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규 칼럼]
돈ㆍ권력ㆍ섹스의 유혹 그리고 한국교회의 ‘살 길’
날이 갈수록 더 많은 한국교회의 지도자가 돈, 권력, 섹스란 시험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탐하고, 성적으로 타락하고, 권력의 노예가 되어가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세상 언론에 등장하는 횟수가 늘어가고 있다. 스타와 영웅 같이 추앙 받고 엄청난 권력을 가진 그들에겐 상상을 넘는 액수의 돈과 권력과 성적 유혹이 손만 내밀면 취할 수 있는 것들로 변한다. 그들은 타락할 기회가 일반인들보다 월등히 많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쉽지 않은 일일 것 같다.
그런데 이는 과연 그들만의 문제일까? 돈, 권력, 섹스에 취한 사회의 유혹을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기지 못하고 유혹에 빠져 그들의 종으로 사는 모습이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유별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우리 기독교인 모두의 대표적인 민낯이다. 목회자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욕망이란 괴물을 우리가 허락하고 키우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손만 내밀면 가볍게 취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과 권력, 성적 쾌락이 늘 주변에 넘실댄다면, 그리고 주변의 제재를 당하지 않고 몰래 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자신을 지켜 타락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는 욕망의 문제이며 동시에 제도의 문제다. 왜 우리는 사람을 우상처럼 떠받들고 그 사람에게 욕망을 채우는 힘을 허락하는가? 사람은 믿을 것이 못 된다. 누구나 돈, 섹스, 권력에 약하다. 필자도 수많은 사람이 나를 영웅으로 추앙하고 엄청난 권력을 가지게 된다면 내면의 꿈틀댈 욕망을 이길 자신이 없다(필자는 그렇게 사람들을 추종하게 하는 카리스마가 없기에 사고 칠 기회가 적어 다행이다). 그래서 아예 지도자가 선을 넘지 못하도록 교회에선 투명성을 확보하고 제도로 막아야 한다.
또한 이런 문제점들이 드러남에도 그런 지도자들을 옹호하고 추종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경이롭다. 그래서 그들의 왕국은 굳건하다. 왜? 문제를 알면서 속상해하면서 교회를 지키는 성도들도 있는 것은 안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암묵적 공범들이 많지 않다면 그들의 존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성장주의와 복 받고자 하는 관심 속에 많은 성도의 무관심, 침묵, 맹목적 추종, 무지함, 현실과의 타협이 결국 괴물이 성장하도록 먹이를 준 것은 아닐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시험을 이기지 못해 심판을 받은 것처럼 심판이 다가온다. 아니 그런 추악한 모습에 이미 심판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낙심할 일은 아니다. 우리 기독교에는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이 열어놓으신 살 길이 있다. 회개하는 것이다. 죄를 뉘우치고 돌이키면 하나님도 우리 기독교 공동체도 그들을 품어주고 용서할 것이고 우리는 이전보다 더 건강하게 회복될 것이다.
그런데 동양의 체면문화 때문인지 유명한 이일수록 회개하는 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은 없다.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를 징벌하시고 죽이시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죄를 뉘우쳐 죽음의 길을 벗어나 하나님의 생명으로 돌아오라는 사랑의 매다. 시험을 이기면 최고겠지만 만일 실패했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자. 가장 무서운 실패는 회개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지 욕망에 빠져 시험에 실패하는 것 자체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라.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들의 크나큰 범죄 행위도 그리고 그들이 회개하여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는 사실도 낱낱이 기록한다. 노아, 아브라함, 야곱, 다윗, 삼손, 베드로는 범죄하지 않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었다.
살 길이 있다. 죄를 범했을 때 죄를 숨기는 것은 정말 답이 없는 죽음의 길이다. 회개하면 살 수 있고 우리의 영혼은 오히려 전보다 더 온전하게 되고 건강해질 것이다. 돈, 권력, 섹스라는 시험에 실패한 한국교회가 이제 회개라는 하나님의 생명 길을 거부하지 않고, 지도자들을 타락으로부터 지켜 줄 투명한 교회운영과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길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