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협 9월 월례회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발제문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는 11일 금요일 오전7시 화평교회에서 "한국교회와 십자가의 길"이란 주제로 한복협 월례회를 가졌다. 다음은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의 발제문 전문.

십자가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의미는 신학이 다르고 신앙의 배경이 달라도 그 의미는 동일 할 것이다.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지만 오늘은 은혜와 고난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십자가는 광의의 의미도 지니지만 나에게 더 가까운 해석이 주어지는 협의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특히 성결교단의 목사가 바라보는 십자가는 인류를 구원하고 사회를 구원하는 십자가 해석 보다는 나와 연관을 지어 해석하는 십자가로 이해되고 해석되어진다.

1. 나의 값을 극대화시켜 준 소중한 의미의 십자가

칼 바르트는 나는 십자가를 볼때마다 두가지를 발견한다고 했다. 하나는 나의 값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값이 얼마나 크면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죽이면서까지 나를 구원하려고 했을까 하는 하나님에 대한 고마움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나의 죄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나의 죄가 얼마나 크면 저 십자가에서 아들을 못 박아 죽이면서까지 나의 죄를 사하려고 했을까 하는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십자가는 나의 값을 일깨워준 자리임에는 틀림없다. 이 해석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는 의미가 될 것이다. 십자가는 나를 소중하게 여기게 해 준 고마운 자리이다.

2.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이 한자리로 모아진 자리

일본의 지다구라 라는 신학자는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엘리엘리 라바사박다니 하고 절규하며 고통속에서 부르짖을 때 끝까지 침묵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심정 즉 그 하나님의 고뇌에 찬 아픈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십자가의 진정한 이해라고 했다. 고뇌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침묵하며 그 고난의 절규를 외면하고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오직 일념의 하나님의 그 아픈 마음을 먼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감히 십자가를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않된다도 했다. 지다구라는 그것을 아픔의 신학이라고 불렀다.

성결교 목사가 이해하는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농도있게 표현된 곳이며 하나님 자신이 피를 흘리며 극란한 사랑을 유감없이 보여주신 곳이 십자가로 이해한다. 십자가는 오늘 신앙인들이 말없이 음미하며 삶을 수행해 나가는 기준이고 방법이다.

3. 십자가는 자기를 부정하고 성결을 유지하게 하는 목적

성결교회는 성결을 신앙인의 삶의 초점으로 그리고 마지막 도달할 삶의 목적지점으로 여긴다. 성결은 하나님의 성품에 가까이 닮아가는 삶의 형태를 말한다. 그래서 오늘 성결은 비인기 단어이고 비인기 주제에 속한다.

사람들은 성결보다 재미와 이익과 행복을 추구한다. 성결 추구자는 세상에서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시대이다. 그런데 성결 추구자는 인생을 다 풍요롭도록 성결로 재미와 행복을 추구한다.

그 성결의 행복은 십자가에서 주어지는 자기부정의 정신에서 창조된다. 성결의 모델은 예수이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시험을 받으시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시험받는 중에도 하나님이 주신 사역에 충실하였다. 진실과 순전함을 보이셨다.

또 성결의 성품은 하나님을 닮는 삶이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시다. 죄는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의 자유와 행복을 가로막는 규율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에게 자유와 안전과 풍요를 준다. 그리고 진정한 기쁨을 준다.

그리고 성결의 방법은 마음의 성결에 있다. 하나님의 영은 거룩한 영이시다. 그 영이 우리 안에 거주하신다. 고로 성령과의 교제는 성결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와 조건이 된다. 성령과 교제해야 성결유지가 가능하다.

또한 성결은 말씀으로 유혹을 이길 수 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국시킴으로 유혹에 빠졌지만 예수님은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치셨다,

성결의 삶은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는 삶이다. 이같은 성결의 완성은 십자가를 통한 자기부정의 원리에서만 가능하다.

성결은 마음과 생각이 근원이 된다. 그래서 바울은 딤전 4:6-7절에서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였다. 성결은 자신의 무흠을 강조하고 내재적 성결을 강조한다. 고로 성결은 십자가의 자기부정에서 기인한다.

다음은 십자가의 길에서 발생한 한 성결인의 모습이다. 이 모습은 십자가의 길에서 주어진 하나의 성결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1920년에 김동훈 전도사는 조치원 교회 전도사였다. 그때 18세된 여인의 끈질긴 휴혹을 받는다. 전도사는 완강하게 거절하였지만 유혹도 계속 되었다. 마침내 전도사는 그 여인의 남편에게 고발하였고 또 그 여인은 전도사를 역고발하였다. 그리고 전도사는 그 남편이 부린 불량배에게 뭇매를 맞았고 그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10년후에 죽는다. 죽어가면서 그 전도사는 “그들을 고소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명직은 그 젊은 전도사를 일컬어 “요셉과 같은 사람이었다“고 평가하였다.

그 소식이 널리 퍼지게 되고 그의 일주기 추도예배에는 지역민들까지 참석하여 7시간 30분 동안 추모식이 거행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여인도 그때 전도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을 가면서 표현된 성결의 모본이다. 나 개인의 성결한 신앙을 지키고 나의 성결성을 고이 유지하고 나의 성결의 신앙을 깨끗하게 지킬 수 있다는 것은 결심이나 노력에서 기인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 십자가의 길에서 주어진 자기부정의 신앙으로 살아갈 때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오늘 십자가의 길은 자기를 철저하게 부정하게 하는 목적으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