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총, 협력과 일치를 위한 공동신앙선언 채택 
 


  이단옹호에 앞장 서 온 이흥선씨가 이단으로 규정
한기총의 신학과 신앙의 기초를 밝힌‘한기총 협력과 일치를 위한 공동신앙선언’과‘아프간 사건 후 재발방지를 위한 한기총의 실천적 제안’이 채택 발표됐다. 또 이단옹호에 앞장 서 온 이흥선씨가 이단으로 규정됐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9월 7일(금) 오후 제18-2차 실행위원회를 갖고 회원교단 실행위원 및 총대 조정과 회비미납교단의 선거권과 피선거권 제한 등의 안건을 처리했다. 오전 임원회에 이어 열린 이 날 실행위원회는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운동 전개에 선행되어야 할 연합기관으로서의 한기총의 신앙적·신학적 입장을 밝히기 위해 신학연구위원회(위원장 이종윤 목사)가 초안하고 각 교단의 개별입장을 수렴하여 마련한 ‘한기총 협력과 일치를 위한 공동신앙선언’이 채택 발표됐다.

또 예장연의 <정통과이단>을 비롯해 최근 <목사님 이단이 무엇인가요?> 등 이단옹호 책자 발간 보급에 관여하고 한국교회와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린 이흥선 씨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이 씨는 그동안 <기독저널>과 <기독교평론신문>을 통해 이단을 옹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단 사상들을 이단이 아니라고 변증함에 따라 이단사상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어 ‘이단옹호자’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이단’으로 규정됐다.

한편 교회실명제에 따라 교단별로 교회 수에 의거해 회비와 총대 및 실행위원 숫자가 조정됐다. 또한 2007년 회비를 대표회장 선거가 이뤄지는 실행위원회 개회 시까지 미납하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제한하기로 했다.

이 날 발표된 ‘한기총 협력과 일치를 위한 공동신앙선언’과 ‘아프간 사건 후 재발방지를 위한 한기총의 실천적 제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의 협력과 일치를 위한 공동신앙선언>

 

♣ 서 론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이라 한다)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제케 하시며, 그리스도의 지체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교제케 하심을 감사하고 기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행하시는 일에 깊은 감동을 받으며, 우리의 실패를 통회하고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복음화된 통일조국 실현에 도전을 받는다. 우리는 온전한 복음이 온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좋은 소식임을 믿으며, 이 복음을 온 인류에게 선포하여 모든 민족을 제자삼으라 분부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그의 은혜로 다짐한다.

한기총은 교단들 사이의 다양한 신학적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연합과 협력을 통해 지상교회에 부여된 공동사명을 함께 수행하기 위하여, 복음주의 운동의 근거가 된 신학적 기반을 정리한 사도신경, 아타나시우스신경, 칼세돈신경을 고백한다. 종교 개혁자들의 신앙, 곧 ‘오직 성경만’, ‘오직 은혜만’, ‘오직 그리스도만’, ‘오직 믿음만’,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강조하고 복음주의적 세계연합체가 공인한 로잔언약(The Lausanne Covenant)과 마닐라 선언문(The Manila Manifesto)을 모범삼아 우리의 신앙과 결단을 확인하고 교회협력과 일치를 위한 공동신앙 선언문을 공포한다.

 

1. 하나님의 목적

삼위일체 하나님은 자신이 뜻하신 목적에 따라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자기 백성을 택하시어 세상에서 자기의 종이자 증인으로 부르시고 다시 세상으로 보내시어 그의 나라의 확장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시고 그의 이름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하셨음을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죄로 세속화되어 이 소명을 부인하고 선교사명에 실패하였음을 부끄러워하여 그 죄를 고백하며 이 선교 과업에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사 40:28 ; 마 28:19 ; 엡 1:11 ; 행 15:14 ; 요 17: 6, 18 ; 엡 4:12 ; 고전 5:10 ; 롬 12:2 ; 고후 4:7).

