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수화자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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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퓨리탄 장로교회 목사 서 영웅
(퓨리탄대학 총장/본지 상임이사)
 소리에 있어 음의 종류를 크게 분류하면, 순음 즉 단순진동의 음이 있고, 고른음(악음) 목소리의 진동처럼 주기적인 진동음과 시끄러운음(잡음), 타악기처럼 불규칙한 음으로 분류된다. 사람은 누구나 감성과 지성과 영성을 가지고 있다. 그 중 감성은 소리로 음악이라는 끝없는 창작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감상하며 인성의 촉각을 파장시키며 인격형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양음악에 있어서 교향곡(Symphony)은 인간의 감성과 지성을 표현하는 18세기 이후 음악의 거장들 베토벤, 슈벨트, 멘델스존 등 많은 대가들의 작품으로 세계 어디를 가나 Symphony Orchestra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교향곡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 마치 인간의 성장 과정과 같은 삶을 표현하고 있다. 간추려 보면 제1악장 (Allegro) 빠르게, 2악장 (Molto Vevace) 매우 빠르게, 3악장 (Adagio) 느리게, 4악장 (Presto) 가장 빠르게 로 구성된 곡이다.

훌륭한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고 감상한다는 것은 인격향상은 물론 삶에 풍요로움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와같이 소리는 감성에 있어 촉각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와 소리는 가장 귀한 보석과 같은 것이다. 보는 눈과 듣는 귀와 말하는 소리는 세상의 어떠한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과 같은 것이다.

생명을 가진 인격체는 수만종의 기능을 가지고 자기의 기반조성을 위해 노력한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월등하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의 사회를 보면 순음과 고른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잡음이 더 많아 혼란을 자초하게 된다.

모든 분야에 있어 특히 정치 분야는 잡음이 너무 많아 국민들은 정치에 대해 혼동만 깊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치는 정통성이 있어야 모든 국민이 협조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정당의 명칭을 바꾸며 당원들은 자기 설 곳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모습들은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애처로움을 느끼게 한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주자들의 발걸음이 쉴 사이가 없이 바쁘다. 마치 교향곡의 제4악장처럼 매우 빠른 심신의 모습들이다. 마지막 승리의 주자는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가 결정될 것이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장애인을 생각해 보자. 소리를 듣고 말하는 우리는 행복 중에 행복자로 기뻐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장애는 여러 계층이 있다. 그 중 청각 장애는 말을 못하지만 눈으로 볼 수 있고. 시각장애는 사물을 볼 수 없으나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외 신체적 장애는 너무 많아 헤아릴 수 없는 현실이다. 장애자의 어려움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 하겠는가! 생명이 있어 장애를 디디고 일어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어느 날 기차역 대합실에서 60대의 노신사 두 사람이 열차를 기다리며 언어 장애로 인해 수화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수화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대화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그들의 진지한 대화 속에서 웃음을 보게 된다. 소리 없는 웃음은 얼굴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만족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반백의 노신사 두 사람은 오랜 친구 사이 같았다. 그들의 수화는 계속되었으며 표정 역시 때로는 엄정하며 때로는 자애로운 모습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정, 사업 문제 등 어느 내용의 대화인지는 모르지만 장시간의 전반적인 대화(수화)에 나는 절로 고개 숙여짐을 느끼었다.

그들의 웃음은 소리없는 미소로 충분하였으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통과 어려움을 이기고 평생을 수화를 하면서 살아온데 대해 고마움 마저 느끼었다. 지금도 그들 수화자의 미소를 잊지 못하고 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듣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며 가장 귀한 하나님의 축복인 것이다.

국가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사회를 이루어야 한다. 오늘 우리의 정치 현실은 소외 계층에 대해 필요한 대비책을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숙자 문제와 영세민과 장애인에 대한 국가시책이 시급한 시점에 있는 것이다.

전국에 노숙자가 기차역 버스주차장 등 산재해 있는 인원이 약 4만 명에서 5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중에는 공직퇴직자들도 상당수가 포함되고 있다. 다행히 사회봉사단체들이 자비를 들여 하루에 점심 한 끼 정도를 제공하므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이들 노숙자와 영세민과 장애인들에게 일하며 먹을 수 있는 일터를 속히 제공해 떳떳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경제 성장을 이야기 한들 무엇 하겠는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국내에 노숙자가 늘어만 간다면 잘못된 정치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노숙자도 영세민도 장애인도 모두 인간으로서의 행복의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모습이 비록 헐벗고 추한 모습을 가졌으나 일터가 있고 식사가 제공되고 옷을 입을 수 있다면 정상인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잘 살아가는 집에는 육아비와 교육비 등을 제공하는데 음지에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고통 하는 소외계층은 왜 정책적인 대안이 없는 것인가! 수화자의 미소를 떠올리면서 이들에 대한 시급한 안정대책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