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죽음을 통해 본 목회자들의 사상진단

신앙사상 그리고 사상신앙은 낱말의 배열만 다르게 한, 같은 말같이 보이지만 필자는 구분하고 싶다. 신앙사상은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사상이지만 사상신앙은 사상이 신앙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둘은 확연히 다르고 그 다른 사상은 평소에는 같은 동지처럼 보이지만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는 그 본색을 드러낸다. 물론 신앙사상도 그 배경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죽음은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던을 막론하고 슬픈 것이다. 특별히 많은 사랑을 주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러기에 모두가 죽음의 슬픔을 이기고 사는 것이다. 자연사는 누구도 반항할 수 없고 반항하지 않는다. 그러나 살인에 대해서는 모두가 억울해 하고 분노를 표출한다.

우리는 지난 7일 동안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일을 겪었다. 그 죽음은 자살이었다. 스스로 높은 바위에서 몸을 던져 생명을 끊는 엄청난 일이 발생했다. 그 당사자가 일반인이 아니라 직전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에 국민은 크게 놀랬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재임시에 박연차로부터 600만 불의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대상에 있었고 1차로 소환조사도 받았다. 그의 형님, 조카, 아들과 딸, 그리고 그의 아내까지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거나 재판 중에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게 되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고 그 탈출구로 자살이라는 극한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심정은 그가 쓴 유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조중동을 위시하여 보수, 진보를 막론한 언론들은 이를 앞 다퉈 보도하기 시작했고 신문은 큰 박스 기사로 연일 탑에 올려놓았다. 방송들도 이전 탄핵 때 보다 더 진화된 방송행태를 보였다. 꼭 같은 뉴스를 하루에도 10번도 더 넘게 반복해 보도했고 감성위주의 보도로 사람들의 눈물을 짜냈다.

북한의 핵실험 때에만 잠시 탑 자리를 빼앗겼을 뿐 장례가 치러진 날까지 우리나라는 다른 뉴스가 없을 정도로 정지되어 있는 것 같았다. 과연 그의 자살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진 것인가에 대해서는 세월이 흐른 다음 진정한 역사적 평가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것을 지적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가 이번 노무현의 장례 과정에 소외 되거나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것도 아니다. 내세를 위해 사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다만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다는 슬픔을 감안하더라도 과연 기독교 목사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필자는 단호하게 그들은 신앙사상을 가졌기 보다는 사상신앙을 가졌다고 진단하지 않을 수 없다.

N 인터넷신문에는“자살이라기보다 십자가를 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박OO 목사가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자살은 죄라고 규정하는 신앙을 도외시한 발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너무 값싸게 팔아넘기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더한다.

D 인터넷신문에는“사나이라면 초개 같이 목숨을 버릴 줄도 알아야한다고 한 수 가르쳐 주는 것 같다.”는 김OO 성공회 사목의 글을 게재했다. 이러한 발언은 자살을 미화하거나 조장하는 아주 위험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신앙사상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그들이 사상을 신앙으로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P 인터넷 신문에는 "노무현 죽음, 예수님 죽음 생각나게 해"라는 제하의 기사에 “매연이 가득한 서울처럼 지금의 한국은, 양심적인 사람은, 뜻이 있는 사람은 견디지 못하게 합니다, 숨을 쉬지 못하게 합니다.”고 김OO목사의 추모 글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노무현의 죽음과 예수님의 죽음을 비등한 자리에 설정하고 글을 쓰고 있다. 이는 노무현의 죽음을 예수님 자리로 올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을 노무현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자해행위인 것이다. 또한 자살을 양심적인 사람이 견디지 못해 죽었다는 뜻으로 말해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진실을 오도하고 있다.

그뿐인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이해동 목사(인권목회자동지회 회장)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개인의 책임으로 모는 사람들은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이다. 그의 죽음은 대의를 위한 것이었다. 의미 있는 죽음은 의미 있는 삶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해서 많은 뜻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권오성 목사(NCCK 총무)가 장례식에서 한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께서 무한한 능력으로 그 영혼을 하늘의 푸른 초장에 인도하여 주시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추모기도였다.

그러자 뒤에 발언하는 자들은 강도를 점점 세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신학교 교수들이 “하나님 없는 시대, 대통령이 책임지고 장로 내려놔라!”고 까지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반면 기독교 신앙으로 무장된 한동대 총학생회장 및 지지자들은 교내에 분향소가 설치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내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기독교사회책임은“그의 죽음을 이용하여 서로를 비난하며 우리 사회를 혼란과 분열로 나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면서“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창조주께서 허락하신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자살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또한 D 인터넷신문“사나이라면 초개 같이 목숨을 버릴 줄도 알아야한다고 한 수 가르쳐 주는 것 같다.”는 김OO 성공회 사목의 글 밑에 붙은 댓글에는 부끄럽다는 제목으로 을이라는 닉네임의 글이 있는데 마지막 대목에서 아직은 살아있는 신앙사상을 만날 수 있었다.

부끄럽다
5. 자살이 분명한 죄인데 자살을 미화하는 이런 글을 쓰는 분이 목사라는 사실에 놀라면서 대단히 부끄럽다.

지금은 기도할 때이다. 목회자들은 좀 더 냉철하게 우리가 사는 사회를 감성으로가 아니라 이성으로 바라보고 더 나아가 신앙의 눈으로 보라보면서 성도들에게 바른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목사의 사상은 신앙이 바탕이 된 사상, 즉 신앙사상이어야지 신앙 이전에 사상이 자리 잡고 신앙은 그 사상을 관철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처럼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북한이 우상처럼 믿고 존경하는 김일성도 북한 주민의 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죄인이었음을 주지하면서 한 사람의 죽음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슬픔에 빠져있으면 나라도 사회도 침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로 인해 찾아오는 손실은 고스란히 우리와 다음 세대의 빚으로 남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기도해야 할 큰 제목은 북한의 핵실험과 전쟁도발적 징후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남한의 생존권 뿐 아니라 온 세계를 불행으로 몰아넣을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도발이다. 우리가 처한 이 세대가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신앙의 눈으로 살피면서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코람데오닷컴 천헌옥 목사