 

2. 성경의 권위

우리는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믿으며 그 진실성과 권위를 믿는다. 성경은 그 전체가 기록된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으로서 그 모든 가르치는(affirm) 바에 전혀 착오가 없으며, 신앙과 행위에 있어 유일하고 정확 무오한 규범임을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과 뜻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役事)와 그 의미를 권위있게 드러낼 뿐아니라, 그의 구원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성경 말씀은 온 인류를 위한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계시는 불변하다. 그 말씀계시를 통하여 성령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성령은 어떤 문화 속에서나 모든 하나님 백성의 마음을 깨우치사 그들의 눈으로 친히 이 진리를 새롭게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여러 모양의 지혜를 온 교회에 더욱 더 풍성하게 드러내신다. 우리는 이 복음을 변호하고, 선포하며, 이를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표현할 것을 다짐한다.(딤후 3:16 ; 벧후 1:21 ; 요 10:35 ; 사 55:11 ; 고전 1:21 ; 롬 1:16 ; 마 5:17, 18 ; 엡 1:17,18 ; 3:10, 18 ; 요 20:31).

 

3. 그리스도의 유일성

우리의 구원자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뿐이며, 그의 복음도 오직 하나뿐임을 확인한다.

우리는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통해서도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이것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부인한다. 이는 사람이 자신의 불의로써 진리를 억압하고 죄로 오염된 인간은 특별계시로만 참된 진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여하한 형태의 종교혼합주의를 거부하며, 그리스도께서 어떤 종교나 어떤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는 식의 대화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손상시키므로 이를 거부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신인(神人)으로 죄인을 위한 유일한 대속물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기 때문에, 이에 근거해서만 하나님께서는 회개와 믿음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값없이 용서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예수 이름 외에 우리가 구원받을 다른 이름은 없다.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멸망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며,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가 회개할 것을 원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자는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없으며 스스로자신을 정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다.

예수를 “세상의 구주”로 전파함은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혹은 궁극적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말이 아니며, 또 모든 종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제공한다고 보장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예수를 “세상의 구주”로 전하는 것은 오히려 죄인들이 사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것이며, 마음을 다한 회개와 신앙의 인격적인 결단으로 예수를 구세주와 주로 영접하도록 모든 사람을 초청하는 것이다. 역사적인 예수와 영광의 그리스도는 동일한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다른 이름 위에 높임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모든 입이 그를 주로 고백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갈 1:6-9 ; 롬 1:8-32 ; 딤전 2: 5-6 ; 행 4:12 ; 요 3:16-19 ; 벧후 3:9 ;살후 1:7-9 ; 요 4:42 ; 마 11:28 ; 엡 1:20-21 ; 빌 2:9-11).

 

4. 성령의 능력

우리는 성령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이신 즉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으로 믿으며 그의 능력을 믿는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은 그의 영을 보내시어 아들에 대하여 증거케 하신다. 성령의 증거 없이는 우리의 증거가 헛되다.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믿고, 중생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선교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전도는 성령 충만한 교회로부터 자발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지 못할 때, 그 교회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요, 성령을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 복음화는 오직 성령이 교회를 진리와 지혜, 믿음과 거룩함과 사랑과 능력으로 새롭게 할 때에만 실현 가능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전능하신 성령의 역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을 요청하며, 성령의 모든 열매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고, 그의 모든 은사가 그리스도의 몸을 풍성하게 하도록 기도할 것을 호소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온 교회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복음전도의 합당한 도구가 될 것이요, 온 땅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고전 2:4 ; 요 15:26,27 ; 16:8-11 ; 고전 12:3 ; 요 3:6-8 : 고후 3:18 ; 요 7:37-39 ; 살전 5:19 ; 행 1:8 ; 시 85:4-7 ; 67 :1-3 ; 갈 5:22,23 ; 고전 12:4-31 ; 롬 12:3-8).

