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사도영성 운동의 역사(18)
3. 찬양과 감사는 영적 삶의 증거가 됩니다.
영적 생활이란? 하나님과 깊게 교제하는 생활입니다. 영적 생활의 반대는 세상의 우상을 섬기고 그것과 교제하는 육신적 생활입니다. ‘사도영성’은 하나님과의 교제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면 그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열매를 맺기까지는 끊임없이 양분을 섭취해야 하고 방해하는 잡초가 제거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믿음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에서 장성한 자의 믿음으로 성장하기까지 무수한 연단을 받으며 부단히 영적 양식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성도의 믿음을 성장시키며 영적 양식을 공급해 주는 통로가 ‘예배’입니다. 성도는 예배를 통해서 성숙한 신앙에 이르며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배가 ‘영적 생활’, 즉 하나님과 친교하는 생활의 중심이라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은혜에 감사를 드리는 것은 예배의 핵심입니다. 영적으로 거듭난 성도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자격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영성이 높고, 깊은 성도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 드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셈입니다. 유치하고 미숙한 성도들은 아직도 자기 중심적이며,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기준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영성이 깊은 성도, 성숙한 성도들은 범사에 늘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 드림으로써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자신을 택해 주시고 죄악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생명의 세계 속으로 인도해 주신 은혜 그 한 가지만으로도 늘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한 마음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감사 찬미는 하나님과 친교하는 생활의 결과요 증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감사와 찬미는 영성인 열매인 것입니다. ‘찬양’은 찬양하는 자의 영혼을 순화시킵니다. 찬양은 악신을 물리치며(삼상 16:23),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촉진시키고(시 40:3), 두려움을 없애며(시 56:4), 마음을 즐겁게(시 105:2,3) 하기 때문입니다. 찬양을 통한 영혼의 순화는 성령의 교통을 고양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감격적인 찬양은 자기 영혼을 순화시키고 듣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한편 성도들은 크게 두 가지 일에 감사하도록 지시를 받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예수로 인한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이고, 둘째는 ‘범사에 대하여 감사’하는 일이 그것입니다(롬 6:17-18; 살전 5:18). 성도의 모든 감사의 원천이 바로 이 ‘구원의 은혜’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평생토록 감사해도 다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감사의 제목으로써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인자하심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07:1) 그리고 이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는 자라야 또한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의 은혜가 머무는 곳이 곧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과거의 삶을 승화시키고 미래의 삶을 격려합니다. 또한 감사는 인간의 영혼을 너그럽고 풍요롭게 하는 생명의 윤활제입니다. 따라서 감사는 영성 계발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사도영성 계발은 성도가 성도답게 사는 데 꼭 필요한 생명 활동입니다. 또한 이 생명 활동은 중생 이후에 꾸준히 지속되어야 합니다.
성령 안에 거함으로써,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라는 삶을 영위함으로써, 그리고 찬양과 감사의 생활을 통해 우리의 영성은 부단히 계발되어야 합니다. 영적 성장의 요건과 비결 살아있는 존재는 반드시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죽어 가는 것들은 성장을 멈추고 반대로 퇴화되어 갑니다. 아주 먼 옛적 공룡과 같은 파충류는 끝없이 성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환경에 적응치 못하여 사멸했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성도들의 영적 성품은 영원히 성장할 가능성과 특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 영생과 영화로움에까지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질병과 척박한 환경이 사람의 육체 성장을 방해하듯 성도의 속 사람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죄악 세상에는 많습니다. 이와 같은 요인들을 극복해야만 성도의 영성은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적 성장의 요건과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성도들이 간과하기 쉬운 진리가 있습니다. 즉 ‘구원은 우리의 힘이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과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진다’는 진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화’ 즉 영적 성장 역시 우리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으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룰 수 있다는 진리는 자주 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 보려고 온갖 노력을 하다가 자신에 대해 좌절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인 바램과 자신의 한계가 부조화되는 핸디캡은 성도 누구나 지니고 있기 마련이며, 이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영적 성장의 토대가 마련됩니다.
바울 사도도 자신의 영적인 욕구와 자신의 인간성의 부조화를 늘 경험하며, 탄식했던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죄성을 지닌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해 주셨음을 믿고, 늘 확신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구원 언약을 믿고 자신의 영적 핸디캡을 극복했던 것입니다.
성도들은 때로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에 실망하여 ‘과연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실까?’라는 의구심을 품을 때가 많습니다. 성령의 열매 대신 육신의 찌꺼기가 발견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또는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거룩한 곳으로 전진 하다가 실족하는 자신을 보고 실망을 느끼고, ‘하나님이 자신과 같은 모순된 존재를 아직도 사랑하시며 함께 해 주실 지’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의심은 사탄의 시험이요 이 의심과 낙심으로 인해 영적 성장이 방해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함께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주님의 언약을 믿어야 합니다. 비록 부족하고 못났어도 하나님은 나를 귀한 자신의 자녀로 사랑하시고 관심 가지시며 오늘도 저 천국 가는 여정에 나와 동행하고 있음을 늘 믿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실족과 낙심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구원언약과 동행 언약을 믿어야만이 성도의 영혼에 희락과 소망이 넘치며 그로 인해 영적인 성품이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모세나 다윗이나 바울 같은 성인들도 모두 하나님의 연단을 극복하면서 그 육성이 소멸되고 영성이 계발.성장되어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사랑으로 존경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가 사랑하는 성도는 그 영적 성장을 위해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당하는 시련, 즉 사업의 곤란이나 질병으로 인한 시련 등 연단의 내용은 다양합니다. 이와 같은 연단을 잘 극복하면 그 영적 성품이 일취월장 성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마다 당하는 시련을 극복하는 연단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시련을 극복하는 연단의 비결’은 ‘회개와 반성’입니다. 자신에게 하나님보다 세상의 물질이나 명예나 정욕을 더 사랑하는 탐심은 없었는지, 또 교만 무례한 성품이나 습성은 없었는지, 혹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간의 생각대로 행한 습성은 없었는지 철저하게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