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 (창 3:8~10)[3]
날이 서늘할 때(1)

창 3:8-10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 동산을 거니시는 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주 하나님의 면전에서 피하여 동산 나무들 사이에 자신들을 숨겼더라.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디있느냐? 하시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나 벌거벗었으므로 두려워 숨었나이다 하니” 여기서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 라고 한 것은 하루 동안의 저녁때 서늘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또 날씨가 서늘한 것이 아니고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계명을 어기고 죄지은 후 그 죄책의 뜨거움과 양심의 가책이 격렬했다. 그러나 점차 많은 시간이 흘러 그 양심 가책과 죄책감이 다 식어진 것을 가리킨다.
(2) 여호와 하나님(성자 하나님의 제사장 직책인 멜키세덱)의 구원 받은 아담과 우리들
아담이 동산을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아담이 들은 것은 성자 하나님이 오셔서 아담의 영을 살리시고 찾아오신 것을 가리킨다. 즉 성자 하나님이 멜키세덱 제사장으로 하늘에 계시면서 아담과 하나님의 아들의 영들 모두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기는 구원을 하신 것임을 계시한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나님의 아들의 영들은 멜키세덱 안에서 지옥에서부터 천국으로 옮긴 영의 구원을 받았고, 따라서 아담과 우리는 영이 살아났고 영원히 지옥 갈 수 없는 영원한 구원 안에서 평강을 누리게 되었다.
(3)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왜 아담이 여호와 하나님의 찾으시는 음성을 듣고 무화과나무 아래 숨었나요? 이는 아담이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지옥 심판받고 죽은 자에서 하늘나라로 옮기는 구원을 해 놓으시고 이 구원을 깨우쳐 주시러 오시는 여호와, 즉 성자이신 구주 되신 주 하나님을 전혀 보지도, 알지도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담은 자기 범죄한대로 지옥 형벌로 심판 집행하려고 오시는 공의의 하나님으로 보았다. 즉 심판하시러 오는 하나님으로 보았으므로 두려워서 무화과나무 아래 숨은 것이다. 그 이후 성자 하나님이 육신 입고 임마누엘 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나다나엘에게 요1:50에서 “이를 네가 믿느냐?” 친히 증거하신다.
(4) 네가 어디에 있느냐?
여호와 하나님이 지옥의 심판 아래 죽은 자들 중에 아들의 영들인 택자들만 구원해 놓고, ‘아담아, 네가 이 구원 받은 하나님 자녀의 자리에 있느냐? 아니면 아직도 여전히 지옥 아래 죽은 자의 자리에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것이다. 이는 장소적으로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니다. 이는 성자 하나님이 멜키세덱 제사장 직분으로 구원해 주신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물으시는 것이다. 만일 아담이나 오늘날 우리가 구원받은 여호와, 즉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여호와의 음성을 들으면 우리는 전혀 숨지 않고 오히려 환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이다.
4. 산자의 어미와 가죽옷
(1) 창 3: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이브)라 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자의 어미가 됨이라.’ 아담 자신이 산자가 되었으므로 하와를 산자의 어미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산자란 이미 선악과를 먹고 지옥 심판받고 죽었다가 멜키세덱의 구원으로 살아난 것을 말한다. 산자 된 아담은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그와 대화하기도 하였고, 결국 성자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의 아내를 산자의 어미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도 이 멜키세덱의 구원을 받은 자, 곧 우리의 영이 산자가 됨을 계시한다.
(2) 창 3:21, ‘또 주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그 아내에게 가죽으로 옷들을 만들어 그들에게 입히시니라.’ 요1:29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거했다. 이 하나님의 어린양은 에덴동산에서 제물로 드려진 것이요, 이는 멜키세덱이 구원해 주심을 계시한 것이다. 이 양이 에덴동산에서 제물 된 후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산자인 아담과 하와에게 입힌 것은 이들이 영원히 지옥 갈 수 없는 멜키세덱의 구원받은 자라는 표징이다. 이는 그로부터 4천 년 이후에 멜키세덱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임마누엘 하여 십자가에 대속제물 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곧 예수 그리스도임을 가리킨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멜키세덱 계열에 따른 대제사장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히7:20-22).
따라서 에덴동산에서 가죽옷 입힌 것은 성자 하나님이 멜키세덱 제사장이 되어서 아담과 우리를 구원하실 때 반드시 그 멜키세덱이 장차 수육하여 이땅에 오셔서 죄값을 치르실 것을 전제로 하여 아담과 우리를 구원하신 것임을 뜻한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요19:30 ‘다 이루었다’ 하심은 멜키세덱 구원시 전제한 것을 다 이루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3) 창 3:22, ‘보라 그 사람이 자기 손을 내밀어서 생명나무의 과실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은 관계로 살게되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여자 신앙으로 산자는 그때 비로소 실상을 깨닫게 된다. 즉 하늘나라 영생을 다 불태워 버리는 삶을 산 것을 알고, 그 심판대 앞에서 서로 원수가 된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적의를 두리라”고 말씀하신 뜻이다.
또 15절 하반절 “네 씨(뱀의 후손)와 그녀의 씨(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 이는 뱀의 머리, 즉 마귀의 사망권세를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멜키세덱이 육신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께서 깨뜨리신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발꿈치가 상하리라는 것은 마귀가 예수님을 못 박았으나 다시 살아나셨고 다만 십자가에 못 박힌 흔적은 남아있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흔적은 부활하셨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처녀 마리아 통해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의 후손이 아니고 여자의 후손이다.
또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한다. 이는 마귀의 자식들(요8:44), 즉 예수님 당시에는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독사라고 했다(마23:33).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거역하고 마침내 죽였다.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자기들의 의로써 의인이 되는 자칭 의인들이요. 그러므로 독사라고 하였다. 이처럼 뱀의 후손인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원수가 된다. 창3장의 뱀(옛 뱀)이 예수님 당시는 독사가 되고 종말에는 계12:3 붉은 용으로 나온다. 즉 악한 존재가 더욱더 계속 악해짐을 계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