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사람이 되기 전에 거쳐야 할 과정(김기대 목사)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 제멋대로 사는 우리를 주님의 품 안으로 부르신다. 그런 다음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으로 새롭게 만드신다. 구원받은 우리를 이 땅에 남겨 두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하신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용할 만한 합당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용하시기 위해 용광로에 집어넣으신다.
잠언 17장 3절에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는 말씀 중에서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 고난의 용광로에 집어 넣으셔서 교만과 고집과 아집을 수정하신다는 뜻이다. 용광로를 통과함으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면 누구든지 용광로에 집어넣었다가 끄집어 내셨다. 죄를 짓거나 교만해질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용광로에 집어 넣으셨다. 용광로가 없다면 우리는 마음대로 살아 갈 것이다.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 말씀에서 13년간 용광로에 들어갔던 요셉이란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이었는데, 그 사람만 형제 중에서 사랑받고 자랐다. 편애를 하다 보면 부모 눈에는 아들의 단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야곱도 요셉의 단점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요셉의 성품은 어땠을까? 창세기 37장 1~2절에 요셉에 대한 성품이 나온다.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는 표현을 보면 요셉은 세밀하게 다른 사람을 관찰하다가 남의 허물을 잘 들추어내는 좋지 못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자기 자식의 허물을 잘 보지 못한다. 사고치고 오더라도 자기 자식은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들 한다. 야곱이 잘 보지 못해서 그렇지 요셉은 성품이 좋지 못했다. 야곱은 요셉의 이러한 단점을 보지 못하고 무엇이든지 다 예쁘게 보았다. 이런 문제 많은 요셉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갖고 계셨다. 하나님께서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는 증거를 볼 수 있다. 창세기 37장 6~7절에 보면 요셉은 곡식 단이 자기에게 절했다는 꿈을 꾸었다. 이는 요셉을 가장 아름답게 세우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셨던 것이다. 더 나아가 9절에서 해, 달과 열한별이 자기에게 절했다는 것이다. 요셉의 집안을 초월하여 한 나라, 더 나아가 세계적인 인물로 세우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이방인 나라에 가서도 위대하게 사용될 것이라는 계획을 알려 주셨다. 야곱은 다른 형제들보다 요셉이 더 예뻤던 것이다. 요셉은 개인적으로 신앙 좋고, 아버지에게는 좋은 아들이었지만, 성품은 좋지 않았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이러한 성품을 가지고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위대하게 사용할 계획을 갖고 계셨다.
하나님은 요셉을 위대하게 사용하시기 위하여 이스마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셨고, 보디발의 노예로 전락하였다. 가장 사랑 받았던 사람을 가장 낮은 짐승 취급 받는 자리까지 낮추셨다. 용광로의 불의 온도를 높여서 더 심하게 뜨겁게 만드셨다. 용광로의 불을 한층 더 뜨겁게 만든 것은 여자의 유혹을 받게 하고,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게 한 것이다. 노예 신분에다가 ‘강간 미수범’으로 옥에 갇힐 정도로 낮추셔서 용광로의 온도를 높이신 것이다. 요셉은 떡 맡은 자와 술 맡은 자의 꿈을 해석해 주어서 용광로를 빠져 나오려고 갖은 술수를 다 쓴다. 창세기 40장 9-23절에서 요셉이 “나를 건져 내소서.”라고 부탁했지만, 술 맡은 관원장이 잊었다. 도움을 준 사람을 잊었던 것이다. 요셉은 기회를 왔다고 생각했지만 술 맡은 관원장은 잊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든 것이다. 요셉은 도저히 빠져 나갈 길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용광로에 집어넣으실 때는 빠져 나갈 길 없게 막아 놓으신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연단하시면서도 함께 해주신다.
하나님은 요셉이 인간적으로 극도의 어려움과 치욕적인 상황 속에서도 요셉과 늘 함께 계셨다. 창세기 39장 1~6절에 보면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는 용광로 속에서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형통케 하셨다. 보디발의 집도 흥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손은 두 가지이다. 한 손은 끊임없이 연단하고, 한 손은 끊임없이 함께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생 중에서 어떤 부분은 응답하시고, 어떤 부분은 연단하신다. 형통케 하면서도 연단을 주신다. 하나님의 손은 양손을 움직이신다. 어떤 부분에서는 고난을 받고, 어떤 부분은 축복을 받는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버림 받은 것이 아닌가?”라고 하면서 신앙의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연단하시면서 축복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부분은 너무 잘 풀려 가는데, 그 이유는 어떤 부분은 하나님이 응답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은 양손을 사용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아끼는 후배 목사가 목회를 하는데, 집안 환경이 너무 좋다. 아버지가 장로, 어머니가 권사이다. 그의 가문은 3대째 예수를 믿고 있었다. 그가 30세 이전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그의 아버지가 돈도 많이 벌었기에 건물을 사 주었다. 그리고 신앙의 가문인지라 개척했을 때 수십 명이 도와주었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이 그를 복 받은 사람이라고 부러워했다. 그러나 2년 뒤에 머리가 다 빠져서 나를 찾아 왔는데, 그 교회는 양들이 항상 싸우고, 목사를 비판하는 분위기라는 것이었다. 그의 목회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의 설교가 율법적이었고, 죄를 지적하였고, 목회 경험이 없다 보니 교인들을 때리는 설교를 하였다. 그러다 보니 양들도 사나와 졌다. 문제가 양들에게만 있고, 자기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사나운 양들을 통해서 모난 부분을 하나님께서 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인들의 비판에도 초월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율법적, 정죄하는 설교를 하지 않다 보니 교회가 평안해 졌다. 하나님께서는 염소 뿔처럼 치받는 사람을 통해서도 마음을 연단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부분에서는 형통케 하시는데, 어느 한 부분에서는 응답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때로는 물질을 주시는데, 육체의 질병을 주시기도 한다. 한 부분은 응답하시고, 한 부분은 용광로로 빠뜨린다. 이사야 45장 7절을 보면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는 말씀처럼 환난도 창조 하시기에 사람을 강퍅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시다. 요셉이 선했는데도 모함 받게 한 것도 하나님이시다. 한 부분은 은혜를 주시고, 한 부분은 숨통이 막힐 정도로 문제의 딜레마에 빠지게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신 것이 아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정직한 사람으로 바꾸신다. 회복해 주신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도록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셨다. 용광로에서 끄집어내신 것이다. 창 45장 5-8절에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 셨나이다……”는 말을 한 것처럼 예전에는 비판하고 일렀던 요셉이 용광로를 거치고 나서 변화되었던 것이다. 형들에게 판 것이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보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아 갈 때 어려움과 약점이 있지만 새로운 용광로를 통해서 변화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혈기 부릴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광로에 넣을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회복의 역사를 주실 줄 믿고 용광로의 과정을 잘 견뎌내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