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그리고 獨島와 韓國(2)
논설위원 최순길 목사(수목원교회 담임)
일본이 독일처럼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식민지로 피해자인 우리를 자극하는 이유는 미국이 전쟁을 지휘한 히로히토 일왕을 그대로 뒀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쟁에 책임져야할 사람을 용서하고 그대로 두니 일본국민은 세계 대전에 대한 죄책감도 못 느끼고 있는 것이다.
히로히토는 그가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한 측근이 멕아더 장군의 묘소를 찾겠느냐? 고 하니 거절한 사람이다. 바로 배은망덕한 자이기 때문에 죄책감도 모르고 침략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전형적 일본인이다.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에 독도는 조선 초기 관찬서인 『세종실록』 「지리지」 (1454년)는 울릉도(무릉)와 독도(우산)가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두 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두 섬이 6세기 초협(512년) 신라가 복속한 우산국의 영도라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독도에 대한 통치 역사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쿄 전범재판에서 멕아더 앞에 서있는 일왕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독수리 앞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병아리 같았으리라. 사형! 이라는 한마디면 그는 즉시 죽는다. 그런데 지금의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꼭 불독과 같이 생긴데다 잔뜩 찌프린 얼굴로 기회를 노리고 있는 모습을 사진에서 볼 수 있다. 독도 등 동아시아 영토 갈등의 원인은 과거 잘못을 청산하지 못한 일본이 크게 반성하여야 한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의 재위기간 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세종장헌대왕실록 世宗莊憲大王實錄>에 수록 된 전국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영인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활자본. 1454년(단종 2)에 완성되었다. 편의상 <세종실록> 이라 부르는 163권 154책 가운데 지리지는 권148~155의 8권 8책에 해당하며, 328개 군현의 지지(地志)가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는 1454년에 완성되었으나 이미 바탕이 된 것은 1424년에 세종의 명령으로 시작되어 8년 만인 1432년에 완성된 <신찬팔도지리지 新撰八道地理志> 였다. 따라서 이 지리지의 내용은 세종 초기의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신찬팔도지리지>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은 아니다. <신찬팔도지리지>가 작성된 이후 세종 때에는 최윤덕·김종서 등의 지휘 아래 지금의 편안도, 함경도 북부지역 일대를 개척하여 압록강·두만강 일대에 4군 6진을 설치하는 등의 영토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 일대의 기록이 첨가되고 내용이 재정리 된 것이다.
내용은 권148에 한성부·개성·경기도, 권149에 충청도, 권150에 경상도, 권151에 전라도, 권152에 황해도, 권153에 강원도, 권154에 평안도, 권155에 함길도로 실려 있다. 각 도의 기록 양식은 도에 관한 총체적 개괄을 앞에 싣고, 계수관(界首官) 별로 소속 군현의 지지를 기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