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으로 공부
나는 신학교에 가서 전부터 성실하게 살기 위해 힘썼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보다 진실하고 성실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 진실하고 성실하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복을 주신다. 나는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졸업할 때 졸업비 이백 원이 없어서 졸업 3개월을 앞에 놓고 학교에 가지 못했고 졸업식장에 참석을 못 했다. 중학교 진학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졸업식이 있는지도 몰랐다. 두 달 후 같은 반 친구가 찾아와서 담임 선생님이 보내서 왔다고 하면서 선생님 집으로 오라고 했다. 무슨 일인가 해서 선생님 집으로 찾아갔는데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면서 졸업장을 주셨다. 그리고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춘복아! 너는 중학교 진학을 못하면 아까운 아이다. 중학교는 아니지만,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는 고등공민학교가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검정고시를 보면 그등학교에도 진학할 수 있다. 네가 형편이 어려워 고등공민학교도 진학할수 없는 것 다 안다. 그래서 너의 학비를 지언해줄 분을 찾았다. 농협 상무님이 너의 삼 년 학비를 후원해 주기로 했다.
벌써 학기를 시작했지만, 엄마에게 말씀드려 내일부터라도 학교에 다녔으면 좋겠다. 그때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셔서 안 계셨기 때문에 엄마에게 말씀드리라고 한 것이다. 나는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엄마에게 말했지만, 가방도 없고 카라가 있는 교복이 없었다. 그래서 책은 보자기에 싸고 초등학교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이ㅃ고 학교에 갔다. 책 살 돈이 없어 한 학기 동안 영어책도 없이 다녔고 그렇게 삼 년을 공부했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공부하다가 학생들이 공부 끝난 후 벽돌을 찍어서 공부할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으로 옮겼다. 졸업반 때 대전에 가서 고입 검정고시를 봤는데 약 사십 명 졸업생 중 합격한 학생은 나까지 합해 다섯 명이었다.
고등학교 진학할 수 있는 자격은 얻었지만 진학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고등학교 진학도 어려운데 대학은 전혀 불가능했기 때문에 상업고등학교를 선택했고 대전 상고 시험을 봐서 합격했는데 등록금이 문제였다. 고등공민학교는 농협 상무가 등록금을 후원해 다녔지만, 고등학교까지는 후원이 되지 않았다. 당장 먹고살기도 어려운 어려운 형편에 결국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했고 진학을 포기했다. 그때부터 집을 떠나 객지 생활에 들어갔다. 대전에서 서울에 올라와 생존을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늘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독학으로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대학 진학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대신 돈을 벌어 돈에 대한 원수를 갚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고 입대 영장을 받았다. 입대 전에는 직장이 주일날 일하는 날이 많았고 침구들을 사귀다 보니 주일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믿음 생활에 소홀했다. 그러나 늘 열심히 믿음 생활 못 하는 것 마음이 편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