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행동하는 양심이셨던 김찬국 목사님께서
하나님께로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즉시 서울로 올라와 아내와 함께 늦은 밤 조문을 하며
인사를 드렸습니다.
영정은 여전히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반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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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대 말 신학교 시절 구약학회에서
김찬국 목사님을 뵌 것이 첫 대면이었습니다.
군부에 의해서 해직(연대 신과대학)을 당하신 채
큰 가방에 제자들의 번역서들을 가득 담아 가지고 오셔서
대신 팔아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때 그 후 많은 만남이 이어졌고
그분은 제 마음에 크게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타협을 모르되 황소처럼 순하시고
어려운 처지에서도 황소 같은 웃음을 지으시며
황소 걸음으로 끝까지 가시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황소 고집으로 성서의 가르침을 지키려 하셨습니다.
신학교 졸업 후 80년대 초 저는
어쩌다 보니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도시 노동자들을 목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목회 초년 전도사 시절 뜻밖에 김 목사님을 자주 뵙게 되었습니다.
해직 당하신 후 유학을 간 제자의 교회를 돕느라 목회 현장에 계셨기에
그리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목회 초년생인지라 늘 말석에 앉아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의상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늘 그 말석 곁에 앉으시는 것은 김찬국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어린 우리들에게 너희가 희망이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날 교역자 회의 후 식사 자리에서 어느 교회 장로님께서
60여 명이나 되는 교역자 내외분들께 불갈비를 내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순간 김 목사님은 뭐에 얻어 맞으신 듯 당황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시면서
“불고기만으로 충분한데 충분한데……..”하시면서 말씀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얼마나 당황해 하시는지 제게까지 몸까지 굳어져 버렸습니다.
어렵고 약한 자들을 위하여야 한다고 말씀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의식과 삶이 몸에 배어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후, 1987년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 치열하던 8월 중순
김 목사님 외에 몇 분을 따라 저는 동교동을 방문하였습니다.
김 목사님과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하여 대통령 후보 사퇴를 간곡히 진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뜻밖의 대답을 듣고 실망한 채 돌아 나왔습니다.
그때 입을 닫고 더 이상 감정의 표현조차 하지 않고
댁으로 가시는 김찬국 목사님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 해 민주진영은 참패하였고 신군부는 다시 집권하였습니다.
역사의 거리에서 흘린 젊은이들의 핏자국을 어찌할 것인가,
절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젊은 시절 그 분열상을 본 후,
저는 인간과 역사에 대한 근원적 신뢰가
아주 심각하게 흔들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것은 보편적 진실이며 실상임이 틀림없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큰 도움이었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것이며 하나님만이 완전하시다는 것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역시 인간이라는 보편적 진리를
채득하는 데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공교롭게도 같은 때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이 치러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때 그분이 사퇴를 거부한 그 선택에 대하여
“사퇴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는 한 줄의 고백을 며칠 전 읽고서
젊은 날 그 마음의 흉터를 지우며, 화해를 합니다.
두 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빕니다. <연>
*하루 한단 기쁨으로
영성의 길 오르기*
모든 것을 사랑으로 완결하십시오.
사랑 외에 삶을 완결시킬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