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선교』
더불어 사는 삶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학장 정기환 박사, 서부 아프리카 방문
서부 아프리카 적도지역에서 겪었던 일이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밥 한 숟가락을 입에 가득히 넣고는 꽉 다물어진 입이 열리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요구되었다. 돌이 가득히 믹서 된 밥은 그 든든한 이빨을 무참히도 부서뜨리기에 족한 것이었다. 저들은 돌밥을 먹고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닭도 아닌 인간인데 말이다. 서부 아프리카에서의 오지는 우리에게 찰떡지는 밥을 기대하는 것은 꿈과 이상일 뿐이었다.
현지식의 부담으로 며칠 동안 식사를 제대로 못한 탓에 기진한 우리에게 베푼 선교사님의 자비는 그 인근지역에서 제일 비싸고 좋다는 음식점으로 가자고 한다. 무려 차편으로 한 시간 이상의 광야를 달려서야 안내되어졌다. 첫 눈에 놀란 것은 서로가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무언가 낯익은 듯한 외모에서였다. 분명 한국인일 것이다.“와! 여기에서도 한국 사람을 만나는가 보네!”엉겁결에 튀어나온 말에 상대방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한국인이 아니라는 뜻의 표현이다. 뭔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말도 없다.

“혹시 한국인 아니세요?”지금 같으면야 세계 어디가도 만나 부딪히는 게 한국 사람들이어서 본체만체 하기 일쑤지만 수십 년 전만해도 아니다. 이웃집 친구라도 만난 듯 별의별 것을 다 물어가며 대화를 해가던 시절이니 이 먼 깜둥이 나라에서 동족을 만났다면 이는 기적에 가까울 노릇이었다.“여기에서도 한국 사람을 만나게 되네요. 포기하고 살아야 겠구먼…”
갑자기 튀어 나오는 음식점 주인 언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표정도 삐뚜러지고 말도 비꼬인듯하기도 하고. 그의 투정어린 모습은 분명 기쁜 만남만은 아니라는데 이의가 없어 보였다. 원수 만난 것도 아니고 빚 받으러 온 것도 아닌데 무슨 연고 인고…

“저는 정말 한국이 싫고 한국 사람이 꼴 뵈기 싫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또 다시 만나게 되네요. 지긋지긋한 한국.”우리의 일행이 결국은 저 사람의 인생에 금을 그어 놓고 있는 게 돼 버렸다. 아예 끝까지 모르는 체 하면 될 것이지 그건 안됐던 모양이다.
그런데 의외의 말을 던진다.“다시 만난 기념으로 식사를 무료로 드릴테니 맘껏 드세요.”하며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닌가. 우리는 처음으로 그곳을 방문했고, 낯선 만남인데도 말이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강원도의 산골을 지나는 중에 특이한 집이 있기에 한번은 무엇하는 분인가 들러나 보자 했더니 그 양반도 비슷한 말을 한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사람 접촉을 피하고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고 하였다. 먹 거리는 논과 밭에서 거의 거두어들이는 것으로 하더라도 생필품은 어떻게 구하나 했더니 비누는 겨로 만들어 사용하고 창포에 머리감듯 하는 적어도 조선시대 내지는 몇십년전 시골생활에서 익혔던 생활을 하고 있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년 부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새파랗게 자라가는 어리고 젊은 딸들은 아예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도시 생활과 단절시켜지고 문명과 담을 쌓고 살아가려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자라 적대감에 이를 참이었다. 그곳 지역으로 일부러 교회 수련회를 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삼일 동안 그들을 설득하고 친교를 하다 보니 마음이 열리고 굳었던 모습이 녹아져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인은 지독히도 한국을 사랑한다. 그럭저럭 사랑함이 아니다. 지나칠 정도의 그 사랑은 자그마한 서운함에도 견디지 못하여 도리어 배반의식으로 느끼게 만드는 상 싶었다. 그에 대한 반증이 아니겠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친교 속에서 아름다움이 꽃 피고, 그 교제 속에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는 피조물임을 교훈해 주고 있다. 모이기에 힘쓰기를 원하시고, 두셋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시는 축복을 주시고, 하나님 사랑 다음으로 이웃 사랑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 진정한 희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운 사람들이 있어도 저들을 모두 버리고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아니다. 저들은 사랑에 갈급해 있고, 그 사랑을 전해야 할 사명이 우리 모두에게는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