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자연 목사 칼럼
                    사람이 강할 때와 약할 때
                  엘리야 본받아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5 길자연 목사.jpeg 사람은 누구나 강할 때도 있고 약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이중성입니다. 인간의 이중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강할 때는 큰일을 행할 수 있지만 약할 때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그런 경우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강할 때 아합의 불의에 도전하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룸으로 많은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약해졌을 때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죽기를 구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강해지고, 언제 약해질까요? 그것은 의식의 문제인데,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하는가에 따라 강해질 수도 있고, 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는 하나님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강할 수도 있고, 약할 수도 있습니다. 왕상19:1-8은 이 원리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와 함께 하실 때 그는 강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을 갈멜산에서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엘리야는 한없이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눈에 아합과 이세벨의 권력, 바알 선지자들과 이스라엘의 배역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누구보다도 강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왜 낙심하고, 쓰러지고, 한 숨을 쉬고 절망합니까? 여러분과 함께 계신 하나님은 강한 하나님인데 왜 낙망하고 좌절하십니까? 우리의 하나님은 강하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이세벨의 협박을 받아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있는 엘리야는 지치고, 절망과 고통으로 약해져 있었습니다.

현실문제에 쫒기다 보면 누구라도 마음이 약해지고, 몸이 약해집니다. 엘리야는 왜 그렇게 약해져 있는 것일까요? 두 가지 인식 때문입니다. 첫째는 현실을 너무 인식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기를 너무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통해 현실을 보면 별 것 아닙니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엘리야가 강할 때나 약할 때나 하나님은 엘리야를 떠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약해졌을 때 하나님은 천사로 찾아왔습니다. 이 천사는 구약시대에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형상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때로 절망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천사의 모습으로 찾아온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한 엘리야처럼 예수에게 안기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세상에는 내 힘으로서 사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힘으로 사는 사람은 벽에 부딪치지만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사람은 길이 열립니다. 여러분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강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강할 때나 약할 때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들의 하나님이심을 확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길자연 목사는 한기총 대표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왕성교회 담임을 맡고 있다.

기독인뉴스 김성수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