 

5. 교회의 사명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역사 속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시고 친히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교회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긴급하며, 가장 영광스러운 예배를 제사장처럼 하나님께 드리고, 성도와 세상에게 진리의 말씀을 선지자처럼 선포하고 가르치며,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선한 왕처럼 돌보며 섬기고 구제한다. 교회는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로서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며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권능을 받아 그리스도의 명령을 행하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백성들 안에서 개발시키며 그들을 위로하고 인도하신다. 교회는 사도성, 거룩성, 보편성 그리고 연합성을 속성으로 가지고 있으며, 말씀의 바른 선포와 성례의 올바른 시행과 성경적 치리를 그 표지로 갖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기쁨, 진리, 거룩함, 선교, 연합, 사랑을 드러내는 신앙 공동체로서 어떤 특정한 문화, 인간적 이데올로기 그리고 사회 또는 정치적 체제나 봉사기관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심같이 그리스도는 그의 구속받은 백성을 세상으로 보내신다. 하나님이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알리는 과제를 부여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은 이 일을 위하여 동원되고 훈련되고 실천해야 한다.

교회가 희생적으로 해야 할 일 중에서 전도는 최우선적인 것이다. 세계 복음화는 온 교회(Whole Church)가, 온전한 복음(Whole Gospel)을, 온 세계(Whole World)에 전파할 것을 요구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목적의 바로 중심에 있으며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설교하는 교회는 스스로 십자가의 흔적을 지녀야 한다. 교회가 복음을 배반하거나, 하나님께 대한 산 믿음이 없거나, 사람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거나, 사업추진과 재정을 포함한 모든 일에 철저한 정직성이 결여될 때, 교회는 오히려 전도의 장애물이 된다. 교회는 주님의 전도 대명을 바르게 순종하기 위해 성도를 양육하고 섬기는 모범을 실천해야 한다. (엡 1:23 ; 고후1:1 ; 고전 11:17-34 ; 마 28:19-20 ; 딤전 3:5 ; 골 1:18, 24 ; 엡 3:10 ; 고전 7:17-23).

 

6. 전도와 문화

교회가 전도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이를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영광의 주시며 우리 영혼의 구세주요 전지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복음 전하는 일에 참여하라고 명하신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 없는 인간은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며 잃어버린 자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에게 복음전도는 절대로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가 전도하게 되는 가장 강력한 동기를 일으킨다. 전도한다는 것은 기쁜 소식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다. 기쁜 소식이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죽은 자로부터 다시 살아나시어 통치하시는 주로서 지금도 회개하고 믿는 모든 이들에게 사죄와 성령의 자유케 하시는 은사를 공급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전도하기 위함이다. 상대방과의 대화를 경청하여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로 하여금 인격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로 선포해야 한다. 복음에로 초대하기 위하여 우리는 제자된 값을 치루어야 한다.

예수께서 자기를 따르는 모든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의 새로운 공동체에 속하도록 분명히 부르신다. 전도의 결과는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과 그의 교회와의 협력, 세상에서의 책임있는 봉사를 포함한다. 전도는 복음을 전하여 총체적 구원(holistic salvation) 즉 개인구원 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변혁을 이루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선포 한다.

세계 복음화를 위한 대범한 전략 개발과 개척 방법이 요청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복음을 전하면,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 내리고 동시에 그들의 문화에 밀접하게 적응된 여러 교회들이 일어날 것이다. 문화는 항상 성경을 표준으로 검토되고 평가 받아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인류 문화의 어떤 것은 매우 아름답고 선하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 전부가 죄로 물들었고 어떤 것은 악마적이다. 복음은 한 문화가 다른 어떤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전제하지 않는다. 선교는 지금까지 복음과 함께 자국 문화를 수출하는 일이 너무 많았고, 교회는 종종 성경에 매이기보다 문화에 매이는 경우가 있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의 전도자는 겸손하게 자기를 온전히 비우기를 힘써야 하며 진실한 인격자가 되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교회는 문화를 변혁시키고 풍성하게 만들기에 힘써야 하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만 한다.

