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행복을 추구했지만 아무도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명확한 법칙을 발견하지 못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완벽하게 갖추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인생의 길목에서 만나는 기쁨과 성취감을 느끼며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나 역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맞닥뜨리곤 한다. 업무가 쌓여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지만 예외 없이 돌아오는 진료 일정과 강의, 연구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힘들다고 잠시 미뤄둔 일도 결국은 해결해야 하는 게 대부분이다. 의사라는 직업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지만 즐거운 순간보다 막막할 때가 많았다. 학연과 지연에서 느껴지는 차별에 좌절도 있다. ‘지금 내가 겪는 차별이 낯선 땅에서 이민자가 겪는 차별보다 무섭구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이다. 인생은 목표 달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이 전부라고 믿기 때문이다. 부와 명예를 손에 넣는 게 우선순위일까? 그렇지 않다. 소명 의식을 갖고 환자를 돌보는 게 의사가 갖춰야할 기본이다. 아버지는 육이오 때 지뢰를 밟아 눈과 팔다리에 부상을 입은 장애 2급 국가 유공자였다.
가난한 살림에 아버지 몸도 성치 않아 난 사회의 차가운 면을 일찍 깨달았다. 중학생 시절엔 축농증을 심하게 앓아 고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받아 주는 병원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우연히 한 의사를 만났다. 그는 정성껏 나를 치료했음은 물론 비용조차 받지 않았다. 그의 따뜻한 배려는 내가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병원에 와서 환자를 만나 보니 상당수가 저소득층이었다. 피를 폭포처럼 쏟는 환자를 수술할 땐 혈액이 50 팩이나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러면 꽤 큰돈이 필요했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없었다. 차마 환자의 손을 놓은 수 없었던 나는 비용을 지불하기로 했다. 치료 중 행여 환자가 숨을 거두면 그 비용은 나의 적자로 기록되었다. 2011년에는 7개월간 8억 원 넘는 돈이 내 앞으로 남겨져 있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갈등을 겪었지만 일할수록 책임감을 느꼈다. 잔디밭 물뿌리개처럼 여기저기 솟던 피를 막으면 드디어 혈압이 딱 잡혔다. 세상을 떠날 뻔했던 사람이 살아오는 거다. 그 모든 일이 의사의 손끝에서 결정됐다. 목숨을 대하는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옥에서 한 사람을 끌어 올리는 듯한 심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항상 내게 말했다. “별 볼일 없는 네가 다른 사람 인생에 그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음에 감사해라.” 돌아보니 세상은 자신의 자리에서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을 간절히 기다린다. 그런 이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를 맹목적으로 믿지 않는다. 공부를 통해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지려 애쓴다. 생화학을 전공한 나의 지도 교수님은 기초 의학도 배웠다. 늘 의학의ㅣ 심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연구했다. 의과 대학생들을 사정없이 휘몰던 교수님은 얼마 전 징징대던 나에게 일침을 놓았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단다.”교수님조차 고난 속에서 도전을 거듭하며 살았노라 말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어려움의 연속이지만 그것을 헤쳐 나가다 보면 길이 보인다. 완벽한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과정에서 훌륭한 동료들을 만나는 게 우리 삶이다. 가끔 간호사, 수련의 등 병원 곳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스승은 멀리 있지 않다. 배우려는 자세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만만치 않은 세상, 앞으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껏 그랬듯 내가 세운 가치를 따르며 오랫동안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세상 떠나는 날, 내가 관속에 가지고 갈 것은 그동안 치료한 환자의 명부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이국종님 / 아주대 병원 외과 의사
이국종 님은 드라마 <골든 타임>의 주인공 최인혁의 모델로 알려져 있다. 아주대 병원에 재직 중인 그는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총을 맞은 석해균 선장을 치료하며 많은 이의 귀감이 되었다. 보다 나은 응급 의료 체계를 위해서 오랫동안 애쓴 그는 오늘도 생사를 넘나드는 현장에 서 있다.
이 글은 “좋은생각” 2016 3월호에 게재된 내용을 옮겨온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