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직도 남아있는 6,25잔재
1950년 6월 25일은 세계가 함께 전쟁을 치룰 수 밖에 없었던 북한의 불법남침이다.
1945년 해방을 맞아 그 기쁨이 남아있고 나라는 아직 제대로 갗추어지지않은채 이승만 대통령은 어렵고 힘든 나라를 일으켜 보려고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는데 북한은 남침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북한에서는 6,25사변을 남쪽에서 먼저 북침했다고 떠들지만 1994년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에게 스탈린이 남침을 승인하는 극비문서를 통하여 명백하게 밝혀졌다.
한국전쟁당시 김일성이가 담은 300여종의 고문서 사본에는 1949년 1월부터 1953년 8월까지 소련 외무부와 북한 외무성간에 오고간 전문그리고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회의록등 한국전쟁의 진실을 규명할 수 잇는 극비 자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문서중에는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모택동 에게 남침계획을 승인 받았으며 남침 시기등에 대한 긴밀한 내용들이 담겨져있었다.
스탈린과 김일성의 극비화담이 같은 해 3월 30일 있었던바 “남한 측 이 수용할 수 없는 평화통일 방안을 제외하고 이를 거부하면 전투행위를 개시하여 남한과 북한 중 누가 최초로 전투를 개시했는지 진실을 은폐토록 하였다. 북한이 남침하여 서울만 점령하면 남로당 20만지하당원이 봉기에 참여할 것이라, 고 남침을 분명히 언급하였다. 후루시초프 회고록에서도 1949년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하였을 때에 남침을 위한 완벽한 계획서를 가지고 왔다.고 밝혔다.
1950년 은 30년만의 최악이라는 가뭄이 왔다. 그러는 가운데 6월23일오후 2시쯤 태풍의 영향으로 춘천 일대에 모처럼의 가랑비가 내렸다. 비는 24일 자정까지 내렸으며 드디어 25일 새벽3시 38세의 김일성은 내각 비상회의를 열고 “오늘 새벽1시에 남조선 국방군이 38선을 넘어 공화국을 침공하였다는 거짓말로 전선 사령관인 김책에게 딩일 04시에 국방군을 반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니 폭풍이라는 공격개시 암호명과 함께 전차를 앞세워 무장군 북한군은 일제히 기습공격을 가해 왔다. 같은 날 05시 10분경 춘천 7연대 임부택 연대장이 참모총장에게 전화를 했으나 부관 라임관 중위는 잠을 잔다하여 전화를 통하지 못했다.
06시 되어서야 육군 본부 일직사령이 공관으로 달려가 북한군의 전면 남침을 알리자 그 때에야 국장들을 소집을 하니 술에 취한 참모들이 어디에 있는지 연락이 되지 않아 무산되었다. 07시 30분에야 국방부 장관에게 상황을 보고하였고, 10시 10분이 되어서야 이승만 대통령이 남침보고를 들었다. 때문에 국방부장관인 신성모도, 참모총장인 채병덕도 이 대통령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으며, 유군본부 보도과장인 김현수 대령은 17연대는 해주를 점령하고 38선 이북으로 20Km를 북진하고 있다고 거짓 방송을 하였던바 지금도 종북자들 좌파들은 이 방송을 근거로 남한이 북침한 것이라고 떠들고 있다. 서울에 맨 먼저 돌입한 북한군 부대는 105전차부대와 이권무가 이끄는 제 4사단의 제 18연대로 그 부대는 덕수궁에 진지를 구축하고, 1950년 6월 28일 새벽2시에 한강교의 폭파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피해로 군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쉽게 가라않지 않았다. 이때에도 북괴군은 계속하여 남으로 남으로 전국토를 휩쓸고 점령해 갔다.
1950년 6월 28일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를 열고 8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북한의 무력남침을 평화를 파괴한 행위로 규정하고 파병을 결정했다. 한국전 참전 16개국과 인원은 미국이 302,483명으로 가장 많고, 호주가 2,282명, 캐나다가 6,146명. 뉴질랜드가 1,389 영국은 14,198명 . 필리핀이 7,000명, 터키가 5,455명. 네델란드 1,700명. 룩셈부르크 44명, 콜롬비아 1,068명. 벨기에 900명. 에티오피아 1,271명. 프랑스 1,119명. 그리그 1,263명. 남아프리카 826명. 태국 1, 294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를 사랑하시어 멕아더 장군을 보내시고 성공률 5000분의 1이라고 하는 모두가 반대하는 가운데 인천 상륙작전을 1950년 9월 15일에 성공리에 마치고 서울은 9월28일 수복하므로 전세가 바뀌었다. 특히 인천 상륙작전은 그 모든 것이 사람의 지혜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도움이었다.
지금 우리는 6,25이후 최고의 난관에 봉착해 있다. 고정간첩들과 종북자들은 또 다른 전쟁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정치에 힘입어 입법 사법 행정부와 각 처소에 남로당이 아닌 종북자들 수만이 깔려 있다. 이제는 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다는 것을 잊지말라. 제3차 세계 대전에 거의 이르기까지 심각하였던 6,25 잔재가 지금 우리 주변에 활개를 치며 다닌다. 때문에 저들은 금강산 관광객을 총격 사망케 했고,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사건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참으로 더 험한 일이 있어도 종북자들은 여전히 북한의 만행이라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 저작권자 ? 지저스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