우리는 기독교 가치관을 정립하고 기독교 문화운동을 전개하고자 한다. 고급가치와 하급가치가 전도된 오늘의 사회 상황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사랑과 지식, 평화와 지혜등 고급가치를 교회를 통해 새롭게 정립하고자 한다.(막 7: 8, 9, 13 ; 창 4:21-22 ; 고전 9:19-23 ; 빌 2:5-7 ; 고후 4:5 ; 마 16:24 ; 계 11:15).

 

7. 교육과 지도력

우리 주님은 세상에 오셔서 가르치고 섬기는 사역의 본을 보이시며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다’고 말씀 하셨다.

우리는 때때로 교회의 수적 성장을 지나치게 추구한 나머지 교회의 질적 향상과 내면적 깊이를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 왔고, 또한 전도를 신앙적 육성으로부터 분리시켜 왔음을 고백한다. 또한 우리 선교 단체들 중에는 현지 지도자로 하여금 그들의 마땅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격려하는 일에 다소 소홀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모든 교회가 현지 지도자들을 등용하여 그들로 하여금 지배자로서가 아닌 봉사자로서의 기독교 지도자 상을 보여주도록 교육하기를 갈망한다. 신학 교육의 개선, 특히 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교육의 개선이 크게 요구되고 있음을 인정한다. 모든 민족과 문화권에 있어서 교리, 제자도, 전도, 교육 및 봉사의 각 분야에 목회자, 평신도를 위한 효과적인 훈련이 성경적 표준을 따라 지역적인 독창성에 의하여 전개되어야 한다. 우리는 교회 교육의 목표가 거듭난 인간, 성숙한 신자,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천국시민 양성임을 고백 한다. 그리스도인의 지도력은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모범처럼 종으로서 남을 섬길 때 발휘된다. 그리스도의 대명에 따라 전도의 우위성을 인정하고 가르치는 사역도 제자를 삼 기 위한 것임으로 교회 교육과 지도력에 역점을 두고자 한다.(요 13:17 ; 골 1:27, 28 ; 행 14:23 ; 딛 1:5, 9 ; 마 10:42-45 ; 엡 4:11, 12 ; 마 28:18-20 ; 행 1:8).

 

8.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신 동시에 심판주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이룩된 하나님과의 화해를 통해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에게 오는 것을 믿으며, 인간 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압박으로부터 해방시키시려는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하여야 한다. 우리는 인권, 생명경시, 사회적 약자 천시, 자연환경파괴,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영역을 복음의 진리로 변혁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개혁하는데 책임이 있음을 선언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 또는 연령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은 천부적으로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사람은 서로 존경하고 섬김을 받아야 하며 어떤 이유에서도 누구나 착취당해서는 안 된다. 이 사실을 우리는 등한시하여 왔고 또는 종종 전도와 사회 참여가 서로 상반된 것으로 잘못 생각한 점이 있음을 인정한다. 우리는 영역 자주권을 선언한다. 그러나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또 사회 참여가 곧 전도일 수 없으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 와 사회참여, 정치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수행해야 할 의무의 양면임을 인정한다. 이 두 부분은 모두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교리와 이웃을 위한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순종의 필수적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것을 공박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메시야의 모형인 멜기세덱의 이름의 뜻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다음은 살렘왕 곧 평강의 왕인 것처럼 의가 평화 앞에 선행하고 있음을 선언한다. 우리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므로, 개인적인 것이든 구조적인 것이든 모든 불의와 억압을 고발하면서 예언자적 증거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을 고백한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난다. 따라서 그들은 불의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의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의를 전파하기에 힘써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므로 우리는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을 추구한다.(행 17:26,31 ; 창 18:25 ; 사 1:17 ; 시 45:7 ; 창 1:26, 27 ; 약 3:9 ; 레 19:18 ; 눅 6:27, 35 ; 약 2:14-26 ; 요 3:3, 5 ; 마 5:20 ; 6:33 ; 고후 3:18 ; 약 2:20 ; 히 7:2).

