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골서 두만강 인근 이송 후 北 보위부에 인계돼

 
 이번에는 투먼 감옥이었다. 내몽골에서 꼬박 사흘을 달려서야 북한과 인접한 투먼에 도착했다. 우리는 짐승 떼 몰리듯이 또다시 철창 속에 갇혔다. "아이고, 아파서 혼났네." 몇몇 여인들이 팬티에서 무언가를 꺼내 주머니와 가슴 띠 등에 숨겼다. 그 순간 갑자기 군견과 함께 두 명의 군인이 들이닥쳤다. 여인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자 두 군인은 전기곤봉으로 사정없이 그들을 후려쳤다. 군견은 여인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기어코 한 여인이 어딜 맞았는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여기 있습니다! 여기요!"

 역시 돈이었다. 우리는 가지고 있던 돈을 먹었기 때문에 별로 걱정이 없었는데, 저들은 은밀한 곳에 넣어가지고 며칠째 오다 보니 염증도 생기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데까지 감시 카메라가 달려 있을 줄 아무도 몰랐다. 여기서도 우리들은 짐승 이하였다. 가끔 바깥에서 장작 패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아우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지옥이었다. 우리 방의 한 여인은 불려나간 지 세 시간 만에 거의 실신상태로 되돌아왔다.

"아니, 무엇 때문에 그런 곤경을 당했 수?" "모르겠소. 나도 모르는 사람을 대라고 해서 모른다고 했더니 막 때리고 기둥에 묶어놓는 게 아니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걸…."

참으로 기구한 사연들이었다. 이들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정든 고향을 떠나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걸까. 고국인 북한에서의 삶이 어찌했기에 남의 땅 중국에서 이처럼 모진 고생을 감수하는 걸까. 이전에 내가 몰랐던 북한의 처참한 실상에 치가 떨렸다. 그에 비하면 내가 살아온 과정은 너무 행복했다. 저절로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길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축복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몰랐을 때에도 저를 보살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 이 불쌍한 백성들은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아버지, 이들을 거두어주십시오."

투먼의 밤은 하루도 평온하지 않았다. 하루는 옆의 남자 방에서 숨 넘어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내일 북송을 앞두고 쇠못을 삼켰다는 것이다. 그러자 몇 명의 군인들이 몰려와 그 남자를 끌어냈다. 그를 병원에라도 데려가려나 했더니 그게 아니라 무자비한 폭행으로 응했다. "악∼!" "우와악∼!" 고통스럽게 질러대는 처절한 비명이 투먼의 밤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 중국 공산당 놈들… 언젠가 네놈들에게 천만 배로 복수하리라! 으으윽….' 모두들 주먹을 쥐고 이빨을 갈았다.

그러는 가운데 날이 샜다. 드디어 북송이다. 중국 군부대의 트럭이 몇 대 와선 100여명의 탈북자들을 짐짝 다루듯이 싣고 두만강 다리를 건넜다. 당시 중국의 북한 인접 부대는 탈북자들을 잡아 보내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탈북자 한 명에 통나무 3t씩을 맞바꾼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북한 온성의 보위부에 다시 짐짝 부려지듯 내려졌다. 극심한 공포감에다 2월의 맹추위까지 더해 모두들 부들부들 떨었다. 감방 하나에 10명씩 들어가게 하곤 옷을 벗겨 알몸으로 50번씩 앉았다 일어나기를 시켰다. 은밀한 곳에 감춘 돈을 빼내기 위해서였다. 다음은 뜀뛰기 5번. 항문에 넣은 돈을 빼내는 검사였다. 눈뜨고 보기에 너무나 흉측한 광경이었다.

조사가 시작됐다. 함께 간 동생들에게 눈치를 하며 위로해주었다. 그러면서 기도하라고 눈짓했다. 모두가 숨죽이고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조사를 받기 위해 나가는 이들의 모습은 영판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들이었다. 아…. 하나님….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시 12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