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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지저스타임즈·2009.10.28

단풍


  단풍009.JPG

 옛 서민이 불렀던 잡가(雜歌)의 단풍유람 대목을 보자. `저기 가는 저 길손 말 물어보세. 한로(寒露)철 풍악(楓嶽) 풍광 곱던가 밉던가. 곱고 밉기 전에 아파서 못 노닐레라. 가지 마오, 가지 마오, 풍악엘랑 가지 마오. 만산홍엽(滿山紅葉) 불이 붙어 살을 데고 오장이 익어 아파서 못 노닐레라, 못노닐레라.’ 단풍에 화상을 입는다는 피부 감촉적(皮膚 感觸的)인 표현이 그 얼마나 멋있는가. 동서고금에 단풍의 미를 이처럼 살에 닿게 읊은 시가 또 어디 있었던가 싶다. 풍악은 국토가 잘리어 가지 못하지만 그 연맥(連脈)인 설악 단풍에 심신을
데이고자 오늘부터 시작되는 황금 연휴에 70여 만의 대이동이 벌어질 것이라 한다.


설악은 우리나라 단풍 전선의 시발점이다. 설악 주봉인 대청봉에는 9 월 하순부터 단풍이 들기 시작, 하루에 약 50 미터 속도로 하강-. 지금쯤은 표고 1천 미터 대가 가장 붉게 타고 있을 것이다. 수직하강 속도가 50 미터라면, 수평으로는 하루에 25 킬로미터씩 남하, 남부 지방은 시월 중순부터 하순에 피크를 이룬다. 그래서 단풍이 한 달 동안 머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단풍 시한(時限)이 긴 혜택받은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단풍에 따른 민속도 발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사(古寺)의 깡마른 노승(老僧)이 절의 마당에서 단풍잎 긁어모아 선차(禪茶)를 끓이는 모습이 옛 시나 그림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데, 단지 멋으로 단풍잎을 태우는 것만은 아니다. 단풍 가랑잎만을 따로 모두어 두었다가 차(茶)나 약(藥)을 달이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은 붉은 빛이 사악한 기운이나 귀신을 쫓는다는 주술(呪術)의 사고에서 붉은 단풍잎으로 달이면 차 맛이 보다 정화되고 약기운이 더 돋을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음력 9월 9일 중양(重陽)날 산에 올라 단풍나무로 비녀를 깎아 아내에게 꽂아주는 풍류를 풍잠(楓簪)이라 했는데, 이렇게 하면 시집살이로 쌓인 일년 울증이 사라지고 히히해해 명랑해진다고 알았다. 썩은 단풍나무에서 돋아난 버섯을 `소심(笑)’이라 하여 이를 잘못 따먹으면 게걸게걸 마냥 웃어댄다는 기록이 옛 문헌에 자주 나오는데, 단풍과 웃음과의 인과(因果)로 풍잠습속이 생겨나지 않았는가 싶다. 단풍은 이처럼 전통적 스트레스 해소제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연휴에 단풍구경 떠나는 벗님네들, 부디 연중 쌓였던 울증을 풀고 명랑해져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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