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요란케 하는 다른 복음
작성일[2008/11/21 23:42:53]    
 성경본문: 갈 1:6-10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갈라디아의 교인들에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7절)고 경고 하고 있다. 누가 그들을 요란케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고자 하였을까? 그들은 옛날에만 있었고 지금은 없는 사람들일까?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그러한 자들이 없다고 마음편히 생각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귀를 기울여 보라. 우리를 요란케 하는 저 시끄러운 나팔소리들과 우리를 부르는 저 현란한 다른 복음들을 보라. 말세에 마귀는 할 수만 있다면 택한 자라도 미혹한다고 하였다.

 

살후 2:3에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라고 했다. 16세기에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병함으로 성서가 대량으로 인쇄 보급되었다. 19세기에는 세계복음화운동이 일어나 성경이 13OO방언으로 번역 전파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매스컴까지 동원되어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욜 2:28에 하나님은 말세에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라 하셨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자 이에 대응해서 사단의 역사도 세차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군의 총공세가 시작되면 바로 그 지역, 그 시각에 적군의 총반격도 시작되는 것이 상식이다. 복음과 함께 이상한 다른 복음도 세차게 전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교회 부흥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기도 소리가 울려나오지 않는 곳이 없다. 그래서 악령의 역사가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곳도 바로 이 시대임을 알아야 한다. 은혜가 많은 곳에는 시험도 많다. 우리를 요란케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사단의 음모는 세 방향에서 진행된다. 첫째는 이상한 복음을 전해 교회의 속화를 꾀한다. 교인들을 믿지 않는 사람과 아무 것도 다를 바 없도록 속화시킨다. 둘째는 열심히 믿으려는 사람에게 너 자신의 기쁨을 구하라는 복음을 전해 바리새인 같이 형식화한다. 셋째는 악령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로 위장하여 사단의 다른 복음을 전함으로써 잘못된 신비주의에 빠지게 한다.

 

1. 이상한 복음(6절)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요일 2:22). 우선 우리의 현 시대가 비신앙적이고 비도덕적이다. 무엇이든지 절대적인 것은 없고 상대적인 것뿐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유물주의, 향락주의, 성공주의가 판을친다. 인격이니 정신문명이니 하는 말은 패배자들의 넋두리 정도로 비웃음을 받는다. 신앙까지도 성공주의자들의 좋은 이용물이 되고 있다. 무신론은 격퇴되었다는 풍문 속에서도 여전히 진군을 계속하고 있으며, 믿는다고 하면서도 안믿는 사람들이 교회의 상석을 차지하고 있다. 대학의 철학교수들의 대부분은 무신론자라고 한다.

 

샤르트르(J. P. Sartre)는 "사람은 자기 자신 외에 아무도 의뢰할 수 없다. 인간은 도움없이 땅에 버려진 외로운 존재이다. 그의 목적이란 그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윤리의 절대적 권위의 방어선도 무너져 있으나마나한 것이 되고 말았다. 윤리적 상대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이미 윤리란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은 고사하고 손가락 하나 잘라 바칠 수 있는 가치마저도 상실하였다. 물질주의가 기독교인의 생각까지 세뇌해 버렸다. 성공이 하나님의 축복의 보증마크가 되었다. 유명한 성경 주석가 버클레이까지도 임종 직전에 쓴 자서전에서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다. 속죄란 사실이 아니다. 처녀 탄생이란 믿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신학자 폴 틸리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부인함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증거하기 때문에 그들도 구원을 얻을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선과 악의 차이도 없는 세상이고, 믿고 안 믿고의 차이도 없는 현장이다.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침례교대학의 교수인 로버트 알레이도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했다. 독일의 신학교 중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학교는 하나뿐이라고 한다. 미국의 N.C.C. 계통 신학교 중에 예수의 신성을 믿는 신학교도 역시 하나 뿐이다. 이런 점에서 가톨릭도 예외일 수는 없다. 많은 가톨릭 신학자들도 예수의 신성과 처녀 탄생을 부인한다.

