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엔
어둔 땅에서 숨죽여 자라난 두 알의 땅콩처럼
한 방에서 사이좋게 익어간 밤송이처럼
가을은 어둔 생들 빛 만나는 때
모과 못난 속울음 속에서 익혀간 향기 허공에 부려놓듯
무화과 참지 못해 속꽃 터트리듯
가을은 숨죽인 생들 드러나는 때
한 잎 지면 한 잎 피어 백날 붉은 배롱꽃잎처럼
감춰 둔 제 속의 붉은 빛 수줍게 토해내는 단풍처럼
가을은 앞다투어 핀 것들 다 지고 가장 나아중 된 것들 멍울 터트리는 때
가을엔 맘껏 피어나게 하소서
지리하고 오래 못났던 생 바스라진 상처를 뚫고 솟구치게 하소서
기쁨으로 제 안을 환하게 하소서
제 빛만큼 세상 속으로 걸어가게 하소서
시 김해자 출처 <낮은울타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