 

9. 연합과 협력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명자들의 연합이 먼저 필요하다. 연합은 우리의 증거를 강하게 한다. 개인주의나 개교회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의 사역에서 불필요한 중복은 피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와 예배, 거룩과 선교영역에서 긴밀한 연합에 힘써야 한다.

선교와 전도를 효과 있게 하려면 권역별 지역별 연합을 통해 선교 훈련과 기도를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복음을 위한 협력을 하되 극단적 신비주의자들과 잘못된 자유주의자들과의 연합은 복음을 혼란케 할 우려가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타종교는 물론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연합 또한 복음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려 성도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며 더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킬 것이다.

기구적 연합이나 닮은 사람끼리만의 연합은 성경이 제시하는 연합정신이 아니다. 성경적 연합은 영적 연합 즉 그리스도와 수직적으로 연합한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수평적으로 서로 협력하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풀어야 할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연합운동의 과제는 같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자기 교단 소속 교회들의 연합만이 아니라 타교단 소속 교회들과의 영적 협력을 이루는 것이다. 이 같은 협력을 통해서만 우리 앞에 주어진 북한 선교 또는 민족 복음화 그리고 세계선교의 과업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이다.(빌 1:27 ; 엡 4:1-6, 5:19-21 ; 갈 5:22 ; 골 3:12-15 ; 요 17:21-24).

 

10. 복음의 체현

예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우리는 사람에게 자기 경건을 보이려고 사람 앞에서 선을 행하거나 칭찬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변화시킨 권능을 보여주지 않으면 우리 복음의 신뢰성은 약화되기 때문에 복음이 들려지듯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청각장애자의 귀를 열리게 하신 주님은 시각장애자의 눈도 뜨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가견적인 것으로 오셨듯이 우리는 세상에 보여줄 것이 있어야 한다.

복음의 가견성은 개인적이고 지역적이며 사회적일 수 있다. 복음을 외치는 사람의 개인적 변화된 삶이 먼저 나타나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설교는 설교자가 선포한 것을 몸으로 체현하며, 말과 생각으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삶 속에서 나타내야 한다.

복음의 가견적 체현은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아야 하고, 지역교회를 통해서도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들이 천국의 표징(sign)이 되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교회는 사회의 모범이 되고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으나, 그리스도를 본 자가 하나님을 본 자다. 교회를 보고 그리스도를 보게 해야 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은 우리에게서 하나님을 볼 것이다.

복음은 사회적 섬김을 통해서도 체현된다. 우리 주님은 복음을 말로만 전하신 것이 아니고 보이는 사회적 활동 즉 사랑 실천을 항상 병행하셨다. 복음은 선한 사업을 통해서도 체현된다. 어두운 곳, 그늘진 곳 즉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곳, 사회적 관심에서 벗어나 소외된 곳에서 사랑과 공의와 은혜를 보여주어야 한다.(마 5:13 ; 눅 14:34 ; 막 9:50 ; 롬 12:18 ; 행 20:35).

 

11. 복음의 명료성

복음의 본질은 시대가 바뀌어도 영원히 변치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복음의 주된 관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앞에서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는 이 복음 진리가 종종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지식적으로 혼란에 빠져 믿지 못하거나, 인간의 영적 쇠잔함 때문에 거부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시대마다 이 복음 진리를 회복하고 잘못된 것을 개혁하거나 갱신하려는 운동이 있었다. 자기의 상황과 처지에 맞도록 복음을 재해석하거나 변경시켜보려는 노력도 있었다. 문화적 마찰이나 종교적 갈등을 피해보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복음전도와 변증은 구분되지 않았다. 우리는 바울이 베스도에게 한 말처럼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reasonable)을 하나이다”라고 해야 한다. 모든 종교의 신념과 이데올로기를 인정하자고 하는 종교 다원주의(pluralism)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히려 우리의 성경적 신앙과 역사적 기독교 진리를 기준삼아 그것들을 평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그 분만이 최종 권위임을 선포 한다.

