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 교회가 한 가족처럼 전도지 공동사용 봉사”
작성일[2008/08/08 08:17:48]    

 후암동 교회협의회 따뜻한 동행 화제

서울 후암동. 일제 땐 일본인 타운 후보지였고, 이후에는 재벌 기업인들과 군 장성들이 모여 살던 엘리트 동네였던 이곳이 1980년대 강남이 본격 개발되면서 서민 동네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같은 이미지엔 인접한 미8군도 한몫 했다. 더군다나 남대문과 서울역이 가깝다 보니 쪽방촌도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사회복지사들에겐 '무덤'으로 통할 정도로 기피 대상 지역이다. 하지만 이런 후암동을 향한 아홉개 교회의 따뜻한 동역이 화제다.

 

후암동 교동협의회. 교동협의회는 최소 행정단위인 동사무소와 지역 교회가 협력해 지역 내 구제와 봉사활동을 감당한다. 교동협의회가 하는 일은 이웃돕기 바자, 사랑의 쌀 나누기, 독거노인을 위한 사랑의 도시락, 경로잔치 등이다. 여느 대형 교회 하나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이지만 그 의미는 작지 않다.

 

"누가 주도했고 누가 나중에 참여했고가 없어요. 우리 아홉개 교회의 특징은 특징이 없다는 겁니다." 모임을 주도한 목회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손상률 후암교회 목사는 손사래를 쳤다. 자기를 내세우는 데 대한 체질적인 강한 거부감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교동협의회가 만들어진 건 10년 전이다. 그야말로 한 동네의 교회들이 교파를 따지지 않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참여했다. 하지만 여기엔 후암동에서도 비교적 규모가 큰 후암교회 등의 솔선수범이 큰몫을 했다. 돈과 인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영복 중앙루터교회 목사는 "후암동 교동협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비교적 규모가 큰 교회들의 솔선수범 때문이었다"며 "여기에 다른 목회자들도 마음을 같이한 것"이라고 밝혔다.

 

여느 지역 교회협의회의 경우 감투 때문에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후암동 교동협에선 낯선 풍경이다. 회장은 1년에 한번 아홉개 교회 목회자가 돌아가면서 맡는다. 아홉개 교회가 공동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전도지엔 9개 교회 목회자 사진과 교회 연락처가 담겨 있다. 전도지 내 교회 배치도 민감할 수 있기에 아예 1년에 한번 위치를 바꾼다. 이 같은 아홉개 교회의 공감은 아홉명 목회자가 자기 교회가 아닌 후암동의 필요를 먼저 보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달에 한번 동장과 갖는 간담회 시간은 바로 후암동의 필요를 듣는 시간이다. 지원 방법도 그 자리에서 결정한다. 아홉명이나 되다 보니 의견 충돌도 있을 법하지만 이것 역시 후암동 교동협과는 거리가 멀다.

 

목회자들만 아니라 평신도들도 후암동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교동협의회 내에 선교부와 교육부 등을 둬 지역 내 각종 행사를 집행하고 있는 것이다. 목회자간 강단 교류와 사모들간 모임도 빈번하다. 김세진 후암백합교회 목사는 "목사님들과 사모님, 평신도들끼리 교제를 많이 할 뿐만 아니라 지역 내 안 믿는 사람들도 한 교인처럼 대해주는 게 후암동 교동협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교동협은 또 하나 의미 있는 일을 준비하고 있다. 아홉개 교회가 연합해 공동 선교사를 베트남에 파송키로 한 것이다. 현재 한 가정이 올 연말 파송을 목표로 말레이시아에서 선교사 훈련 중이다. 선교비는 큰 교회가 조금 더 부담하는 방법으로 9개 교회가 모두 감당하기로 했다. 유수인 남산중앙교회 목사는 "자기 교파 선교사를 따지지 않고 비전과 능력을 보고 공동으로 심사했다"며 "앞으로도 교동협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모든 일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목회자들은 후암동 교동협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한마디로 한국 교회에 내놓을 만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서울의 각 구청에서는 후암동 교동협을 본받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할 정도다. 권정희 숭덕교회 목사는 "한국 교회가 앞으로 이런 모습으로 섬긴다면 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매월 교동협에 참여하고 있는 신무현 후암동장은 크리스천이 아니다. 그럼에도 교동협 목사들에 대해 감탄해 마지않는다. 신 동장은 "목사님들이 같이하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워보일 수 없다"며 "후암동 주민들을 위한 동역자란 생각으로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성장 분위기에 맞춰 성장일변도로 달려온 한국 교회. 한동네에 자리잡은 교회들은 동역의 대상이기보다 경쟁 대상으로 서로를 바라봐온 게 현실이다. 같은 동네의 교회들이 서로 협력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후암동 아홉개 교회의 동역은 시사하는 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