의향을 문서로 미리 작성해 두는 제도이다. 보건복지부 지정 등록기관에서 충분한 설명을 듣고 본인이 직접 작성한 후 정보처리시스템에 보관되어야 법적 효력을 갖는다.
호스피스(Hospice)는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이 편안하고도 인간답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위안과 안락을 베푸는 봉사 활동, 또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호스피스라는 명칭은 라틴어의 호스피탈리스(hospitalis)와 호스피티움(hospitium)에서 기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호스피탈리스는 주인을 뜻하는 호스페스(hospes)와 치료하는 병원을 의미하는 호스피탈(hospital)의 복합어로서, 주인과 손님 사이의 따뜻한 마음과 그러한 마음을 표현하는 장소의 뜻을 지닌 호스피티움이라는 어원에서 변천되어 왔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와 그의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행위로 여생 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신체적·정서적·사회적·영적인 돌봄을 통해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하며, 사별 후 가족이 갖는 고통과 슬픔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총체적인 돌봄(holistic care)을 뜻한다. 호스피스는 보통 독립형, 병동형, 가정형, 산재형의 4종류로 나뉜다.
1967년 영국 런던에서 시실리 손더스(Cicely Saunders)에 의해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St. Christopher Hospice)가 개방된 것이 현대 호스피스 운동의 체계적 모태가 되었다. 1968년 미국에서는 호스피스의 가정간호가 시작되었으며, 1981년에 호스피스 법안이 통과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3월 강릉 갈바리의원(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에서 임종자 간호를 시작한 것이 호스피스의 시초이며, 1991년 한국호스피스협회(Korea Hospice Association)가 창립되었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여, 국민이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2월 4일에 시행되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바로 이러한 선택을 미리 밝혀 두는 문서로, 향후 질병이나 사고로 회생(回生) 가능성이 없을 때, 연명의료(심폐소생술, 인공호흡,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시행 여부와 호스피스에 대한 본인의 의향을 미리 밝힌다.
보건복지부 인가를 받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죽음교육 전문기관인 각당복지재단(Kakdang Welfare Foundation, 회장 오혜련)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천국 소망 노트’를 발간했다. 이 책은 죽음과 소망에 관한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즉, 지나온 나의 삶을 돌아보는 구체적인 방법, 내 삶의 굴곡을 회고하기, 용서와 화해의 체험 쓰기, 사전장례의향서 쓰기, 물질의 유산과 믿음의 유산을 정리하고 유언장 작성하기, 자신의 장례 준비 등이다.
‘나의 돌봄 계획’은 연명의료 여부에 대한 결정뿐 아니라 ”나는 삶에서 어떤 가치를 지키며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은가“에 대해 정리해 두는 로드맵(road map)이다. 이는 내가 더 이상 의사 표현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가족과 의료진이 내 뜻을 추측하는 대신 나의 가치와 선택을 기준으로 돌봄을 결정하도록 돕는 일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겪을 수 있는 상황들을 떠올리며 나의 생각을 적는다.
1. 내가 회복 가능성이 낮은 말기 상태가 된다면,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치료받고 싶은가? ▲생명 연장 최우선: 회복 가능성에 관계없이 모든 의학적 치료를 원한다. ▲삶의 질 유지: 통증과 불편함을 줄여 주는 완화의료를 원한다. ▲모든 치료를 거부한다.
2. 스스로 식사가 어려워 인공적으로 영양 공급을 받아야 한다면 어떤 치료를 원하는가? ▲비위관(鼻胃管, NG tube, 콧줄)을 삽입하여 음식물을 장으로 공급하는 장관영양을 원한다. ▲정맥을 통해 영양제를 투여하는 정맥영양 공급을 원한다. ▲최소한의 수액(輸液, Infusion solution, IV)만 받고 모든 영양 공급을 위한 치료를 거부한다.
3. 마지막 돌봄을 어디에서 받고 싶은가? ▲병원에서 마지막까지 의학적 치료와 돌봄을 받고 싶다. ▲호스피스병원에 입원하여 전문적인 통증·증상 완화의료를 받고 싶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며 호스피스 팀의 가정 방문 돌봄을 받는 가정형 호스피스를 원한다.
위에서 선택한 내용을 바탕으로 나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 본다. 어떤 공간에서, 누구와 함께, 어떤 방식으로 그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마음에 떠오르는 모습을 솔직하게 적는다. 이것을 미리 그려 두는 것만으로도 나와 가족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나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삶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지나온 삶을 정리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이끄는 소중한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인간은 지상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무 준비 없이 당황하며 충격 속에 죽음을 ‘당할’ 것인가, 아니면 미리 준비하여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오는 ‘죽음’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태도가 달라진다.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The Jesus Times 논설고문) <청송 박명윤 칼럼(1195) 2026.8.8. Faceboo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