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으니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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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화요일에 평개원 오병이어 헌신 기도회를 했습니다. 몇 주 전 수요 오전예배에 오신 진용훈 목사님의 설교가 동기 부여가 되어 생긴 모임이었습니다. “오병이어처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드려졌을 때 놀라운 축복을 일으킨다는 말씀에 감동 받아 오병이어 헌신을 결단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2시간이 넘도록 메시지를 전하고 큰 소리로 기도회를 인도하다보니 목이 칼칼하였습니다.

 

또한 서울로 나가 많은 목사님들에게 식사대접을 하며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돌아와 밤늦게까지 상담하고 특별한 손님을 맞이하였습니다. 그 후에 또 김성우 목사에게 철야기도 설교를 불러 주었더니 성대의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소금물로 가글한 후 잠자리에 누웠는데 문득 옛날 성대 수술받았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수술받고 깨어났을 때 병원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너무나 눈부시고 아름다웠습니다. 다시 숨 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격이고 새로움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눈부시게 느껴졌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도, 풀잎에 내려앉은 이슬도, 새소리도, 꽃향기도 살아 있는 자만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살아 있으니까 아프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쓰러진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시든 꽃잎은 차가운 이슬이 내려도 떨지 않듯이, 죽은 자는 아무런 고통도 상처도 아픔도 느끼지 못합니다.

 

류시화 시인이 쓴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책에 보면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중 라코타 수우족은 고통을 겪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상처받고 고통 받는 사람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고 그 사람에게 자신들을 대신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한다고 합니다. 상처 입은 자의 기도가 하나님께 닿을 만큼 가장 절실하고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살아 있는 것은 아플 수밖에 없으며 고통은 한계를 넘을 때 스스로 치유제가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죽은 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에 상처와 아픔은 살아 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라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류시화 시인은 축복을 셀 때 상처를 빼지 말고 세라고 말합니다. ‘축복’(blessing)은 프랑스어 상처 입다’(blesser)와 어원이 같습니다. 즉 상처없는 축복은 없다는 것입니다. 상처 없이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없고 아픔 없이는 인생의 방향을 찾을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안전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는 순간 삶은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뜨리고 파도로 후려치며 새로운 길을 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처와 아픔도 그냥 오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류시화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통해 이런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제가 그 분을 만나 꼭 전도 하려고 합니다마는,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일들은 무엇이 좋고 나쁜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이 축복인줄 알았는데 나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이 상처인줄 알았는데 오히려 축복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는 하나님만이 아시며 우리는 삶의 여정을 한참 걸어간 후에야 뒤돌아보며 나에게 무엇이 좋고 나빴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불어오는 바람도 이유 없이 그냥 불어온 것이 없고 파도도 그냥 몰아쳐온 것이 아닙니다. 어떤 바람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어떤 바람은 축복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어떤 파도는 나를 쓰러뜨리기도 하고 또 어떤 파도는 더 멀리 갈 수 있게 해 주기도 합니다.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 있으니까 아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픔은 머리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슴은 알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아픔이 나의 성장과 축복의 치료제가 되고 영양제가 된다는 것이죠. 상처가 오히려 나를 치료하고 상처를 회복시켜 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보면서 저 역시 수많은 사역 가운데서 상처받고 아파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같은 분들은 이 땅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성도들이 저에게 사랑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외로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기에 외롭고, 외롭기에 사랑하려고 몸부림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과 외로움도 우리가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주님 안에서 더 사랑하고 섬기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몰아쳐도 서로를 감싸주고 위로하며 머나먼 사명의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쉼표를 넣은 곳에 우리가 마음대로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