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늘 “인격자”라는 낱말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일년 내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겨우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입니다.
게다가 중학교 시험이 있던 시절임에도
매주 체육 시간이 있었고
체육 시간엔 맨발로 뛰게 하시고
담력이 있어야 한다면 여학생들까지
자기 키 높이의 뜀틀을 넘도록 만드셨습니다.
미술시간에는 수채화 유화로 그림을 그렸고,
선생님의 작품은 명작이었습니다.
빛을 중시하는 인상파 화가와 고흐에 대한 작품이
머리에 남고 마음에 자리잡게 된 것이 그때입니다.
지금도 제 서제엔 고흐의 작품이 걸려 있고
그 작품 집이 늘 펼쳐져 있습니다.
음악시간에는 주로 동요와 민요를 가르치시면서
어린시절엔 평생 부를 노래를 배워야 하고
민족의 가락과 뿌리를 알아야 한다며
매주 가르쳐 주셨습니다.
노래해야 할 자리에서, 요즘 노래 부를 것이 없으면
그때 배운 민요 "한오백년"을 부릅니다.
의병에 대한 이야기, 독립 투사에 대한 이야기도
틈만 나면 이야기 해주셔서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제가 사회적 책임이나
순교자적인 옹골스러움이 생긴 것은
교회 이전에 저는 그때 선생님에게서 배웠습니다.
붓글씨도 한 달에 몇 번씩 쓰게 하셨는데
참으로 명필이시고 지금도 그 글씨가 선명히 기억납니다.
그때 붓을 놓지 말라는 말씀을 잊지 못해
해 전에는 40년 세월이 지났음에도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마음에 두었던 일이라 그러한지
평생 쓴 사람처럼 쉽게 써지는 것을 경험하며
스스로 놀라고 주변의 감탄에 더 놀랍니다.
선생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특별히 선생님이 그리운 까닭은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어린 6학년짜리 아이들을 데리고
인격자와 군자를 말씀하시면서
부채를 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60년대 말 에어컨도 없고 건물도 변변치 못한 교실에서
더우면 더위를 참고 그냥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추우면 추운 것을 참고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우리는 선생님이 너무나 존경스럽고 높게만 여겨져서
누구 하나 부채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정말 더운 줄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저는 한 여름에도 긴 팔 옷을 입고도
“더운가?” 하면서 그냥 지나치기도 합니다.
오늘도 뉴스에서는 열대야라고 난리지만
선풍기도 없는 방에서 별 어려움 없이
평상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정진억 선생님!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루 한단 기쁨으로
영성의 길 오르기*
인생에서 힘든 시기는
나쁜 날씨가 계속될 때가 아니라
구름 한 점 없는 날들만 계속될 때입니다. <칼 힐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