복음의 명료성은 복음증거를 분명케 한다. 우리는 복음증거의 방법에서도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보다 심리적 압박이나 물질적 유혹에 의존해서도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우리의 메시지는 부끄럽거나 숨겨질 것이 아니요 속이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 면전에서 양심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진리를 선포하는 일은 당당하고 명확해야 한다.(딤후 3:16 ; 요 20:30 ; 행 6:8-10, 17:16-34 ; 고후 3:13-16).

 

12. 그리스도 앞에서 일관성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선교 모델이시다. 선교는 모두 성육신적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세계 사람들의 생각이나 사상, 사회적 실존에 접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처럼 그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그 본성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변하는 세상에서 선교의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복음의 본질을 변화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믿음으로 복음을 듣고, 세상에 나가라는 명령을 받았으므로 의심하는 자들의 의심 속에 사랑과 동정심을 갖고 우리가 들어가야 한다. 질문자들의 질문 속에, 그리고 갈 길을 잃은 이들의 방황 속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동일성을 상실치 않으면서 그들과 동일시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우리 중 하나같이 되셨듯이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확신과 가치관, 기존 원리를 좇는 삶의 양식과 판단력을 유지하면서 다른 이들과 하나가 되고자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이 말씀선포 이전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설교하기 전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었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을 일관성 있게 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을 가져오고 공의를 심기 위해 핍박과 죽음을 당하신 고난의 종으로 끝까지 사셨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사는 비결을 일관성 있게 보여주셨다. 마침내 그는 죽음으로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으셨다.

오늘날에도 고난받는 지역에 있는 교회가 질적으로 더 우수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나님은 고난을 사용하신다.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는 자기 교회를 그 고난을 통해 세우신다. 우리는 복음이 원하고 가르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전하되 그리스도인다운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려 한다.(요 12:24 ; 고전 15:36-49 ; 롬 5:12-21 ; 고전 13:1-13).

 

13. 자유와 핍박

모든 세속정부는 교회를 간섭하지 않으면서 교회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복음을 전파하도록 평화와 정의와 자유를 보장해야 할 의무를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우리는 국가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고 유엔 인권선언문이 규정한 바와 같이 종교를 믿고 전파할 신앙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또한 부당하게 투옥된 사람들, 특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때문에 고난받는 우리 형제들을 위하여 깊은 우려를 표한다. 우리는 그들의 자유를 위하여 기도하며 힘쓸 것을 약속한다. 동시에 우리는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핍박을 거부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불의에 대항하여 복음에 충성하기를 힘쓸 것이다. 핍박이 없을 수 없다는 예수님의 경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은 국가의 안녕을 추구하는 충성스러운 시민임을 기독교인을 핍박하고 있는 정부들은 인정해야 한다. 공의로운 정부는 그리스도인들을 경원시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세계인권선언문이 정의한대로, 종교를 고백하고 실천하고 전하는 자유는 마땅히 허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순교는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귀히 여기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의 증거형태이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도록 이를 위해 기도한다.(딤전 1:1-4 ; 행 4:19 ; 5:19 ; 골 3:24 ; 히 13:1-3 ; 눅 4:18 ; 갈 5:11 ; 히 13:1-3 ; 눅 4:18 ; 갈 5:11 ; 6:12 ; 마 5:10-12 ; 요 15:18-21).

 

14. 전도자의 겸손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한 자의 모델은 어린아이 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겸손보다 더 아름다운 덕성은 없다” 지도자들에게 이것은 중요한 교훈이 된다. 겸손한 사자(使者), 즉 복음증거자는 문화적 우월감이나 제왕적 태도를 가지지 않아야 한다. 전도자의 겸손이란 성령께 의존하는 삶을 말한다. 성령은 사회적 상황을 통해서도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적절한 방법과 지적 대안들을 찾아내고자 한다. 그러나 이때 우리는 성령보다 세상적인 것에 더 의존하고 자만에 빠질 수 있음을 명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를 더욱 강조하고자 한다. 성령은 최고 증인일 뿐 아니라, 영적 시각장애자의 눈을 여시고 새 생명을 낳는 최고 말씀 전달자이시다.