 

한스 (H. Kung)이나 쉴레비크(Schillebeeck) 추기경 같은 이가 그러하다. 남미의 가톨릭 해방신학의 신봉자들은 신앙을 정치와 동일시하고 있다. 오늘날은 무신론자들과도 손을 잡고 행진할 수 있다는 사회 참여의 시대이다. 문예부흥 초에서 2O세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합리적이거나 과학적이 아닌 것을 배격해 왔다. 중세기의 귀신들은 과학의 엔진소리에 쫓겨났다. 그와 때를 같이 해서 18OO년 독일에서 고등 비판이라는 학풍이 일어나서 성경의 사실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귀신들이 쫓겨나서 교회가 평안해질 줄 알았더니 엉뚱한 인간귀신들이 등장하게 된 셈이다. 그들은 성경은 비역사적인 책이며, 신화의 거대한 뭉치에 불과하며, 유대인의 민족 문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초자연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인함으로 인간을 신의 위치에 끌어 올리려 한다. 어느 신학생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답안지에 썼다가 감점을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6절).

 

2. 나의 기쁨을 구하는 복음(1O절)

이것은 형식화의 이단, 곧 바리새적인 이단을 말한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 이들은 이단의 명단에 오른 것이 아니라 정통교회의 생명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도 성령 받고 중생했다고 말한다. 이들은 의무에 충실한 모범 교인이며, 교회출석은 물론 열심히 전도하고, 넘치도록 헌금 드리며, 철야기도와 금식기도에도 앞장선다. 성경에 무불통지하고 선을 행하는 데도 열심이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나무랄데 없는 성도의 귀감이다. 그러나 나팔은 선행보다 더 크게 불어댄다. 신앙형식의 위장 속에 숨어서 높은 자리와 성공만 추구한다.

탈만 바꾸어 쓴 광대이다. 여전히 교만하고 여전히 속이고 여전히 미워한다. 욕심도 대단하다.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되 실제로는 자신을 위하는 무리이다. 정통교리를 암송하는 이단이다. 주님 뜻대로 산다면서도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이단이다. 즉, 생활의 이단이다. 사두개파 이단이 미지근하고 세속적인데 반해 바리새파 이단은 뜨겁고 극히 종교적이다. 이들은 열심 당원이다. 이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교회의 기둥이요 대들보들이다. 큰종이요 없어서는 안되는 일꾼들이다. 그런데 주목할만한 것은 이들만이 예수 그리스도와 일생 격전을 벌렸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반대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안식일을 철저히 지킨다고 하면서 안식일에 하나님의 독생자를 죽이기 위해 나팔을 불었다. 하나님을 위한 성전에서 자신의 이익추구를 위한 시장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몇 가지의 전통적 신앙의 형식만으로 중심의 신앙을 대치하려는 이단이다. 경건하게 예배드리고 거짓되게 살아가는 이단이다. 이들이야말로 정통이란 이름의 이단들이다. 놀라운 것은 많은 한국의 기도원들이 이단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이들이 모두 정통교회의 간판을 내걸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부의 적이 가장 무서운 적이며, 몸 안의 병이 가장 무서운 질병이다. 다른 이단은 때려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이 무서운 내부의 이단을 이단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 이단과 싸우려는 사람은 더우기 없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오직 예수님만이 고군분투하셨다. 마 23:3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셨고, 마 23:27에서도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지 않고 나의 기쁨만을 구하는 복음, 그것은 우리를 요란케 하는 회칠한 무덤인 것이다.

 

3. 다른 복음(8-9절)

고후 11:14-15에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하였다. 잠 14:12에는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하였다. 이 세상에는 성령의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역사도 있고, 사단의 복음도 있는 것이다. 사단이 주의 이름으로 축복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병자를 고치기도 한다. 환상을 보고 방언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주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단의 종들이 있는 것이다.

