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영남 목사
(건국대학교 미래지식 교육원 교수, 시인, 문학 평론가)

그 때, 그 그리움

그때 나는 한 마리 들짐승 이었다

비바람 찬 서리 맞고 자라난 들풀처럼

야생에 길들여진 한 마리 사슴,

그래도 나는 그 때 행복했다

들을 지쳐 헤매다가 저물어

집에 들어와도 ‘어서오너라 왜 늦었니’

반겨줄 어머니가 있었고

방안에는 ‘일찍 일찍 다녀라’ 훈계할 아버지가 계셨다.

그 때 나는 행복했었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아버지가 되어

내 자식들을 돌보고 가르칠 힘이 없을까

자식들은 따분한 집보다, 히로뽕처럼 뿅 가는 것들을 찾아

뒷골목 길거리를 찾아 헤매고

거기에는 밥보다도 엄마 아빠,

집보다도 에덴동산 빨간 사과처럼

더욱 보암직도 먹음직도 한 것들 뿐

그래서 모두 바깥세상으로 나가버리고

우리 집은 언제나 빈집

늙고 병든 개처럼 골방에 갇혀 있는 부모는 내 팽개치고

멀리 휴가 떠난 자식들

골방에서 쓸쓸히 흐느끼다 죽어가는 아버지

오늘, 여기 빈 집엔, 살아있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빈집일 뿐

 

그땐, 아무 가진 것 없이 가난했어도

나는 행복했었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들어 있는, 가정의 달 오월을 맞이할 때 마다 즐거움 보다는 우울한 생각이 든다. 오늘 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집’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말에‘우리 집’ 하면 우선 당장 세 가지 개념이 머리에 떠오른다. 첫 번째는

'주거 공간house'으로서의 ‘집’이다. 이 집은 피를 나눈 온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안식처로서의 공간개념이다. 두 번째의 의미의 ‘집’은 사랑과 행복과 꿈이 있는 보금자리,‘가정home’의 의미로서의 집이다. 세 번째의 ‘집’은 부모 형제가 함께 동고동락하는 '가족공동체family'로서의 ‘집’이다. 우리는 산업화와 현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생활은 수십, 수백 배로 부요해지고 편리해 지기는 했으나, 반대로 가정의 붕괴와 가족의 해체로 사랑과 행복을 잃었다.

유태인들이 2천년동안 나라 없이 온 세계에 디아스포라, 방랑자로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심지어 독일 히틀러에게 600만이나 학살당하는 민족적 참극을 겪으면서도, 그 민족이 인류 역사 속에서 해체되어 사라지지 않고, 지탱해 온 것은 철저히 가족과 가정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느 나라 어디에 살든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과 얼을 잃지 않았고, 가정에서 아버지는 곧 제사장이고, 자녀들의 본이 되는 스승이며, 맨토 로서 자녀들을 양육하고, 가정을 목숨처럼 지켜왔다. 유태인의 가정은 작은 나라이면서, 부족이며 민족이요, 천국의 모형이라고 믿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대리자요, 중개자인 제사장이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같은 족장이면서 작은 나라의 왕이며, 하나님의 축복이 나에게 내려오는 '축복의 통로 pass way of God's bless'다.

 

몇 년 전, 독일 벨린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 작품 ’빈 집‘이 생각난다.

- 여름휴가철을 맞아 도시는 텅텅 비고 아파트, 단독주택 할 것 없이 도깨비가 나올 것 같은 모두 빈집 천지다. 집집마다 대문에 광고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는 청년 남자는, 오늘 붙인 집에 며칠이 지나도 전단지가 그대로 붙어있는 집은, 주인이 부재중임을 알고 철사 도막하나로 모든 집을 다 따고 들어가 잠을 자고 나온다. 들어가는 집집마다 욕실에는 빨래 감이 산처럼 쌓여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고 설거지통에 그릇들이, 거실, 안방은 청소도 안 되어 쓰레기장 같다. 청년은 들어가 목욕을 한 후 밀린 빨래를 하여 베란다 햇볕에 널고 집안청소, 설거지를 해 주고 밥을 지어먹는다. 벽에 고장 난 시계를 고치고, 고장 난 전자제품, 집기비품을 수리하여 원상회복 시켜준다. 하루는 빈집인줄 알고 들어가 빨래 설거지를 마치고, 저녁밥을 차려먹고 방에 누워 잠을 자려고 하는데, 부스스한 여자 하나가 방문을 지긋이 밀고 들어오자, 벌떡 일어나 미안해하며 말없이 나와 버린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그 집에 들어가 그 여인과 하루 밤 사랑을 나눈다. 그 뒤로 몇 년을 방안에 갇혀 지내던 여자가 따라 나와, 남자 가는 데로 함께 전단지를 붙이며 따라다닌다. 어느 날 어떤 집에 들어갔다가 병들고 늙은 아버지 혼자 골방에 두고 휴가 떠난 집에서 노인 혼자 피를 쏟고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함께 들어가 수의를 사다 입히고 장례를 치러준다. 살인범 시체유기로 몰려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오히려 선행으로 인정받고 풀려 나온다. 남편의 학대와 구타, 노예처럼 살아온 여자는 모처럼의 자유와 참된 삶의 의미, 진실한 사랑을 체험하지만 남편의 고발로 청년은 감옥에 가고 여자는 다시 가정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옛날의 우울증과 새장속의 새처럼, 어항속의 물고기처럼 살아있으나 죽은 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 후 청년은 감옥에서 나왔으나 다시는 어디에서도 그는 안 보인다. 그러나 그가 다녀갔던 빈집에는 그의 생명의 온기와 산자의 음성, 그림자가 깃들어 있다. '빈 창고 house'가 꿈과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가정 home'으로 '관계 relation'가 회복된 '가족 family' 으로 되돌아간다.-

 

이 시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집’의 의미는 무엇인가? 창고 같은 아파트‘집house’만 있고가정home‘가족family‘도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이 빈집엔 고장 나고 녹슬고 몹쓸 쓰레기만 산처럼 쌓인 무생명의 공간일 뿐, 병든 부모는 짐짝처럼 버려져 쓸쓸히 죽어 가고, 자식들은 세상으로 놀러나가 버린, 사랑도 꿈도 생명도 없는 빈 무덤 같은 우리들의 집,,,

누가 나서서 이 빈 집에 사랑의 온기와 죽어 고장 난 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소박한 가슴속에 꿈의 새싹을 움돋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