오늘날 복음을 방해하는 지역감정 또는 계층간 대립은 무너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데 필요한 말씀과 성령과 기도의 무기가 있다. 이것들은 우리를 겸손케 한다.(잠 15:33 , 16:19 , 18:12 , 22:4 ; 엡 4:2 ; 빌 2:3 ; 골 2:18 ; 벧전 5:15 ; 마 11:29 ; 약 4:6).

 

15. 그리스도의 재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권능과 영광 중에 인격적으로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재림하시어 그의 구원과 심판을 완성시킬 것을 믿는다. 이 재림의 약속은 우리의 전도를 긴급하게하고 가속화시킨다. 이는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고 하신 그의 말씀을 우리가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중간 기간은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 사역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므로 종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전도하는 일을 멈출 자유가 없다. 우리는 또한 마지막 적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리라는 그리스도의 경고를 기억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땅 위에 이상향을 건설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거부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며, 우리는 그 날을 간절히 사모하며, 또 정의가 실현되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통치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을 간절히 고대한다. 그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그의 권위에 기꺼이 순종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섬기고 사람에게 봉사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재헌신한다.(막 14:62 ; 히 9:28 ; 막 13:10 ; 행 1;8-11 ; 마 28:20 ; 막 13:21-23 ; 요 2:18 ; 4:1-3 ; 눅 12:32 ; 계 21:1-5 ; 벧후 3:13 ; 마 28:18).

 

♣ 맺는 말

그러므로 이와 같은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결심에 따라 우리는 복음화된 통일조국을 이루어 세계 복음화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하여 함께 기도하고, 함께 계획하고, 함께 일할 것을 하나님 앞에서 엄숙히 선언한다. 우리는 이 나라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일에 우리와 함께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아버지하나님과 아들하나님과 성령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각오와 선언이 신실하게 이루어지도록 그의 은혜로 도와주시기를 기도한다. 아멘. 이 일을 이루실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어다. 할렐루야!

 

<아프간 사건 후 재발방지를 위한 한기총의 실천적 제안>

지난 7월 19일 분당 샘물교회에서 파송한 23명의 아프간 단기봉사단의 피랍사건은 개별교회와 단체가 독자적으로 봉사단을 모집하고 교육한 가운데 정부의 여행제한지역으로 분류된 내전지역 구호사역을 위해 파송되어 사역일정을 진행하던중 탈레반 무장세력에 의해 피랍된 테러사고인 동시에, 현지 정세와 문화와 종교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또한 안전한 활동을 위한 제반 조치를 취하지 않고 테러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된 지역에서 발생한 인재적 성격을 내포한 사고로서 우리 정부와 국민은 물론 교회와 선교계와 전 세계민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피해를 안긴 사건이다.

이에 한국교회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가진 한기총은 사건 발생후 지금까지 정부 당국과 공동대책에 힘써왔고, 교단과 교회와 선교단체들과 절제된 기도운동과 대책협의를 하며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을 위한 다각적인 협력을 하였다. 피랍 43일만에 2명의 희생과 21명의 귀환으로 사건이 마무리됨에 따라 향후 유사한 사건이 재발되어 이와같은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한기총은 교회와 선교계와 국민과 국가와 세계 앞에 겸허한 마음과 실천적 다짐으로 다음의 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1. 다시금 한기총과 한국교회는 공동체적 책임감을 가지고 금번 사태로 인해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유감을 표명하며, 석방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정부당국의 헌신적인 노력과 국민들의 사랑과 격려, 언론계의 적극적 협조, 그리고 세계 우방국과 종교지도자들의 지지와 협력에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2. 선교 100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교회가 2007년 1월 KWMA의 통계에 의하면 175개국 16,616명의 장기선교사를 파송하여 왔지만, 해외 단기봉사와 단기선교에 있어서는 명확한 개념정리 부족과 안전한 사역을 위한 사전교육 미흡과 현지 정세, 문화, 종교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력 및 글로벌 사역마인드와 네트워크가 부족한 가운데 교회별 단체별로 세계를 향해 나아갔던 것이 사실이다. 한기총은 차제에 한국교회가 장기선교사를 대상으로 총체적 사역 재점검과 재헌신을 제안하며, 단기봉사단의 철저한 안전교육 실시와 타문화권에서 충돌을 야기하는 일부교회와 단체의 무리한 사역일정과 독단적, 과시적, 이벤트적 선교와 봉사를 즉시 개선할 것을 제안한다.

