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벌은 아담 이후에 전 인류에게 주어진 것이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미국의 팻 로버트슨이 아이티의 지진을 “신의 저주”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의도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그 소리를 접하면서 과연 가능한 말이며, 필요한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도 그러한 해석과 적용으로 인해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일들이 있다. 가깝게는 한국교회의 지도자 가운데도 그러한 경우가 있기에 심히 우려가 된다.

교회의 지도자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그것은 성경적 세계관에 대한 충분한 의식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다. 또한 기독교의 신학적 정통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말한 것과 같은 해석과 적용은 기독교 스스로에 대한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즉 아이티의 지진을 ‘신의 저주’로 말한다면 아이티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다는 의미이거나, 아니면 지구의 대표로 저주를 받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러한 말을 한 팻 로버트슨이 살고 있는 미국은 아이티보다 더 의로운 나라인가 하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지구상에 있는 어느 나라, 어떤 사람들일지라도 상대적인 의미는 있겠지만 우리는 월등하게 의롭다, 혹은 우리는 저주의 대상이 되지 않을 만큼 의롭다고 할 수 있는 나라가 있는가?

그런가 하면 만일 아이티 사건을 인류를 향한 신의 경고로 본다면, 아이티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한 회개를 촉구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에도 그들의 아픔과 그 고통에 동참하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아이티만의 아픔이 아니라,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의 아픔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말을 했던 사람들을 보면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하나는 기독교의 극우적(극단적) 입장에서 매우 편협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거나, 또 하나는 이단적 신앙을 이끌었던 사람들이다.

현대에 와서 이러한 현상을 원리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매우 극단적인 사상에서 나오는 해석과 적용이다. 이러한 원리주의적 입장은 철저하게 배타적 성향을 동반하기 때문에 극단적 오류를 낳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입장을 적극 지지함으로서 고립을 자초하게 된다.

후자의 경우는 한국교회에서 1970-80년대에 무교회주의(구원파)를 이끌었던 지도자가 현실적 상황을 성경의 종말적 교훈과 대입하여 해석함으로써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었다. 당시 그는 종말을 보는 듯 설명하였고, 세계적 현상들과 대입하는 그의 설교는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말은 허구가 되었고, 1992년 시한부종말론의 종말과 함께 그 반향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면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러한 말을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앞에서 지적했듯이 가장 기본적인 신학의 결여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극단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소수일지라도 지지자들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러한 극단적 해석과 적용은 어느 시대든지 있게 마련이다.

다만 문제는 그들이 기독교의 대표 혹은 전체로 보인다는데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은 기독교의 극소수이며 극단적인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말이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에 기독교 내에서는 염려가 깊을 뿐이다.

만일 지진과 관련해서 ‘인류에 대한 신의 경고’로 해석할 경우에도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특정한 지역이나 사람이 저주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벌은 아담 이후에 전 인류에게 주어진 것이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특정한 지역과 사람들을 저주의 대상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또한 누구도 인간에게는 그러한 해석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자격도 없다. 다만 교훈을 위해서 신중하게 현실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가르침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의 선지자와 같이 마치 자신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계시를 받은 것처럼 말하거나 해석하여 적용하는 것은 왜곡된 신앙을 형성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비그리스도인들로 부터는 엄청난 저항과 반감을 사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독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안티 세력만 키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한 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독교 지도자들의 신학적 의식수준에 대한 염려를 하게 된다. 즉 기독교 지도자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체계적 이해가 충분하게 준비되어야 할 것이나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고 아쉬울 따름이다.

                                                          이종전 목사/ 인천 만수남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