 

행8:9-1O에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고 하였다. 오늘날의 상황도 위의 말씀의 복사판이라 하겠다. 희안한 기사와 이적만 따르면 모두 두려워 떨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한다. 유식한 사람도 너무 쉽게 마귀의 낚시밥에 걸려들어간다. 아멘! 할렐루야! 하면서 말이다. 말세는 강한 사단의 역사이다. 이것은 성경이 예언한다. 어떤 여자는 초능력을 얻기 위해 촛불을 노려보며 주기도문을 거꾸로 암송하였다. 어떤 곳에서는 산 채로 개의 가죽을 벗겨 놓고 종교의식을 거행하였다.

이런 사단의 역사는 미개의 아프리카 대륙의 오지나 아마존 유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휘황찬란한 전등 밑에서 행해지고 있다. 얼마전 미국에서만 1천만명의 무당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추산이 나왔다. 로스 앤젤레스만도 2천명의 무당이 거주하고 있고, 영국에는 6천명의 무당들이 정규적 회합을 가지고 있다. 소련의 과학자들도 초능력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스파이 후보들에게 투시력 훈련을 시킨다고 한다. 블란서에서는 6만명의 무당들이 매년 2O만불의 수입을 올리고 있고, 독일도 예외는 아니다. 맨슨의 의식에서는 십자가를 거꾸로 세워 놓고 그 아래에서 성유희를 자행했으며 추종자들은 맨슨을 예수 혹은 하나님이라 칭하였다. 맨슨이 유죄선고를 받은 후 한 소녀는 그에 대한 충성심을 증거하기 위해 무릎으로 헐리우드 거리를 기어 다녔다.

 

물론 이러한 무당운동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그들은 성경 귀절을 수없이 인용하는 기독교 무당들이다. 이들의 위력은 초능력이요 기사와 이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긴 하지만 형식화된 교회에서 갈증은 더 할 뿐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신비한 현상만 나타나면 거기 휘말려 들어간다. 이 약점을 타고 들어와 갖은 초능력 현상으로 사단은 다른 복음을 전한다. 세계 그리스도 교회(Universal Church Master)가 1966년에 창립되었는데 이 심령교회에 한번 참석하게 되면 감정이 누그러지고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는다고 한다.

 

그런데 기성교회는 그것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열정도 기쁨도 신비 체험도 없는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일반 세상 모임에 참석하는 것과 아무것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초능력과 신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성령집회에 참석하면 흥분과 기쁨을 되찾기 때문에 일시적 만족이나마 얻어 보려고 목마른 나그네들이 그리로 밀려든다. 그런데 이 무당들 중에 자신을 무당이라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든 특별한 은혜를 받고 능력 받은 주의 종이라 자부한다. 그리고 사실 그들에게는 기적이 따른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활동하며 세례를 베풀고 축복기도나 안수기도도 잘한다. 많은 사람을 회개시키고 교회도 크게 부흥시킨다. 능력의 종으로 추앙도 받고 있다. 성경에도 사단의 일군들이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했다. 악령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와 흡사하고 거짓선지자가 참선지자 같다. 겔 43:2에 재림주가 해 돋는 곳에서 오신다고 했다. 그리고 해 돋는 곳은 동방인데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일본은 8OO만의 귀신을 섬기는 나라이며 동시에 불교의 나라이고 보니, 해돋는 곳이란 우리나라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과연 우리나라는 교회 부흥이 불같이 일어났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가 강한 곳에는 악령의 역사도 강하다. 사단은 신도들을 속화시키며 아울러 잘 믿으려 하는 신도들의 열정을 오도한다. 믿되 복음을 잘못 믿도록 사단은 역사한다. 미지근한 자들을 세속화시키고 열심 있는 성도들을 이단화 시킨다. 얼마 전의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있는 이단 종파만도 64개 단체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재림 주만 15명이고 이미 죽은 재림주까지 합치면 29명이나 된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리고 이들은 재림 주라는 명함까지 들고 다니는 실정이며 이들을 추종하는 자만도 상당수에 달한다. 믿음이 없는 자들이 전하는 이상한 복음,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쁨을 구하는 복음, 사단이 전하는 신비주의적인 다른 복음, 이 세 가지는 우리의 영혼을 언제라도 급습하여 요란하게 혼을 빼어 놓을 틈만 노리고 있다. 그러나 바울의 권면을 들으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