 

3. 다만 금번 사태를 감정적이거나 단편적으로만 판단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와 살해위협속에 43일간의 인질생활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받은 봉사단원들이다. 그들을 위해 우리 정부는 최선의 수고를 다하여 협상하였으며, 온 국민들은 밤잠을 설치며 무사귀환을 염원하였고, 세계가 함께 걱정하고 한마음으로 성원했던 것을 잊어선 안된다. 구사일생으로 풀려난 우리 국민의 한성원들을 아량있는 이해와 사랑의 마음으로 위로하고 격려하여 그들이 하루빨리 악몽과 같은 고통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다. 그들을 파송한 교회와 단체도 진정한 반성과 사과와 개선으로 정부와 국민과 교회 앞에 거듭난 모습으로 나아가는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 글로벌 시대에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들, 그리고 종교인들은 국내는 물론 해외 재난지역, 특별히 세계 각국의 이익에 의해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충돌이 발생한 어려운 지역에 희생을 각오하는 사랑의 손길을 요청받고 있다. 이 일로 인해 수많은 봉사단들의 고결한 사랑과 봉사와 희생 정신까지 매도되어선 안될 것이며, 금번에 희생된 故 배형규목사와 故 심?복?형제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며 사랑의 정신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분들의 생명과 인권이 더 이상 경시되어선 안될 것이다.

 

4. 한기총과 한국교회는 앞으로 아프간 피랍사건과 같은 유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 당국과 유기적 위기관리 협력체제를 구축해 나갈 것이며, 특별히 KWMA가 장기선교사의 안전사역을 위한 '선교사위기관리지침'을 보완하여 '선교사위기관리기구' 설립을 추진한다는 것에 적극 지지하며, 선교계와 교회들이 그동안 무분별하게 사용하여온 '단기선교'란 용어는 '해외단기봉사' 및 '해외문화탐사', 또는 '비젼여행' 등으로 고쳐 사용할 것과, 안전한 해외 여행과 봉사를 위해 한기총과 KNCC가 중심이 되고 시민단체를 아우르는 '세계연합봉사기구(가칭)'를 구성하여 그 조직 안에 '위기관리팀'를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5. 정부와 종교계 및 시민사회는 글로벌 시대에 한해에도 천만명 이상의 해외 여행자와 봉사단들이 세계 각국에 나가는 현실적 상황을 인식하여 우리 국민들의 안전한 해외 여행과 봉사활동을 위한 ‘민?관 합동 위기관리대책기구(가칭)‘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며, 우리 정부는 해외 선진국의 효과적인 예를 참고하여 한국형의 ‘위기관리 시스템’을 개발하되, 여행 및 봉사와 선교의 사전 자율신고제를 적극 도입하면서 방문 희망국가에 대한 다각적이고도 신속한 정보를 제공하는 ‘여행자 통합 관리프로그램(가칭)’을 개발하여 국민들에게 적극 홍보하여 협조케하여 안전한 해외 여행과 봉사와 선교가 이뤄질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금번 사태를 통해 값비싼 대가를 지불한 우리 모두는 이제 모두가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는 이런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 용 규 목사

총 무 최 희 범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