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특별한 교회들이 있다. 농아인교회, 시각장애인교회, 그런가하면 예술인교회, 체육인교회 등이 그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지나치고 있지만 한 번만 생각한다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어쩌면 우리나라밖에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당연한 것처럼 지나왔기에 뭔 소린가 할지 모르나 이러한 현상은 우리 안에 있는 문제를 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만민의 교회, 즉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사람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지식의 유무, 인종의 다름과 관계없이 모두가 한 지체로서의 교회이어야 한다. 교회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만의 공동체가 아니며, 그러한 사람들만의 관계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만의 교회가 따로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별문제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그들 스스로가 소외감과 열등감으로 인해서 비장애인들과 함께하는 것이 버겁게 느낀다.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황에 따라서 본능적으로 동반하게 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그들 스스로가 약자의 입장에서 적극적이기를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 외에는 무리가 아닐 수 없다. 해서 그들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배려가 매우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어려움에 대한 의식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장애인들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와 배려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는 성장과정과 삶의 현장에서 장애인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없고, 그들과 함께해야 하는 동반자로서 삶의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데 있다. 그 결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고착화되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사회적 현상(NIMB현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인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장애인은 장애를 가지고 있을 뿐 결코 다르지 않고 똑 같은 인간이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 장애인들이 공교육시설에서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장애인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하며,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몸에 익히도록 한다. 때문에 매우 의도적으로 장애인을 비장애인들과 함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도 동등한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이해하게 하고, 장애인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사람인 것을 인식하게 한다. 물론 재활훈련이나 치료를 위한 장애인들만을 위한 별도의 시설은 필요하다. 그러나 일상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게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장애인들에게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또한 비장애인들에게도 장애인들은 도움을 받는 자들이 아니라 공동체의 지체로서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물며 교회가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의식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는지. 그러한 의미에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그들만의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선교적 차원에서는 별도의 기구나 시설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교회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신앙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노력과 시행이 필요하다. 장애인을 단지 비생산적인 존재로 이해한다면 교회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교회가 장애인을 수용할 수 있는 의식이 준비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교회에서 함께 할 수 없다고 느끼기에 그들만의 교회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교회들은 선교회(para-church)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들만의 교회가 있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아쉬운 모습이다. 그들을 품어서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장애인이나 특별한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만의 교회가 있다는 것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그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배당을 짓더라도 지금까지는 장애인들을 배려하는 면이 턱없이 부족했다. 장애인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은 한국교회가 장애인들에 대해서 그만큼 무관심하거나 함께 할 수 있는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출입구에 작은 턱만 없애줘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에게는 엄청난 위로와 용기가 될 것이나 실제로 예배당은 반드시 계단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서도 예배당 안에서 그들이 편히 자리할 곳이 준비된 곳은 거의 없다. 이 또한 이해의 부족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시설이 비장애인 중심으로만 만들어졌다는 것이 장애인에 대한 의식이 얼마나 부족한 것인지를 알게 한다.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과 관계없이 주님의 지체들은 하나의 교회 안에서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들도 자기 안에 갇혀있어서는 안 되고, 비장애인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사회적으로도 장애인에 대한 의식이 많이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교회도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는 이보다 앞서야 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와 함께 하나의 교회를 이룰 수 있어야 진정한 교회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