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  장자행세行勢와 장자노릇

박영남 교수.jpg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10년 경술년 8월 29일, 나라와 민족이 일본에 넘겨지는 치욕의 역사 거기 중심에 있었다. 그 후 36년간 젊은 여자들은 전쟁터의 위안부로 끌려가고 청년들은 군인으로, 장년들은 탄광 노무자로 징용당했다. 국가와 민족이 힘이 없을 때 우리는 언제든지 이런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역사 속에서 배웠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경인년 2010년의 새해 아침이 밝아왔다.

100년 전의 우리의 모습과 100년 후 오늘의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100년이 지난 우리는 1988년 세계 올림픽을, 2002년 FIFA 월드 컵 행사를 개최하고, 경제적으로 G 10위,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모든 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G 20위 안의 중심국가가 되었다.

2010년 G20 정상 회담을 개최하는 장자의 자리에 서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는 전환점 1997년 IMF 경제 난국을 겪었으나 몇 년 만에 무난히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2009년 전 세계가 미국 발 경제 쓰나미에 휩싸였으나 우리는 오히려 사상 최고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우리가 100년 동안 역사의 난국을 극복하고 일어선 중에는 간과해서는 안 될 핵심적인 에너지 역할을 한 것이 있다. 우리 기독교의 성장과 1,000만 성도의 신앙의 힘이다.

캐톨릭 200년, 개신교 100년의 이 짧은 역사 속에 선교사 25,000 명을 파송한 세계선교 2위의 자리에 있다. 이 작은 나라가 짧은 역사에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 선교사를 받아드리는 나라에서 세계를 향해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로 세계의 복음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 큰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100년이라는 한 세기 동안 우리는 힘이 없어 국권을 빼앗기고 압제받던 비극의 역사를 바꾸어 복음을 받아드리던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는 나라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열강의 변두리로 밀려난 나라에서 열강의 중심에 우뚝 선 나라가 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복음에 바탕을 둔 신앙의 힘, 창조적 에너지 덕분이었다.

우리는 명실상부한 복음의 장자가 되었다.

장자는 장자노릇을 해야 한다. 카인은 장자다. 그러나 그는 장자행세는 해도 장자노릇을 못하는 형이다. 탕자의 비유속의 장자도 장자노릇을 못하는 장자다. 행세는 권리행사를 말하고 노릇은 의무와 사명, 역할이다. 카인의 하나님을 향한 반문처럼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Am I my brother's-keeper’ 그렇다. 형은 아우를 돌보고 지키는 ‘아우지킴이brother's-keeper’다.

카인은 아우를 지켜야할 자가 죽였고, 탕자의 형은 잃었다 찾은 아우, 죽었다 살아난 아우dead and alive, lost and found"로 인해 아버지가 기뻐하고 잔치를 열어, 여러 사람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자come and share my happiness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이 말씀 속에는 "장자는 아버지다, 형인 너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아버지 노릇을 대신해야한다”“아버지인, 내가 기쁘면 너는 당연히 기뻐해야 하고, 아버지인, 내가 슬프면 형인 너는 당연히 슬퍼야한다”우리의 어려운 이웃이나 무서운 재난을 당한 난민들의 참상을 보면서 이제 우리를 세계 속에 장자로 세워주신 아버지의 뜻을 헤아릴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우리교회와 성도들이 장자가 되어 아우를 돌보고 지키는‘아우지킴이brother's-keeper’선한 사마리 인이 되어 강도만나 쓰러진 이웃을 돌보고 지키며 함께 동행 하는‘이웃지킴이neighbor's-keeper’노릇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장자가 장자의 복과 권리나 누리고 행세만 할 때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기 마련이고, 2천년동안 세계에 산산이 흩어진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