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후계자 김정운 관상 봤더니”이것은 국내의 한 유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실린 보도내용의 제목이다. 이 기사를 쓴 사람은 유명한 모 경제신문의 기자다. 그는 김정운의 사진을 복사해서 들고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역술인들을 찾아가 관상을 부탁했다. 그 과정에서 역술인들에게 대답을 듣기 위해서 겪었던 어려움까지 소개하면서(“무릎을 꿇은 채 기다린 지 20분여분이 지났을까”) 마치 굉장한 대답을 얻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과 함께 온 나라 사람들에게 김정운의 관상을 소개했다.

기자의 신분으로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은 중요한 책임이지만 단지 호

 ▲이종전 목사?뉴스미션  
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정운의 사진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은 일본의 한 일간지였다. 지금까지 베일에 싸여있는 김정운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해서 그의 사진을 전해주었다. 한데 국내 언론사들은 그러한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다른 나라 언론사가 공개한 사진을 들고 역술인들을 찾아가서 김정운의 관상이나 봐달라고 수고(?)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것은 기자만의 탓이 아니다. 주간지나 스포츠신문에는 반드시 <금주의 운세>라는 코너가 있다. 그리고 그 코너의 존재를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비록 작은 코너지만, 그것이 신문판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자가 김정운의 사진을 들고 역술인을 찾아가는 것 또한 무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국민의 정서가 무속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자의 취재노력(?)은 매우 발 빠른 것이고,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기자는 무엇을 위해서 이 글을 썼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국민들에게 김정운의 관상이 그러니 대비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알아서 처신하라는 것인지 그 의도가 궁금하다. 그도 아니면, 그야말로 심심풀이로 실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포털사이트의 기사를 읽었다는 것이고, 독자들의 잠재의식 가운데는 역술인이 김정운에 대해서 한 말을 간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자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국민들로 하여금 역술인의 말에 대해서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를 만든 셈이다. 결국 우리 국민이 가지고 있는 무속적 정서를 자극하거나 최소한 그러한 의식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무속신앙은 정치적으로 제한을 받았고, 3공화국시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무속신앙을 배제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전개했지만, 여전히 국민의 정서가 무속적인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우리 국민의 정서가 무속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자는 자신의 글을 통해서 독자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 역술인을 찾아가 점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수고(?)를 통해서 얻어낸 역술인의 정보를 독자들에게 소개함으로써 자신은 일을 했고,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준 셈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무속적 의식에 매여 끌려 다녀야 할는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신문기자가 다른 사람의 관상이나 봐서 알려줘야만 하는 것인지. 호기심과 관련해서 생각하면 요행을 바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국민들이 관상에 따라서 울고 웃게 되는 것이 아닐지 심히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도 아니라면 관상을 보아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그의 관상이 그러하니 그것에 대처해서 알아서 행동하라는 말인가. 가뜩이나 무속적인 정서에 젖어있는 국민들인데 국가와 정치, 경제, 사회의 문제들 까지도 관상에 따라야 한다고 하는 것인지 할 말이 궁하다. 지혜를 모아 바른 판단을 해야 할 것이고, 그것을 전제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준비해도 어려운 상황인데 관상에 따라서 대처하라는 것인가.

대선에 출마하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조상의 묘를 소위 명당으로 옮기는 일부터 하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일 진대 심심풀이로 관상을 보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유포하는 것은 국민적 정서에 얼마나 깊이 영향을 줄는지 심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국민적 정서가 무속적이라는 것이 문제인 것은 고등교육을 받은 것과 관계없이 요행을 복으로 아는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데 있다. 평범한 일상의 질서까지도 윤리의식의 결여로 인해서 심각한 무질서와 부도덕이 지배하는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무질서와 뇌물이 통하는 사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민교육의 수준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과 비례한다. 사회적 가치관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종교라고 했을 때, 한국교회 또한 이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교회 안에서조차 무속적인 영향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의 가르침과 관계없이 그리스도인들조차 무속적 가치관을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해서 나타나는 요행을 추구하고, 윤리적인 의식이 결여된 현상이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